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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39 . 비밀의 탄생

*

나에게는 어머니와 누이가 생겼다. 그녀들이 사는 집은 오직 내 아름다운 그녀와 내 또래의 동료를 위한 공간일 뿐이었다. 집은 두 사람이 쓰기에는 너무 커보였다. 사실 세 사람이 쓰기에도 너무 컸다. 그 집에서 나는 아름다운 여자를 어머니라 부르고, 여자 동료를 누이라고 불렀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식구들을 위해 겨울을 날 준비를 했다. 우리는 어머니와 누이와 나의 방과 거실에 난로를 들여놓았다. 어머니와 누이는 이런 일쯤은 우습다는 듯 눈 깜짝할 새에 난로를 설치했다. 난로의 설치는 연통설치가 전부라고해도 무방했는데, 어머니는 마치 난로설치 기술자처럼 척척 연통을 끼우고 호일테이프를 붙여 연통들의 이음새를 꼼꼼히 틀어막았다. 나와 누이는 난로 옆에 놓인 상자에 장작을 채우는 일을 맡았다. 나는 어머니의 방에 가장 많은 장작을 날라다두었다. 어머니는 아름다웠고, 나는 아름다운 여자는 따뜻하게 지내는 쪽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 방은 크지는 않았지만 아늑했다. 책상과 의자와, 또 하나의 의자, 즉 안락의자이거나 독서의자라 부를 수 있을 의자가 있었고, 긴 벽 쪽으로 넉넉한 크기의 매트리스가 놓여있었다. 의자도, 책상도, 침대도 내게는 너무 커서 모두 거인들을 위한 가구 같아보였다. 내 방은 길쭉했다. 난로가 놓인 창가 쪽은 벽 전체가 유리였다. 유리 밖으로는 숲이 보였다. 풍경은 근사했다. 숲은 낙엽송으로 가득했다. 나는 고깔모자를 닮은 낙엽송의 모양새와 큰 키가 마음에 들었다. 어머니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큰 집이었지만 하루도 청소를 거르지 않았다. 바닥청소뿐만 아니라 먼지도 매일 닦아냈다. 낮은 곳의 먼지를 닦는 일은 누이와 내 몫이었다. 우리는 열심히 청소를 했다. 나는 집에 온지 삼 일도 채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대단한 요리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찬의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요리는 충분히 화려했다. 예를 들면, 그녀는 사흘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갔다. 김치의 종류는 매번 바뀌었다. 백김치, 배추김치, 무김치, 나박김치, 겉절이, 동치미, 오이소박이 등등. 어머니와 누이는 익은 김치나 신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냉장고는 언제나 싱싱한 채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김치와 함께 샐러드도 즐겨먹었다. 어머니와 누이는 채소류뿐만 아니라 육류 마니아이기도 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차를 타고 큰 시장으로 고기를 사러나갔다. 아침식사를 제외한 모든 끼니와 간식에 고기가 들어갔다. 소불고기, 갈비찜, 장조림, 돼지불고기, 닭갈비에 스테이크까지, 우리의 식탁은 항상 풍성하고 기름졌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하나는 먹는 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먹는 시간도 조용하기는 했지만, 조용한 시간은 정말이지 조용했다. 소리만으로는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주로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누이는 인형놀이를 했는데 인형을 가지고 노는 시간보다는 인형의 옷을 짓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나에게 많은 책을 사주었다. 내 손이 닿는 낮은 칸에 채워진 책들은 대부분 그림책이거나 동화책이었지만 그 위로 올라갈수록 책도 작아지고 글자도 작아졌다. 두 사람 다 여자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어머니나 누이는 내게 남자아이용 장난감이 필요할 거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위한 장난감을 스스로 만들어서 써야했다. 다행히도 장난감을 만들 재료는 풍부했다. 나는 자주 바깥에 나가 장난감 재료들을 구해왔다. 시냇가에서 돌을 줍거나, 굵고 얇은 나무토막을 모아 로봇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사는 삶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과의 삶에 잘 적응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누이와 나는 무럭무럭 커갔고, 아름다운 어머니는 아주 조금씩 늙어갔다. 어머니와 누이와 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버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꽤 많은 재산이 있었는데 재산의 출처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돈에 쪼들리며 살아본 적도, 그래야 할 이유도 없이 넉넉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나는 한 해 두 해 자랄수록 집의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 역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책은 읽고 읽어도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 같았다. 나는 주로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두 분야의 책들은 글보다 사진이 더 많았는데 아마도 어릴 때부터 그림이 많은 책을 봐온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좋아했던 다른 분야는 철학이었다. 철학은 학자마다, 혹은 지향하는 바에 상관없이 모두 재미있었다. 철학의 또 다른 매력은 세상의 모든 일과 학문의 토대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철학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집을 짓고, 자연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학문이자 자세였다. 하지만 나는 올바른 자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갖고 철학에 접근했다. 나는 세상이 올바르다고 여기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얻고, 성취하는 쪽이 낫다고 생각했다. 누이는 나와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는 세상이나 사람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을 배려하는 성향이 강했다. 누이는 나보다 정확히 세 살 위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머니는 누이를 바로 독립시켰다. 집을 얻어주고 기본적인 생활비 정도를 주는 것이 전부였으므로 누이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일을 해야 했다. 누이에게도 그랬고, 나에게도 역시 어떤 일이든 일을 하는 것 자체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를 부지런하게 키웠고, 집 안에서도 늘 크고 작은 일거리를 맡겼다. 내가 독립했을 때, 나는 첫 일자리로 건축현장을 선택했다. 누이도 나도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는 일이라면 액수에 연연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우리는 풍족하게 자랐지만 무엇이든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게을러지지 않도록 다달이 월세를 내야하는 집을 얻어주었다. 그러나 누이와 나는 두 사람 몫으로 나가는 월세를 반으로 줄이기 위해 월세 집 하나를 정리하고 둘이 한 집에서 살았다. 우리는 주말을 어머니의 집에서 보냈다. 어머니는 우리가 독립한 후로 많이 외로워하셨지만 조용한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심심풀이로 새로운 취미를 가지셨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시였다. 우리는 어머니가 쓴 시를 듣고 시의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어머니의 시는 어린아이의 것처럼 순수했다.


