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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40 . 떠나지 않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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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딸에게는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모래사막의 비와 구름도 그녀의 안녕을 걱정하는 듯했다. 그녀의 몸은 구멍바위 아래의 그늘로 옮겨졌다. 바람은 잠들었고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비구름은 모래사막을 떠나지 못하고 대기를 배회했다. 거대한 그늘이 사막을 덮었다. 모래사막의 사람들과 족장들은 정성을 다해 그녀를 돌보았다. 사람들은 빗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겼다. 그녀는 오래 깨어나지 못했다. 족장들은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그녀가 깨어날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비는 사막에 넉넉한 물을 공급했다. 여자들은 바다의 딸을 씻기고, 자신들의 옷을 벗어 몸을 데워주고, 입술을 축여주었다. 그녀는 긴 꿈을 꾸고 있는 듯해 보였다. 표정은 평화로웠고, 몸은 따뜻했다. 그녀는 실제로 긴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는 배들이 항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람에 몸을 기댄 채 광활한 바다를 가르며 물 위를 달렸다. 선원들의 얼굴은 긴 항해에 지친듯해 보였으나 눈동자는 반짝였고, 진지해보였다. 배들은 곧 해안에 닿았고, 닻을 내렸다. 꿈속의 바닷가 풍경이 눈에 익었다. 그곳은 사막에 연한 해변이었다. 그들은 왜 사막의 해변에 닻을 내리고 있는 걸까. 그녀는 해변에 홀로 서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환영하려고 서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다. 사막에 거하며 사막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사막에는 당신들이 거처할 빈 땅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잠든 그녀의 얼굴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그들도 다 알고 있었다. 사막은 불에 그슬린 채 하늘에서 쿵~하고 떨어진 텅 빈 땅이라는 것을 말이다. 해변은 점점 배들로 가득해졌다. 바다를 떠도는 세상의 모든 배들이 사막의 해변으로 몰려온 듯해 보였다. 이제 그녀 혼자서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열심히 사람들을 붙잡고 돌아가기를 종용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막에 가겠노라고 고집을 피우던 사람들이 마침내 하나둘 배에 올랐고, 해변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기진맥진해서 모래밭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 홀로 그 모든 사람들을 설득해 돌려보낸 것이다. 숨을 고르고 사막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녀는 아직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녀는 너무 지쳐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느린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침내 그가 무언가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입술이 움직이고 그의 음성이 그녀의 귀에 닿는 순간, 그녀는 느리게 의식을 되찾았고 그의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뒤척이자 그녀를 돌보던 여인들이 족장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족장들과 사람들이 그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녀는 심연에서 수면 위로 힘겹게 헤엄쳐 돌아오고 있었다. 그녀의 몸과 영혼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팔과 다리를 저을 수 없다고 느낀 순간이 몇 차례쯤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힘겹게 눈을 떴다. 사람들은 그녀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물속에 잠긴 모래알처럼 고요히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