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10. 17:00


허기

불 켜진 아파트의 창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그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들여놓지 않는 금단의 따스함. 나는 가끔 손가락을 내밀어 온기를 내뿜는 창문을 건드려보았다. 창문은 언제나 얼음처럼 차가웠다. 빛은 따스했고 벽과 유리는 차가웠다. 나의 겨울도 매일이 지옥처럼 차가웠다. 옷도, 살도, 심지어는 사타구니 사이의 속살까지도 차가웠다. 겨울비는 어느 계절의 비보다 아름답고, 쓸쓸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비가 그친 후의 냉기는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혹독했다. 청명한 하늘조차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종종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에서조차 울음소리와 신음의 울림을 듣곤 했다. 그것은 나의 것이기도 했고, 나와 비슷한, 혹은 나보다 더 깊은 바닥에 놓인 자들의 울부짖음이기도 했다. 어디로 몸을 숨겨도 추위를 피할 수 없었다.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세상에 없는 것이다. 태양은 색만 남은 채 온기를 잃어버렸고, 달은 다른 계절보다 더욱 차가운 표정으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의 눈마저 얼어붙어 세상을 외면할 것만 같은 추위. 집이 필요했다. 집이 아니더라도, 바람을 피해 누울 수 있는 곳. 몸이 돌아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 눈과 비를 막아줄 지붕. 하지만 걸친 옷 한 벌과 노트 한 권과 펜 몇 자루가 재산의 전부인 자가 도시에 집을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집이라는 것도 결국은 큰 상자에 불과하지만 나는 그 큰 상자 하나의 주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상자를 놓을 자리를 찾고, 상자를 만들고, 상자를 놓으면 된다. 상자 속, 그것이 종이상자건 콘크리트 상자건 그 안에서는 바람과 거리의 혹독한 추위를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찬 공기가 더 차가워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다. 봄여름가을의 긴 시간 동안 한없는 포근함으로 불어오던 바람은 겨울이 오가는 동안 괴물로 변해버린다. 따스한 계절에는 굳이 상자가 필요 없으니 겨울만 버텨내면… 어디선가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살찐 비둘기들일 것이다. 힘겹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배가 고프다. 마치 몸속에 거대하고 오래 굶주린 호수가 들어차있는 것처럼, 배가 고프다. 호수의 바닥은 심연이고 한없이 물을 빨아들인다. 비가 쏟아 붓듯 내려도 호수는 금세 말라버린다. 배가 고프다. 하늘의 절반은 무거운 구름으로 덮여있다. 나머지 절반의 하늘에서는 별들이 반짝인다. 돌멩이라도 집어 던지면 와르르 깨져버릴 것만 같은 투명한 하늘. 내 굶주림도 그렇게 투명하다. 배가 고파오면 나는 식당들이 즐비한 좁은 골목을 찾는다. 사색에 잠긴 듯 느린 걸음으로 배고픔을 잊을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걷는다. 주위를 살피며 배고프지 않은 척, 남들 먹는 만큼 먹고 사는 인생인척 자연스레 걸어야 한다. 자칫 성질 고약한 식당주인을 만나면 음식 냄새조차 맡을 수 없게 된다. 독한 향수처럼 번지는 고린내와 쾌쾌한 옷 냄새는 쉽게 제어되지 않는다. 허울은 꾸밀 수 있지만 냄새는 감출 수 없다. 나란히 걷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멀어진다. 그들도 나로부터 멀어지고, 나도 그들로부터 멀어진다. 골목에는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냄새나는 내 몸뚱이라도 잘라 구워먹고 싶다. 죽어가는 짐승이라도 한 마리 찾아낸다면 털을 뜯어내고 생고기라도 베어 물 듯 눈동자가 희번덕거린다. 골목에서 추방당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조용히 골목을 지나쳐 걷거나 혹은 정해진 비용을 지불하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돈을 가지지 못한 자가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것은 냄새뿐이다. 나는 하염없이 냄새에 골몰한다. 냄새에 취한다. 이 냄새를 풍기는 음식은 어떤 맛을 낼지, 저 냄새를 풍기는 음식은 무슨 맛을 낼지, 상상 속의 식사가 시작되면 머리와 내장과 몸은 하나가 된다. 상한 이빨로 거칠게 씹고, 마른 목구멍 너머로 힘겹게 넘기고, 잠시 숨을 돌린다. 뱃속으로 들어가는 과정 따위는 짐작도 하지 않고 씹고, 넘기고, 또 씹고, 또 넘긴다. 모든 것이 순서대로 혹은 순서 없이 마구 진도를 뽑는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히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뱃속이 비듯 영혼도 비어버린다. 채워지기 전에는 충만할 수 없다. 그립다. 내 육신에 둥지를 튼 빈 들통이 몇 개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게 되어버린다. 몸이 빈 것인지, 영혼이 빈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립다. 마냥 그립다. 세상의 어떤 그리움도 이렇게 거울처럼 선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움에 난 털의 개수까지 셀 수 있을 지경이다. 