나무는 나무

풀은 풀

그리고

골짜기는 맑은 샘


나는 성인이 되고난 후에 부쩍 어머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덩치 크고 발음이 정확한 사람들과 내 또래의 동료들이 전부였던 삶에 스스로 찾아와 내 인생의 첫사랑이자 어머니가 되어준 내 어머니에게 나는 늘 감사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내 인생에는 어머니라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머니라는 존재의 개념을 입술을 움직여 ‘어.머.니.’를 발음하면서 배워나갔다. 나를 직접 낳았는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로 하여금 새 삶을 살게 해주었다면, 행복한 인생을 내게 선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어머니는 내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는 말의 무게는 내게 거대한 해일이나 메아리 같은 것이었다. 내 입으로 ‘어머니’를 말할 때마다 더 큰 울림으로 내 가슴을 두드리며 돌아오는 말. 차가운 새벽이슬에 젖어 떨고 있을 때 얼굴과 몸을 따뜻하게 비추며 떠오르는 태양 같은 것. 하지만 내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행복이면서 동시에 고통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미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이 흐르며 몸이 어린아이의 허물을 한 겹씩 벗을 때마다 나는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지 못해 혼돈에 빠졌다. 사랑은 고통스런 것이었다. 성장을 거듭할수록 어머니를 보며 느꼈던 사랑의 조건들이 낱낱이 깨진 유리알이 되어 내 폐부를 찔렀다. 나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던 어머니의 모든 몸짓이 내 눈을 찌르는 송곳이 되었다. 마침내 어머니를 바라보는 일조차 두려움과 고통으로 변했다. 어머니가 더 이상 아름답지 않기를 기도해보기도 했다. 소용돌이처럼 휘말리는 사랑의 감정이 호수처럼 잔잔히 가라앉기를… 많은 날, 많은 시간 동안 기도했다. 그러나 한 번 발현된 감정은, 이미 변해버린 눈동자는, 모든 일이 끝나기까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의 모든 일이 끝나는 순간까지. 숨이 멎어 생명일 때의 일에서 모든 손을 놓을 때까지.

하지만 나는 생명을 끝내려는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대로, 삶인 채로, 생명인 채로, 견디며 살아갈 방법을 찾기로 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을 감춰야 했다. 나를. 나의 눈동자를. 나의 떨리는 손과 심장이 뛰는 소리를. 살아 숨 쉬고 있는 모든 나 자신과 나의 그림자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