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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59 . 사막으로 간 아카시아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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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는 이웃들에게 많은 화초를 선물했다.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작은 화초든 큰 화초든 제각각 각자가 가진 생명력의 절정에 닿아있었다.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사람의 손길이 식물에게 더 큰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다면, 노파가 돌본 화초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꿈은 그리 멀리 있는 방이 아니다. 잠을 자면, 되도록 긴 잠을 자면, 거의 항상 가능한 것이 꿈꾸는 일이다. 그러나 식물을 꿈의 방으로 안내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식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신기하게도 노파가 가꾼 화초들은 하나같이 평화롭게 잠들어있었고,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식물인 것 같은 표정으로 꿈에 잠겨있었다. 느리게 숨 쉬며 가늘게 떨리는 이파리…. 그들은 흙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식물들의 영혼만 존재하는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다. 젖은 흙 사이로 날아오른 물의 알갱이들이 이파리의 표면에 촘촘히 달라붙었다. 알갱이들은 서로 엉기며 몸을 부풀려 물방울이 되었다. 어린 단풍나무는 물방울이 자라듯 자신이 커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 화분을 떠나 한적한 숲 속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등걸의 두께가 단단해지고, 울창한 잎사귀들을 뽐내며 자라고 있었다. 꿈속에서의 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빠르게 흘러갔다. 커다란 몸으로 해를 가리고, 무성하게 뻗은 가지들로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서는 자신의 자손인 어린 단풍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어린 단풍나무는 어느새 튼튼한 어미 단풍나무가 되어있었다. 꿈꾸는 단풍나무의 여린 잎이 파르르 떨렸다. 온실 안에서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아카시아나무는 이 온실에 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나무가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아카시아 나무의 어미의 어미, 즉 아카시아 나무의 할머니뻘 되는 아카시아 나무의 씨앗은 풍요의 대지로부터 흘러내려왔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것은 순전히 노파의 근거 없는 짐작에 불과했지만 생각만으로도 노파는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노파는 주저 없이 어린 아카시아 나무를 위해 돈을 지불했고, 어린 아카시아 나무는 망각의 강 하류에서 배에 실려 이 도시 속 노파의 온실로 자리를 옮겼다. 노파는 아카시아나무를 위해 나무가 자라던 강 하류 기수지역의 토양을 넉넉히 퍼오도록 주문했는데, 흙의 양은 넉넉하다 못해 거대한 분량이어서 온실 전체의 바닥을 1미터 이상의 두께로 덮을 수 있었다. 아카시아나무는 먼 여행길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바짝 경직된 채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파는 나무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노파의 노래는 노파가 사막에서 듣던 노래, 즉 구전으로 내려오는 떠도는 자의 노래였다. 아카시아나무는 노파의 노래를 들으며 사막을 떠도는 바람과 생명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막의 꿈을 꾸게 되었다. 아카시아나무는 광활한 모래사막에서 유일한 생명체였다. 나무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다. 나무가 사막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막의 지형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무뿌리의 남과 북으로 작은 골이 파였고, 나무 주변에는 샘이 솟았다. 뿌리는 땅 속 깊이 파고들었고, 줄기와 가지는 하늘로 뻗어나갔다. 시간의 간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상은 느리게 회전했고, 나무는 눈부시도록 빠르게 성장했다. 나무의 뿌리는 사막의 모래 아래에 깔린 단단한 바위를 뚫고 내려가 물을 만났다. 사막 아래의 물에서는 단맛이 났다. 대지의 자양분이자 이 행성의 흙과 생물과 대기의 숨을 담고 경계 없이 자유롭게 흐르는 생명의 혈관. 아카시아나무의 뿌리는 장차 거대한 변화를 가져올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는 키 작은 풀들이 움을 텄고, 자라난 풀들은 불모의 사막에 씨를 날려 보냈다. 사막이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