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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63 . 바다가 끓어오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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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은 안개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고린내 나는 육지의 안개를 뒤로 하고 소금기가 이글거리는 해무를 가르며 항해를 시작했다. 노인들의 표정은 바다를 건너는 자들의 것이라기보다는 산맥을 넘어야 하는 자들의 것과 비슷했다. 배에 오르기 전부터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 노인도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두어 명의 노인을 항구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짙은 남색의 선체에 핏빛 적색으로 흘수선을 그은 로비니아 호는 육중하고 느리게 파도 위를 미끄러져나갔다. 누군가 우리 배를 보았다면 커다랗고 각진 검은 바위가 바다 위를 떠다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해무를 벗어나기까지 나흘이 걸렸다. 바다는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노인들은 잘 견뎌내고 있었다. 안개 걷힌 바다는 다시 비의 세상이었다. 노인들의 하루는 바다를 보는 것으로 시작되어 저녁식사와 함께 끝났다. 그들은 종일 바다를 바라보았고, 일찍 잠들었다. 사막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로비니아 호의 항해는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의 걸음걸이처럼 느리고 여유로웠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 배를 세워놓고 낚싯대를 드리웠다. 바다는 여전히 친절했고, 우리는 언제나 먹고 남을 만큼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노인들은 식탁 앞에 앉을 때마다 풍요로웠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긴 폭우가 어서 끝나고 풍어의 때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노인들의 뇌수에 양각된 행복은 떠들썩한 항구의 모습이었다. 집하장 이곳저곳에 무더기로 쌓여 산을 이룬 생선들과, 북적이는 일꾼과 뱃사람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울리는 사람들의 고함소리. 노인들은 그 시절의 시끄럽고 분주한 날들을 다시 살고 싶어 했다. 바다는 그들을 키우고 먹인 어머니이자 젖줄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들의 혈관에서는 붉은 해수가 흘렀다. 사막의 영혼들이 모래알에 고착되어 살듯 그들의 영혼은 차갑고 짠 바다에 절여져있었다. 그들의 모든 흩어진 조상들의 뿌리가 하나의 근원으로 모여들어 최초의 한 남자와 한 여자로 귀결되기까지의 긴 세월 동안, 바다는 그들을 품은 자궁이었고 태반이었다. 저승이 이승보다 가까운 시기에 그들의 마지막 소원이랄 것이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일하고 늙고 죽음을 맞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유해가 바다에 뿌려지기를 원했다. 생명의 마지막 장까지 바다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는 죽음으로서 끝나지만 마르지 않는 바다에 뼛가루라도 녹아들어 거친 파도와 함께 넘실대며 영원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항해는 어둠을 향해가고 있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는 만큼 바다의 색도 검게 변했다. 빗방울의 무게도 조금씩 육중해져갔다. 로비니아 호는 바다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머나먼 세상의 무덤들을 여행하는 장례 행렬처럼 어두컴컴한 물의 세상을 느리게 떠가고 있었다. 선장은 자주 다른 선원들에게 키를 맡겼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바다나 구름, 또는 수평선이나 바람 같은, 시선이 닿는 풍경들의 흔적을 좇고 있는 듯했다. 항해가 시작된 이후로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끼니도 대충 때우거나 건너 뛸 때가 많았다. 그의 몸은 난장이처럼 작아져가고 있었다. 키를 잡고 있는 선장의 팔뚝은 잘 깎아놓은 곤봉 같아보였다. 그것은 몸이 아니라 몸의 기능을 하는 나무토막이었다. 어쩌면 그는 늙은 피노키오이거나 피노키오 혈통의 계승자인지도 모른다. 나무 한 그루를 싣고 사막을 향해 항해하는 강인하고 늙은 나무인형…. 나무인형의 눈동자는 바다를 노려보고 있다. 수면 위의 세상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 뒤에 숨어있는 바다의 속셈을 노려보는 시선이다. 선장의 마른 눈동자 위로는 가는 핏줄이 거미줄처럼 엉겨있었다. 선장의 눈빛은 날선 작두 같았다. 모두들 선장이 바다를 읽는 일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나는 바다의 속을 들여다보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항해는, 꾸준히 나아가기만 하면 조금 늦거나 조금 이르게, 그러나 틀림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거라는 막연하지만 당연한 확신이었다. 