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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불면인

불면인 #10 . 꿈-길


안개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주워온 두유박스는 꽤 훌륭한 방석이 되어주었다. 긴 꿈속을 헤매었던 잠이 깊지 못했던 탓인지 또 잠이 오려는 듯했다. 나는 노트를 품속에 넣고 눈을 감았다. 안개와 안개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 바다의 향이 담겨있었다. 어느 집에선가 생선국이라도 끓이고 있는 걸까? 찌릿한 생선 비린내에 물비린내가 더해졌다. 배가 고팠다. 나는 자주 잠들고, 지금도 잠기운에 허덕이는 육신인데, 잠결에 주린 배가 허기를 호소하는 것인가. 어두운 밤에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사냥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나마 이 도시에는 사냥감조차 살지 않았다. 동물들이 살기를 그만둔 땅 위에 인간이 성을 쌓고 사는 곳. 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낫다. 어떻게든 잠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지난밤처럼 꿈이라도 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꿈을 팔아서 한 끼 식사와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그 꿈이 아무리 거창하고 그럴듯하더라도 고린내 풍기는 거리의 남자가 더러운 손으로 내미는 꿈에 선뜻 돈을 지불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외투 깃을 여미고 몸을 비틀어 반대편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결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유리창에 붙은 나비를 보았다. 하얀 날개 위에 점점이 박힌 검은 얼룩이 소박하고 고왔다. 나비는 지친 듯 힘겹게 날개를 움직였다. 한동안 죽은 듯 멈춰 있다가 한 번 또 한 번 날개를 펴고 접기를 반복했다. 나비의 날개는 좌우대칭이 맞지 않았고, 마치 어그러져 서로 닿지 않는 사랑니처럼 심하게 비뚤어져 있었다. 이 나비는 불구일지도 모른다. 날지 못하는 날개를 그저 움직여볼 뿐 날아오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한겨울에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된 것이다. 자신이 어떤 계절에 어떤 곳에 있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이다. 나처럼 비를 피해 공중전화박스를 찾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올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분명 찬바람 부는 혹한의 계절이지만 나비의 몸은 가볍고 따뜻해 보였다. 가볍지만 날지 못한다. 한겨울의 나비는 무얼 먹고 살까. 갑자기 무거운 잠이 슬며시 몸을 짓눌렀다. 눈꺼풀이 닫히고 정신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낱말들이 무신경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흰구름약방. 금촌버스. 백운정류소. 주류일체. 회전목마. 누구세요. 누구세요. 멀리서, 아주 멀리서, 구둣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느린 걸음이었다. 어쩌면 사람의 자리는 부재중이고, 구두만 걸어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혼의 방이 비어있는 육신들이 천지인 세상이고, 분리된 영혼들이 떼거지로 떠돌아도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세상이므로, 빈 구두 한 켤레가 호젓이 거리를 걷고 있다고 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을 풍경이었다. 골목 끝 단층집의 작은 창이 번쩍이더니 곧 빛이 새어나왔다. 방의 주인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모양이다. 창이 작으니 방도 작을 것이다. 저 방의 주인처럼 나 역시 작은 방에 산다. 아주 작은 방에.


꿈 | 길

지평선만 보이는 드넓은 땅을 걷는다.

지평선보다 높은 것은 오직 전신주와 전선과 구름과 하늘뿐인 땅.

길은 지평선을 향해 곧게 뻗어있고, 길옆으로는 작은 강이 흐른다.

강가에는 어린 억새가 무성하게 자란다.

나는 지평선을 향해 걷는다.

아무리 오래 걸어도 지평선뿐이다.

길 끝의 지평선은 내게 다가와주지 않는다.

나 역시 지평선에 다가갈 수 없다.

마치 도돌이표 위를 걷듯 한없이 지평선을 만나고, 또 새로운 지평선을 만난다.

이 길에,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의심스럽다.

하지만 지치지 않는다.

하루를 함께 걸어주는 태양과 달이 있고,

그들은 시시각각 길과 하늘과 구름의 색을 바꾸어놓는다.

