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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외면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순간이나 존재를 만날 때가 온다.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없는 여러 독한 현상 중에 고독이 있다. 고독은 그 무한대의 심연을 무기삼아 이미 많은 이들의 생명을 죽음으로 물들였다. 고독은 고독 스스로 고독하기에 홀로 지낼 수 없는 존재다. 고독은 절대 홀로 고독할 줄 모른다. 그래서 함께 고독할 친구를 찾는다. 그러나 고독의 고독과 인간의 고독은 서로 만나지지도 않고, 서로 위로가 되어주지도 못한다. 결국 고독은 고독의 고독 속에 남고, 인간은 인간의 고독 속에서 몸부림친다. 고독은 날 때부터 고독이었으므로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고 고독하게 고독으로 남겨지지만, 사람은 고독 속에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사람은 쌓여가는 세월의 더미 안에서 고독의 조각들을 모아 영혼의 옷을 지어입고, 고독의 물로 씻은 얼굴을 내밀고 세상을 걷는다. 사람은 세상에 나올 때 영혼 속에 고독의 알을 품고 태어나고, 고독과 함께 자라난다. 사람의 몸은 성인이 되면 다 자라지만 고독의 성장에는 한계가 없다. 고독은 끝없이 자란다. 하마터면 나의 고독도 계곡 속의 이끼 숲처럼 무성하게 자랄 뻔했지만 내게는 다행히 어머니와 누이가 있었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고독만큼이나 강한 두려움과 고통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고독에 대한 공포였다. 언제부터 혼자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혼자여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고독의 운명에서 건져낸 것은 어머니였고, 동시에 누이였다. 처음 그들과 내가 서로의 생에 닿은 직후에, 그리고 그날로부터, 나는 그들이 나를 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침마다 기도했고, 저녁마다, 잠들기 전에, 심지어는 꿈속의 낯선 세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조차도 기도했다. 부디 버려지지 않는 생이기를. 나의 생을 다시 고독의 강 위에 쏟아버리지 말기를. 하지만 정규교육을 마치고 난 후, 나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일정 분량의 고독을 훈련받아야 했다. 나는 어머니를 떠나서 타의로 내게 주어진 독립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엉뚱하게도 고독을 배우기보다는 사람이 왜 고독할 수밖에 없는지를 더욱 깊이 있게 배웠다. 사람은 날 때부터 이미 혼자일 수 없는 존재였다. 몸이 형태를 갖추기 이전부터 누구나 어미와 이어져있고, 어미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둘로 시작된 생이 어미와 분리되어 하나가 되고, 그 하나로 남은 인생에 고독이 그림자가 되어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림자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머니의 태반 속처럼 절대 암흑의 공간뿐이었으므로 고독과 잠시라도 떨어져있고 싶다면 어둠을 찾아야만 했다. 세상에서 어둠을 찾는 일은 빛을 찾는 일보다 어려웠다. 완벽한 어둠일수록 더욱 그랬다. 고독의 실체를 알고 난 후 내가 한 일은 나를 고독으로부터 숨겨줄 수 있는 암흑의 공간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누이는 고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나는 가끔 누이를 만났다. 누이가 나를 불러내거나 내가 누이를 불러냈는데, 내 기억으로는 누이가 나를 불러내는 날이면 누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누이의 고독은 만날 때마다 한두 겹씩 두꺼워져있었다. 여린 누이의 영혼에는 너무 무거워 보이는 옷이었다. 누이의 고독 앞에서 나는 내 고독의 뚜껑조차 열어 보일 수 없었다. 달이 기울면 나는 좁고 어두운 거실에 앉아 밤을 보냈다. 하지만 도시의 밤에서 암흑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암흑은 오지 않았다. 도시의 밤은 화려한 빛의 늪이었다. 도시인들은 고독을 따돌리지 못하고 외로운 도시에서의 고독한 삶에 병들어갔다. 도시에서는 고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벽돌 한 장, 먼지 한 가닥조차 고독에 물들어있었고, 넓은 길과 좁은 길을 가리지 않고,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를 구분하지 않고, 온 도시의 길마다 카펫처럼 고독이 깔려있었다. 