본문 바로가기

[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32 . 바람의 언어

**

사막의 사람들은 죽은 자를 사막에 장례 지낸다.


사막에 생전의 몸, 즉 죽은 육신을 건넴으로써 그들은 사막이 살아있는 한 자신들의 영혼과 육체도 사막과 함께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것은 어찌 보면 영원한 삶처럼 느껴진다.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죽은 자의 소원에 따라 죽은 자의 육신을 사막의 한복판이나 해변의 모래톱에 누여놓는다. 살은 매의 밥이 되거나, 그대로 마른 채 썩거나, 또는 비에 젖어 서서히 부패한다. 사막의 사람들은 죽은 시신을 오랫동안 찾아보지 않는다. 매일 파도에 씻기는 모래는 세상의 어떤 흰색보다도 희고, 사막을 살던 육신은 평생 태양에 그을려 숯처럼 새까맣다. 해변에 시신이 누운 모습은 마치 흰 캔버스 위에 찍어놓은 검은 점 같아 보인다. 그들의 장례식에는 관이 없다. 노래가 없다. 예배나 기도도 없다. 검은 옷도, 땅을 팔 삽도, 시신을 태울 불도 없다. 그들에게는 시신의 뼛가루를 담을 항아리도 없다. 그들은 숨이 끊어진 육신을 그릇으로 대우한다. 한때 망자의 영혼을 담았던 그릇. 주인이자 동료였던 영혼이 떠나고 그릇만 남았으니, 이제 그릇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릇의 살은 세상의 생명들에게 내어주고, 남은 뼈는 모래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 한 번 떠난 영혼이 회귀의 의무에서 벗어남으로서 자유를 얻었듯이 영혼이 담겨있던 그릇도 자유의 대기와 시간의 손에 맡긴다. 매에게 살이 뜯긴 해변의 시신은 곧 뼈와 머리카락만 앙상히 남는다. 마른 뼈 위로 파도가 넘실거린다. 바닷물이 뼈를 적시고, 또 뼈를 적신다. 바닷물이 뼛속을 파고든다. 소금기가 뼛속을 채운다. 모래사막의 사람들은 얼마 전 한 늙은 현자의 영혼을 사막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바람의 소리를 해석할 줄 아는 드문 현자였다. 바람이 소리 내어 불기 시작하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곤 했다.

“이 바람은… 이곳에 와본 적이 있다고 하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

“이 바람은… 거대한 대륙의 사막을 기억해. 이곳은 작은 사막이라고 한다.”

“…………”

“푸른 산은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보지만… 우리 중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

마른 모래알들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초원의 사막에서 왔다. 그는 초원의 사막 시절부터 바람의 언어를 이해했다. 초원의 사막 사람들은 바람의 소리를 별로 궁금해 하지 않았다. 초원의 사막을 지나는 바람은 늘 잔잔했고, 아이처럼 순했다. 어린 바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조금은 지루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래사막의 바람은 달랐다. 모래사막을 달리는 바람은 먼 대륙으로부터 대양을 건너온 큰 바람들이었다. 큰 바람들은 더러 말없이 침묵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침묵은 오히려 산처럼 무거웠고 재잘대는 작은 바람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어느 날 그는 바람에게, 바람은 불멸의 존재인지를 물어보았다. 바람은, ‘불멸은 아니지만 사라질 수는 없는 존재’라고 대답했다. 이제 그도 사막의 영혼으로 남았다. 아마도 그는 여전히 바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바람이 그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읽을 줄 아는 당신은 불멸의 존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