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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60 .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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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짙게 내려앉은 날이었다. 어머니가 내 앞에 낯익은 봉투 한 장을 내려놓았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내가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숨겨졌던 남의 죄를 목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랐다. 봉투 안에는 망각의 강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나를 데려다줄 비행기 표가 들어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내게 이유를 묻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마주할 수 없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오래 내 속에 쌓아둔 거짓 같은 진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세상이 패륜이라고 손가락질할 만한 부도덕한 행태보다 더 나쁘게 빗나간 감정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감정의 뿌리에 도덕 따위가 함께 할 자리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감정은 지적 체계처럼 정리되지도 축적되지도 않는, 그저 한 방울의 물처럼 이미 감정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결정체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물이 둘로 쪼개질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선택한 것일까? 이미 누이와 한 몸이 되고 난 후에도 나는 나를 키운 어미에 대한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한 채 썩은 살점을 오르내리는 구더기마냥 부패한 감정의 덩어리들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이 두 여자가 나를 건져낸 것은 내게 저주일까, 축복일까? 그러나 적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지금 내 속에 숨 쉬고 있는 감정의 실체를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를 두 번 속이고, 두 번 배반하는 일이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풀잎 떨리듯 작은 목소리가 겨우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곧 슬픔의 그늘이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렇게 멈춰버린 시간이 어머니와 내가 함께 살아온 세월만큼의 거리를 두고 우리 사이를 흘러갔다. 어두웠던 사위가 더 어두워지고 나서야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투는 내 앞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며칠 후 나는 비의 도시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