당연히 고독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서나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가느다란 몸으로 겨우 서있는 담벼락의 고독, 어미를 잃은 어린 고양이의 고독, 부드러운 미풍에도 맥없이 떨어지는 낙엽의 고독, 마른 이부자리 위를 뒹구는 머리카락 한 올의 고독, 적다 만 어제 일기의 마지막 줄의 고독, 다른 계절과 철저히 단절되어있는 한 계절의 고독, 지금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버리고 남기는 과거라는 시간의 고독, 다른 이의 얼굴만을 보여줘야 하는 운명을 가진 거울의 고독, 공원 분수의 그칠 줄 모르는 수압의 고독, 어느 방향을 바라봐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 붉은 십자가의 고독, 평생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비에 젖은 지붕의 고독,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너저분해진 부엌과 욕실의 고독, 세상의 모든 새로운 시작의 고독, 인적 없는 밤거리를 떠도는 바람의 고독, 오염된 대기의 숨 막히는 고독, 그 아래에 무겁게 가라앉은 새벽안개의 고독, 한순간도 쉬지 않고 홀로 타오르는 태양의 고독…. 그렇게 고독은 숨 쉴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만물의 그림자로 세상에 존재했다. 세상은 고독으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주변과 타인의 고독을 보고 먹으며 더욱 고독해졌다. 고독은 마치 사막을 흐르는 모래처럼 이리저리 덩어리지며 도시를 유랑했다. 고독은 도시 안에서 가장 크고 힘센 방랑자였다. 칼로 그어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무형의 불사신. 그는 모든 존재의 그림자였으므로 당연히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유로웠다. 온 도시에 그가 있었다. 어머니가 내게 가르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고독을 인정하는 것? 고독과 친구가 되는 것? 고독은 이미 이 별과 우주 전체에 떠다니는 사물과 생명들의 친구였으니 굳이 더 가깝게 지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게 아니라면, 고독의 무게를 느껴보라는 권유였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고독에 깔려 죽기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고독의 무게를 무시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고독은 그 잔인함만큼의 깊이로 사람들의 삶을 주름지게 했다. 모두가 고독의 강에 잠겨 힘겹게 헤엄치며 늙어가고 있었다. 그 강에는 바닥이 없었고, 그 세상에는 두 발로 딛고설 땅이 없었다. 나는 고독과 아주 친한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정갈하게 목욕을 한다고 했다. 목욕은 하루의 고독을 마감하고 새로운 하루의 고독을 맞이하는 그만의 진지한 의식이었다. 고독도 그가 그토록 심각하게 자신을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그런 식으로 매일 헌 고독을 보내고 새 고독을 맞아들였다. 그는 도시 속을 물풀처럼 떠다니는 고독이나, 먼지처럼 어깨 위에 내려앉고, 바람처럼 살갗을 스치는 다양한 여러 고독 중에서 가장 그의 마음에 드는 고독을 골라 그 고독과 함께 부유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의 특이한 발견 중 한 가지는 고독과 함께 보내는 하루가 외롭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고독은 정말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 그는 심지어 고독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식이다.


고독에게,

‘어제는 많이 바빴나 보더군. 얼굴 보기가 힘들었어.’

라고 말하면,

고독은,

‘얼마 전에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몇 있는데, 그 친구들이 너무 외로워해서 말이야….

마음이 아프잖아? 그래서 같이 놀아주느라 시간이 없었네.’


고독에게,

‘자네는 내 운명인가?’

라고 물으면,

고독은,

‘아닐세. 나는 친구지. 아주 가까운 친구일 뿐이야.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고독은 잠시 말을 멈추고 목청을 가다듬고는,

‘나는 자네 곁을 영원히 떠나지 않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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