같은 생김새지만 늘 새롭고, 늘 다른 길이다.

하루의 걸음을 마감할 시각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이 오두막을 만난다.

그곳에는 필요 없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다.

따뜻한 모닥불과, 물과, 간소한 먹을거리가 있고,

드럼통 안에는 씻을 물이 담겨있다.

창가 쪽에는 일인용 침상이 마련되어 있는데,

두꺼운 매트리스가 깔려있어서 편안히 깊은 잠에 빠질 수 있다.

밤을 지새우고 싶으면 초에 불을 붙이면 된다.

벽에 붙은 책꽂이는 나그네의 무료한 시간을 위로해주려는 듯

다양한 양서들로 가득 차있다.

오두막에서 지내는 시간에는 제한이 없다.

나그네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오래 묵을 수 있다.

하지만 긴 오두막 생활은 사람을 게으르고 지치게 만든다.

나그네의 일은 걸음을 걷는 것이다.

나그네의 일은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랑이 본능인 사람이라면,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오두막을 떠날 것이다.

지평선이 지루해지면 길을 벗어나 강가로 난 흙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강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지평선이 자취를 감추고,

지평선 대신에 거대한 산맥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산맥을 이룬 산에서는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산 하나가 그대로 바위이기 때문이다.

깊고 짙은 회색의 바위산은 오직 여명과 황혼 때에만 색을 바꾼다.

산의 웅장함과 신비한 빛깔은 신을 믿지 않는 사람마저도 기도하게 만든다.

지금까지 산에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산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저곳에 있었고, 지금도 저곳에 있다.

그러나 사람의 발이 닿지 못한 이유는,

산은 항상 저곳에만 있었고,

무한대의 여정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산의 신성은 사람으로 하여금 산을 포기하고 강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든다.

다행히 강 풍경은 사람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강을 집삼아 사는 크고 작은 새들과,

강 자체가 곧 터전이자 삶인 물고기들,

그리고 역시 강이 고향인 여러 생물들과 식물들.

그들의 하루살이를 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강물처럼 흘러가버린다.

홀로 사냥을 나온 왜가리는 고독을 이야기하고,

무리지어 떠다니는 오리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강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요구대로 자유로이 너비를 조절한다.

강은 여성이다.

강은 스스로 그리는 길의 곡선과 한없는 넉넉함으로 자신이 여성임을 표현한다.

강은 강이 흐르는 길 안에 묶여있는 듯 보이지만,

그 길 안에서 무한대로 자유롭고,

강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 나 같은 자에게도 그녀의 자유를 나누어준다.

강에게는 거칠 것이 없다.

강에게는 막다른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강은 담 아래로도 흐르고, 둑 너머로도 흐른다.

나그네가 걸음을 멈추지 않듯 강도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아쉽지만 강가에는 오두막이 존재하지 않는다.

낮에는 나무를 잘라 만든 작살로 천렵을 하고,

밤이 되면 억새를 모아 불을 지핀다.

안개 낀 이른 아침에 길을 떠나야 할 때도 강은 흐르는 물소리로 나그네의 길을 안내한다.

강은 홀로 걷는 사람을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혼잣말로, 강은 흐름의 소리로, 우리는 각자의 독백에 골몰하지만,

때로는 두 개의 독백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는 각자의 고독을 서로에게 고백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비 내리는 강 풍경은 고즈넉하다.

강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그대로 자신의 몸에 흡수해버리고,

체중을 불리고, 곧 거대해진다.

비 내리는 강가에서는 비 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빗방울은 강물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하나는, 강의 이쪽에서 바라보는 강의 얼굴.

다른 하나는, 강의 저쪽에서 바라보는 얼굴.

강의 한쪽 얼굴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강의 얼굴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강은 두 개의 얼굴을 지녔다.

강의 다른 얼굴을 보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꿈속에서 불현듯,

길을 나서기 전 욕실 옷걸이에 걸어두고 나온 젖은 양말 두 짝이 떠올랐다.

먹구름 가득한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집을 떠난 지 30분도 채 못 되어 비에 흠뻑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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