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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44 . 소원이 태어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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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이후로 나는 누이를 ‘그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둘 사이의 그저 평범한 애칭 같은 것이었지만 나는 아마도 그녀를 형제라기보다는 여전히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내가 잠시 머물렀던 집에서 만난 내 또래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을 돕는 조력자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호흡이 잘 맞았고, 그 중 몇몇과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하모니를 자랑했다. 우리는 의자를 만들고, 집을 짓고, 그네와 시소를 만들고, 침대를 짰다. 한번은 근사한 책장을 만들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어느 동료에게 선물했는데 책장이 너무 작아서 책을 꽂을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료는 자신의 책장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많은 가구와 집을 만들어 여러 동료들에게 선물했다. 그것은 모두 작은 장난감에 불과했지만 선물을 받은 동료들은 마치 진짜 가구를 선물받기라도 한 것처럼 기뻐했다. 나는 가족과의 생활이 시작된 후에도 가끔 내 어린 시절의 조력자들을 그리워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진 탓이었다. 한두 명의 얼굴이 겨우 기억나는가 싶다가도 다른 수십 명의 얼굴들과 겹치며 곧 뭉개져버렸다. 성도 이름도 성별도 없었던 내 인생의 첫 조력자들은 그렇게 내 마음과 기억에서 자취를 감췄다. 내 삶의 2막에서 나에게 남은 조력자는 어머니와 누이뿐이었으나 어머니는 내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누이는 자신의 일로 지나치게 바쁜 탓에 나를 많이 도와주지 않았다. 누이는 내 일을 시큰둥하게 여겼는데, 내가 보기에는 누이의 일이 내 일보다 몇 배는 더 별 볼일 없었다. 조금 더 자란 후에야 나는 누이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말이면 방에 틀어박혀서 종일 인형과 씨름하던 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인형이 아니라 나무를 만지고 있었다. 집의 헛간은 곧 누이와 나의 작업실이 되었다. 우리는 쓸데없는 물건들을 많이 만들었다. 아니, 만든 물건들이 쓸데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만들고자 하는 것을 서로의 도움 없이 각자의 힘으로 만들어냈다. 예를 들면, 누이의 주된 작품은 주방용품이었다. 접시, 밥그릇, 뚜껑이 있는 반찬통, 숟가락, 젓가락, 포크 등. 누이가 만든 것 중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나무집게였다. 얇고 긴 나무에 탄력을 주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불의 세기를 조절해가며 나무를 반으로 휘어놓았는데, 손에 잡히는 느낌도 훌륭했고, 탄력도 좋았다. 누이의 공예솜씨는 좋았지만 문제는 집의 주방에 이미 차고 넘치는 물건들이라는 데 있었다. 나는 주로 가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물건들도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없는 집에 아이용 탁자나 의자가 필요할리 만무했으니까. 어쨌든 우리는 서로 경쟁하듯이 물건들을 만들어냈고, 많은 나무를 토막 냈다. 우리는 서로의 일을 돕지는 않았지만 각자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누이가 독립한 후 3년 동안을 혼자 헛간에서 일했다. 나는 이제 평행봉이나 도마 같은 체조용 기구들을 만들었다. 대패질처럼 단순반복이 거듭되는 일을 하며 더디게 흐르는 시간에 무뎌지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빙하처럼 느리게 녹았다. 누이와 함께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허전함이 밀려왔다. 나는 대패를 던져두고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어느 주말, 누이와 나무를 심으러 갔던 날이 기억난다. 우리는 목공예를 시작한 이후로 틈날 때마다 숲의 빈터를 돌며 나무를 심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우리는 우비를 입고 감나무와 단풍나무 묘목을 들고 숲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가까운 빈터에는 이미 우리들이 심은 나무들로 가득했으므로 우리는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숲에는 낙엽송이 가장 많았고, 그밖에 여러 종류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숲 안에는 비행접시라도 다녀간 듯 둥근 모양의 빈터가 많았다. 바닥은 긴 세월동안 쌓인 낙엽으로 푹신푹신했다. 우리는 30분쯤 헤매고 나서야 빈 땅을 찾을 수 있었다. 숲은 여전히 화려하지 않은 고결함을 품고 있었다. 깊은 숲일수록 소박한 아름다움도 깊었다. 나는 무릎을 숙이고 젖은 낙엽송 이파리 한 장을 집어 들었다. 자연만이 찍어낼 수 있는 정교하고 소박한 무늬. 자연의 손길만이 완성할 수 있는 고운 가위질과 바느질 솜씨. 숲은 갈 때마다 다른 감동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시간은 비나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숲 속에 비가 내리면 곧 대기와 숲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젖은 대기는 나른했고, 빗소리는 요정들의 노랫소리처럼 다정하게 들렸다. 나는 언제나 숲과 비가 만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빗소리는 사방에서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대화에 나를 초대했다. 바람은 먼 곳에서 숲으로 밀려들어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지나 더 깊은 숲 속으로 날아갔다. 나는 어떤 소리로 자연과 대화를 나눌지 알지 못했다. 휘파람을 불어야할까. 눈을 깜박여야할까. 그냥 나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되려나…. 누이와 나는 숲의 한가운데에 나란히 앉아 비와 바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숲이 주는 평화는 고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가져간 스무 그루의 묘목 중에 여덟 그루를 심었다. 터가 작은 탓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숲 근처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오두막에 들렀다. 오두막은 오래 비어있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천장 모서리마다 두세 겹으로 걸린 거미줄과, 탁자 위에 뽀얗게 쌓인 먼지, 벽난로 옆에 높이 쌓여있는 장작도 그대로였다. 나는 불을 피우고 누이는 컵을 씻었다. 누이는 준비해간 티백을 꺼냈다. 나는 커피를 마셨다. 빗줄기가 거세어졌다. 통나무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액자 속에 담긴 사진을 보듯 오두막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숲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숲은 안개에 잠겨가고 있었다. 누이는 최근에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혼자 작업하는 시간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는 자주 끊겼다. 그럴 때마다 누이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고 말없이 숲을 바라보았다. 나는 누이의 옆모습에서 외로움을 읽었다. 그날 나는, 내 안에서 어떤 소원이 태어나는 소리를 들었다. 소원의 작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 소원은 이루기 힘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