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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62 . 도시만큼 거대한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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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의 유골은 노파의 왜소한 몸집만큼이나 양이 적었다. 밥공기 하나를 다 못 채울 분량이었다. 유골 위로 바람이 한 줌 불었다. 흩어지는 삶의 그림자…. 그 짧은 풍경은 마치 사막의 바람이 노파의 어깨를 어루만지는 것 같아 보였다. 흩날리는 뼛가루를 쓸어 담는 손길이 분주했다. 선장은 유골함 가게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항아리를 샀다. 가장 작은 유골함조차도 노파에게는 컸다. 노파의 육신이 남긴 가루는 머지않아 사막의 바람을 타고 모래의 대지 위를 떠돌며 사막의 대기 안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귀향…. 나는 잠시 사람의 인생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아는 그녀의 인생을 떠올리며 삶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 어쨌든, 얼마나 먼 길을 돌고 돌았든, 얼마나 긴 세월이 흘렀든,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머물기를 바랐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가져가는 것은 숨을 잃은 그녀의 유골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녀의 영혼 역시 함께 사막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의심할 수 없었다.


출항 준비가 시작되었다. 선장은 아카시아나무와 사람을 수십 명쯤 더 싣고도 파도가 흘수선에 닿지 못할 만큼 큰 배를 샀다. 새 배의 이름은 아카시아를 뜻하는 로비니아(Robinia)로 지었다. 도리스 호는 팔지 않았다. 선장은 아카시아나무를 배달한 후에 로비니아 호의 용도를 생각해볼 작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거의 반 년 치 분량의 식량과 부식을 배에 실었다. 일정이 길어질 것을 대비한 식량이었다. 노인들을 위해 구급약도 넉넉히 준비했다. 로비니아 호 역시 고기잡이를 위해 건조된 배였지만 이번 출항에서는 조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식량으로서의 고기잡이 정도는 필요했기에 그물은 빼고 선원 수만큼의 낚싯대를 챙겼다. 도시는 며칠째 안개에 싸여있었다. 먼지처럼 소리 없이 쌓이는 안개비. 바람은 멀리 날아가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대기에 갇힌 안개는 바다의 짠 비린내와 비의 물비린내가 섞여 사람들로 하여금 물속에 잠겨있는 듯 불쾌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탓에 사람들은 냄새나고 축축한 양말을 신고 다녔다. 조밀하게 들어찬 안개는 사람들의 식도와 폐까지 장악했다. 짙은 안개의 세상에서는 모두가 모두의 호흡을 나눠가져야 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졌다. 누군가가 풍기고 있는 냄새가 곧 나의 냄새와 같았고, 나에게서 나는 냄새가 다른 이들의 냄새와 다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냄새, 인간의 덜 마른 옷이 풍기는 쉰내와 퀴퀴한 입 냄새를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안개는 대기 안에 갇혔고, 사람들은 안개 속에 묻혔다. 안개는 마치, 도시 크기만큼의 거대한 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