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18. 16:58


눈 덮인 살


몸에 눈이 내렸다. 머리와 몸에 내린 작고 흰 눈들은 눈에 보이지 않게 크기를 불려나갔다. 거울을 보지 않는 나에게 그들의 성장이 눈에 띨 리 없었다. 하지만 몸은 소리 없이 말하고 있었다. 가려움증이 심해졌다. 팔과 손과 손가락을 최대한 늘려 등과 몸 구석구석을 긁었다. 반복되는 행위는 버릇이 된다. 몸을 긁는 행위 역시 곧 버릇이 되었다. 손톱마다 눈처럼 하얀 가루가 끼었고,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은 핏물로 얼룩졌다. 손톱에 긁힌 살갗은 곪아서 진물을 뱉었고, 진물에 젖은 살 껍질 위로 다시 하얗게 눈이 내려앉았다. 가려움은 사라질 줄 모르고 밤이고 낮이고 몸을 괴롭혔다. 씻지 못한 탓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씻으려면 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눈을 씻어내려고 물을 찾다니. 얼음을 녹이려고 물을 찾는다. 라니… 그것도 한겨울에.

몸뚱이는 그렇다 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과 발톱이 썩기 시작했다. 어떤 손톱은 끄트머리부터, 어떤 손톱은 속살부터, 어떤 손톱은 뿌리부터, 잘게 부서지고, 껍질이 떨어져나갔다. 손톱에 이어 발톱도 닭 껍질처럼 노랗게 썩어갔다.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껍질이 얇아진 손톱은 울퉁불퉁하게 휘고 조각조각 갈라졌다. 그 중 아직 숨이 붙어있는 몇 조각은 겨우 살에 붙어있었다. 손톱에도 체온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살 위에 제대로 붙어있는 손톱은 나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살에 붙은 척 달랑거리는 손톱은 체온을 잃었다. 체온이 없는 손톱이라니. 손톱에도 체온이 있었다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경험은 대부분 가르침을 주지만, 어떤 가르침은 고통스럽다. 눈에 덮인 육신은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먼지만한 불똥만 튀어도 세상을 통째로 불살라버릴 것만 같은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 그 바람을 타고 하루가 다르게 몸 위에 눈이 쌓여갔다. 살의 굴곡과 가파르게 접힌 골짜기와 무성한 숲 안에도 눈이 쌓여갔다. 멈추지 않았다.


욕실은 내게 썩은 몸뚱이를 세척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욕실은 지은 죄를 사하여주는 곳도 아니요. 먼눈을 뜨게 해주는 곳도 아니요. 단지 차가운 물로 눈 내린 육신의 먼지를 털어내는 장소일 뿐이다. 이제는 냉수로 몸을 씻어내는 것이 짧은 평생 내 가느다란 뼈에 겨우 붙어사는 살가죽보다 더 자연스럽다. 아무리 긴 이야기도 때가 되면 끝이 나게 마련이지만, 내 몸에 쌓여가는 눈의 이야기는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별로 지루하지 않다. 눈이 내리고, 가려운 곳을 긁고, 욕실을 찾고, 냉수로 살을 씻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이를 갈며 몸의 체온을 되찾고, 욕실을 나오는, 단순하지 않은 일련의 과정이 다행히도 별로 지루하지 않다.


빌딩들은 저녁이 되면 문이 잠긴다. 몸을 씻으려면 건물이 잠기기 전에 안에 들어가 몸을 숨겨야 한다. 운 좋게 몸을 숨기고 나면 관리인의 눈과 귀를 피해 최대한 높은 층으로 올라간다. 물 쓰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관리실이 있는 1층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층에서 샤워를 해야 한다. 나는 주로 4층을 이용하지만 가끔 6층이나 5층 화장실을 쓰기도 한다.