지독히 그립지만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 몸이 품고 있는 가장 지독한 그리움이 겨우 한 끼의 식사라니… 뼈가 저리도록 그립지만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텅 비어있고, 무한대로 비어있다. 숨 쉬고 있으나 살아있지 않다. 피는 돌고 있으나 생명은 아니다. 어린 시절 외삼촌이 아껴 키웠던 거대한 소가 기억난다. 나는 그 소의 얼굴이 나만큼 크다고 생각하곤 했다. 소의 가죽을 그대로 벗겨 텐트를 치면 나를 충분히 재워줄 수 있고, 심지어는 거실까지 갖춘 큰집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봄, 마을이 축제 분위기로 술렁거리던 날, 외삼촌의 소는 망치로 머리를 맞고, 가죽이 벗겨지고, 뜨거운 물에 삶겨져 마을 사람들의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나 역시 그 소를 먹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키운 짐승을 먹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지만 그런 날이 올 때마다 나는 우울했다. 사람들이 모여 게걸스럽게 소 한 마리를 먹어 치우는 풍경은 경이로웠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그런 일은 인간들의 선택에 따라 언제나 가능했다. 가족 혹은 가족 같은 존재의 살을 먹는 것. 그것도 아주 맛있게. 각 부위의 육질이 선사하는 다른 질감의 맛을 음미하는 것. 가족의 사망이 축제로 변하는 순간의 환희.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신성한 의무 같은 것. 죽은 자는 살을 내어주고, 살아남은 자는 먹어야 하는 삶의 순리. 그러나 숨 쉬고 있는 것은 결국 욕망뿐이다. 주린 배를 가득히 채우고 깃털처럼 소리 없이 잠들고 싶은 본능. 채워지기 전까지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 이래서 사람은 짐승의 탈을 벗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골목을 걷기 시작한다. 중국집도 있고, 추어탕집도 있고, 콩나물해장국집도 있고, 갈비집도 있고, 횟집도 있다. 가게마다 특유의 음식 냄새를 풍긴다. 그때그때 다르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는 동태탕집의 동태탕과 전 부치는 냄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건물 옆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후황이 있어서 계단에 앉아있으면 마음껏 음식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먹어보지 않고도 맛을 알 수 있다. 냄새만으로도 어떤 맛이 날 거라는 것을 아는 것은 행복일까, 벌일까? 동태탕이 끓는 냄새는 마치 고향집 마당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아늑하고 근사하다. 사람에게 동태는 얼마나 위대한 축복인가? 빈 땅을 고향삼아 자연스레 자라난 해바라기 밭처럼 말이다. 그 시원한 동태를 얼큰하게 먹을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값진 행운인가? 하지만 행운을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행운은 사고 팔리는 존재가 됐고, 사람들은 그걸 당연히 여기기 시작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허기를 느끼는 날에는 혀를 굴려 이빨 사이에 끼어있거나 입속을 굴러다니는 어제의 음식찌꺼기들을 찾곤 한다. 때로는 그 냄새나는 찌꺼기들이 하루 식사의 전부일 때도 있다. 행운이 공짜인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이므로 예외일 수 없다. 동태탕을 맛보는 행운을 얻으려면 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먹을거리로 가득한 골목 안에는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도 많다. 사람이 많은 만큼 보는 눈도 많다.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티가 나게 마련이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것 자체가 때로는 고역이다. 그러나 굶주린 인간에게 동태 살의 담백함과 동태 내장의 알큰한 고소함은 눈치나 자존심마저 버리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름대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냄새로 음식을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그리고 오늘밤엔 다행히 바람이 잠들어있다. 추위를 덜 느끼며 음식냄새를 즐길 수 있는 날이다. 나는 동태찌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리엔 모처럼 정적이 흐른다. 날짜와 요일은 알 수 있어도 무슨 일이 있는 날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물을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수도 없다. 거리는 평소처럼 반은 어둡고 반은 밝다. 어두운 길은 때론 낮에도 어둡고, 밤이 오면 더욱 어두워진다. 아무리 부유한 도시라도 24시간 내내 모든 골목을 밝힐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동태찌개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테이블의 손님이 있고, 주인장은 손님들에게 후식으로 내어줄 요구르트 비닐을 벗기고 있다. 나는 저 요구르트를 아주 잘 안다. 생김새뿐만 아니라 맛도 안다. 두 모금밖에 안 되는 중독성 가득한 맛의 음료. 딱 두 모금만 들어갈 만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다섯 개를 한 줄로 포장하고, 그렇게 포장된 세 줄을 묶어 다시 하나로 포장한다. 두 모금을 마시려면 어쨌거나 비닐 포장을 두 번 뜯어야 한다. 얇은 비닐이지만 맨손으로는 벗겨내기 어렵다. 