사막을 기다리며 나는 노파의 글을 마음속으로 한 대목씩 다시 읽어나갔다. 다른 책들을 손에 들고서도 나는 노파의 이야기 속에 잠겨있었다. 노파의 이야기는 마치 물보다 소금의 농도가 더 짙은 요르단의 죽음의 바다처럼 헤엄칠 줄 모르는 나를 상상의 바다 위에 둥둥 뜨게 했다. 나는 늘 유리잔에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나의 유리잔은 배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유리그릇이었다. 장례식 후에 선장은 내게 노파의 유품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했고, 나는 주저 없이 노파가 쓰던 유리잔을 물려받기로 했다. 유리잔에는 모래알들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아마도 사막의 것일 거라고 선장은 말했다. 아무 장식도 없이 그저 녹은 유리에 몇 개의 모래알이 섞여있는 단순한 모양의 유리잔이었지만 유리벽 안에 갇힌 모래알들의 모양은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사막의 모래가 부유하고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멈춘 순간에도, 모래알들은 허공에 떠있었다. 나는 가끔 컵 속의 모래알들을 바라볼 때 다가오는 망각의 시간을 즐겼다. 모든 것을 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정신적 무(無)의 시간이 잠시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자유도, 속박도, 강압도, 자발도, 자의식도, 무의식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요람 같은 평화를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도 가늘고 가벼워서 낮고 여린 파도에도 곧 끊어지거나 흔들리고 말았다. 바다는 여전히 조용했다. 바람이 잦아든 수면의 평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잔잔한 봄비와 닮아 있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 긴 폭풍우는 그런 면에서 다분히 불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거칠고 험악할 때보다 유순할 때가 더 많았다. 거침없이 잡아 먹어치우는 굶주린 맹수가 아니라 오랜 세월 곁에 존재하며 필요할 때만 먹이를 파먹는 생존형 포식자였다. 유순했으나 질겼다. 그의 생명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그의 생명은 끝나지 않았다. 아마 내일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처럼, 자장가처럼 조용히 소곤거리다가 느닷없이 대기를 찢는 천둥으로, 날 선 벼락으로 변신할 것이다. 선장은 입버릇처럼 ‘한 번은 만날 것이다….’ 라고 독백하곤 했다. 그것은 말을 잃은 그가 유일하게 잃지 않은 말이었다. 선장은 침묵의 벽 너머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으나 우리 중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는 잃어버린 길을 알고 있는 마지막 늙은 양의 동공처럼 보이지 않는 깊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바다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연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다 위의 일은 심해의 바닥에 닿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은 상징의 세계이고, 우리 인간들은 상징이 가져올 현실을 읽어내야 한다. 그곳은 해수에 잠긴 거대한 상징의 숲이다. 비대한 도시를 담은 한 장의 커다란 도면처럼 복잡하게 얽힌 상징들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크고 명확한 현실로 다가올 상징들을 골라내고 그것이 현실로 바뀌었을 때의 모습을 예측해야 한다. 그 옷차림과 얼굴을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바다 속 작은 정원의 곱게 자란 어린 나무 한 그루가 가벼운 벼락을 맞고 반으로 쪼개지면, 수면 위에서는 잔잔했던 파도가 수십 미터 높이로 널을 뛰며 대양을 건너는 갈매기들을 집어삼킬 수도 있는 것이다. 바다는 잠시 잠들 뿐, 영원히 늙지 않는 청춘의 혈기로 가득 찬 존재인 것이다. 나는 무료함에 젖어 종종 엉뚱한 상상에 빠지곤 했다. 사막의 해변에 닿으면 도리스 호가 고기잡이를 마치고 귀항하던 때처럼 노파가 미소 띤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든지, 구멍바위 옆에 아카시아 나무를 심고 나무 바로 옆에 노파의 온실을 재현하는 일을 한다든가, 사막의 떠도는 자처럼 모두가 사막의 언어로 노래하는 풍경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울창하게 자란 아카시아 나무가 사막의 비바람에 젖어 이파리를 흔드는 소리도….

도시를 떠난 지 사십 일째 접어들었다. 로비니아 호는 내 예상대로 큰 사고 없이 사막에 더 가까운 자리로 이동했다. 일상에는 변함이 없었다. 노인들의 눈동자는 이제 세상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깊어졌다. 구름과 비와 바다는 어린아이처럼 순했고, 항해는 고요한 강물처럼 평화롭게 흘러갔다. 성내는 바다의 영혼은 소금물만 남겨놓고 바다를 떠난 모양이었다. 분노의 영혼이 돌아와 바다가 용암처럼 끓어오르기 전에 우리는 사막의 해변에 닿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