문득 갈증이 치민다. 나는 주인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얼른 가게 옆 골목으로 들어가 후황이 달린 계단 위에 웅크리고 앉는다. 곧 나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마약을 흡입하듯 음식냄새에 취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오래 맡아도 질리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맡아도 배가 불러오지 않는다.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거대한 덩치로 내 시야를 막아선 아파트 숲으로 눈길을 돌린다. 반듯하게 붙어있는 아파트 유리 위로 출렁이는 보름달이 비친다. 보름달은 찌그러진 듯 보이지만 잔잔한 호수의 물결에 반영된 빛처럼 출렁이기도 한다. 된바람이 유리를 때릴 때마다 출렁이는 달. 나는 실재를 보고 있기도 하고, 실재가 아닌 것을 보고 있기도 하다. 내 눈에 들어온 달은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하다. 다시 코끝으로 실재하는 음식의 냄새가 풍겨온다. 보름달이 동태탕을 담은 뚝배기로 보이기 시작한다. 동태탕으로 변신한 달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어린 시절의 작은 오류가 떠오른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서도 컬러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곤 했었다. 난 분명히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지만, 화면 속의 사물들이 가진 색을 구분할 수 있었다. 어른이 된 후로는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명백히 깨달았지만, 지금 내 시선을 파고드는 저 붉은 보름달은 분명 얼큰하게 끓여낸 동태탕임에 틀림없다. 백 번, 천 번의 착각이라도 좋다. 저 달이 내 눈앞에 놓인 맛 좋은 음식이라는 것. 내 눈앞에 실재한다는 것. 내 눈에만 보인다는 것. 내가 지금 원하는 음식이라는 것. 지금 내 혀와 목구멍과 위장이 원하는 단 한 그릇의 푸짐한 요리라는 것. 하지만 동태탕은 냄새로만 존재할 뿐 내 위장을 채워줄 현실의 음식이 되어주지 못한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한다. 얼굴의 생김이나 행색 따위는 제쳐두고 표정만을 살핀다. 나는 내가 지켜보는 사람들의 위장이 비었는지 차있는지를 알아보고 싶다. 누군가 나처럼 주린 배를 가졌다면 나는 그 사람과 금방이라도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그들의 표정엔 굶주림의 흔적이 없다. 나는 그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잔뜩 구겨진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지나간다. 그의 얼굴에서는 허기가 읽힌다. 나는 이 남자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허기처럼 땅이 꺼질 만큼의 절망적인 허기는 아니다. 역시 내 친구로서는 무리다. 또 교복이다. 갓 중학교에 입학한 것 같아 보이는 큰 교복의 작은 아이들. 세 놈 모두 손에 컵을 들고 연신 먹어대며 걷고 있다. 주둥이가 빨갛다. 컵 떡볶이? 나는 주저 없이 놈들을 쫓기로 한다. 동태탕은 아니더라도 고추장이 들어간 매운 양념 맛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식사는 충분하다. 삼 분쯤 따라갔을까? 식성 좋은 어린놈들이 떡볶이를 남길 리 없다. 나는 컵이 바닥을 보이기 전에 녀석들에게 선수 칠 대사를 궁리해 본다. ‘얘들아, 이 아저씨가 떡볶이 조금만 먹어보면 안 될까?’ 글쎄… 불쑥 덤볐다간 아이들이 겁을 먹고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하다간 저 어린 돼지들이 국물까지 다 긁어먹을지도 모른다. 어쩌지. 어쩌지… 용기를 내야 한다. 까짓 거 말 한 마디면 되는 걸. 마음을 다잡고, 긴장을 풀고, 아이들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전봇대 옆에 놓인 대형 쓰레기봉투 위로 컵 세 개가 던져진다. 잠시 허망한 기분에 사로잡히지만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차피 내 것도 아니었고, 이미 늦은 것이라면, 너무 늦어서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았다면, 오늘도 어제처럼 운이 없는 하루일뿐인 것이다. 나는 녀석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세 개의 컵을 두 손 가득 그러모으고 잔존물을 확인한다. 두 컵 속엔 쥐어짜도 채 한 숟가락이 안 될 분량의 국물이 남아있다. 하지만 나머지 컵 속에는 보석 같은 건더기가 몇 알 들어있다. 어묵이다. 이 컵의 주인이었던 녀석은 어묵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 행복한, 어묵 세 알… 나는 느리게 행복을 맛볼 요량으로 국물만 묻어있는 컵 두 개를 찢어서 혀로 핥는다. 진득하니 살짝 마른 떡볶이 국물이 혀에서 뇌로, 뇌에서 위장으로 이어진다. 위장으로 이어진다? 이어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장으로 이어지기 전에 식도에서 걸리고 만다. 나는 사래든 목구멍으로 피를 쏟을 듯이 기침을 해댄다. 목을 타고 흘러내린 붉은 진액보다 내 굶주림이 흔들어대는 욕망이 먼저 식도를 훑은 모양이다. 나는 죽을 듯 하염없이 기침을 한다. 목울대에서 인간의 것도, 짐승의 것도 아닌 오묘한 굉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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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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