씻어낸 살이 시원한 것도 잠시, 몸은 다시 구더기 굴이라도 된 듯 가려워오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마도. 내장에서 득실거리던 구더기들이 껍질까지 점령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모른다. 이유는 모른다. 답을 아는 자의 입이 열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눈이 내린 자리는 둥그렇고 허옇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눈 자국은 곧 주변의 다른 자리와 몸을 합쳐 큰 덩어리로 자란다. 오래 물로 씻어낸다. 둥그렇고 허옇던 자리가 붉게 변한다. 마치 개펄 위를 덮은 칠면초 밭을 보는 듯하다. 머리를 흔들 때마다 두피를 녹인 진액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붉은 밭 위로 다시 눈이 내린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외치는 듯하다. 살아있는 냄새다. 찬물에 손을 적시고 그 손으로 몸을 닦는다. 여명이 밝고 건물의 셔터가 열릴 때까지 몸 닦기를 반복한다. 머리 껍질을 삼킨 독한 냄새는 주인 곁을 떠날 줄 모른다. 나에게 철썩 붙어있는 냄새니 다행히 다른 이들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다. 덜그럭거리며 셔터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앞으로 최소한 두세 시간 이상을 건물 화장실 안에서 버텨야 한다. 사람들이 몰려들 시간에 맞춰 나가지 않으면 그나마 몸을 씻는 일도 그만둬야 한다. 들키면, 목욕은 끝이다. 흰쌀에 섞인 한 마리의 구더기처럼 사람들의 눈에 띠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파의 중앙을 뚫고 건물을 빠져나가야 한다. 누군가는 내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하나가 내가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 것을 그들 중 다른 하나에게 알리기 전에 건물의 바깥, 자유의 땅을 밟으면 된다. 넓고 추운 자유의 땅. 이제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땅의 냉기가 발바닥으로 전해져온다. 차갑다. 얼음처럼 차갑다.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일출 오전 세 시 오십일 분. 일몰 오후 열한 시 십사 분. 자정 사십육 분 전에 해가 지는 곳.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태양 아래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는 나라. 송곳 같은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붉고 둥근 살 위에 눈이 쌓이고, 얼지도 않고 녹지도 않는 구더기들이 눈밭 위를 기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고, 눈이 내리고, 쌓인 눈의 두께가 3밀리미터를 넘기 시작하면 살이 갈라지고 피가 고인다. 내 살로 돋아나 층지어 자란 껍질들이 두께를 더하며 마른 땅처럼 갈라진다. 이럴 때는 오히려 몸을 닦을 수 없다. 날카롭게 마른 살들이 찢어진 틈 사이로 연약한 속살을 찌른다. 내 몸에서 자란 내 살이 다시 내 살을 찌른다. 별의 공전 같은 고통의 무한 반복. 내버려두면 5밀리미터나 1센티미터가 넘도록 자라기도 한다. 빙하가 갈라지듯 부스럼이 갈라지고, 갈라진 틈 사이로는 푸른 바다가 아니라 붉은 피가 흐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여기기에는 지나치게 고통스럽다. 면도날. 너무 가늘고 날카로워서 베인 순간에는 고통을 모르다가 터진 살의 붉은 눈물을 보고서야 겨우 쓰라림을 알게 되는 우울한 순간. 보이지 않는 예리한 날이 계속 살갗을 긋는다. 부지런하다. 쉬지 않는다. 무언가 내 몸에 각인을 새기려는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내 몸을 찢고 나오려는 것인가? 이유야 무엇이든 간에 고통은 한결같다. 고통스럽고, 고통스럽다. 하루에 아침저녁으로 두 번에 걸쳐 고된 일터에 나가야 하는 자식 둘 가진 젊은 미망인의 삶처럼. 혹은 그보다 더. 자주. 고통스럽다. 어쩌면 죄악의 껍질일지도 모를 내 마른 살들. 벗겨내고 벗겨내도 다시 솟아오르는 것이 더도 덜도 없이 딱 죄의 모양새를 닮았다. 달은 차오르기 시작하면 하염없이 차오른다. 밀물과 썰물이 그 힘에 기댄 채 관성에 가속도를 붙인다. 이 세상에 달의 공전을 막을 자는 없다. 기다려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기다리다보면 변한다. 색을 가로채고, 온도를 바꾼다. 마치 스스로 변하지 않았다는 듯이 교묘한 얼굴로 모든 것이 겉과 속을 바꾼다. 모든 것들이. 나 역시 한때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아무것도 견딜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변화는 겨우 종이 한 장 너머에 있다. 세상에 가장 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종이 한 장의 두께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마지막 종이 한 장 두께의 벽을 앞에 두고 맥없이 무너진다.


“심해지면 못 걸을 수도 있어.” 초로의 남자가 말했다.

“그럴 리가요.” 무심한 듯 내가 대답했다.

“이 병은 결국 자네 속을 파먹을 거야. 시작은 껍데기. 마지막에는 뼈와 눈.”

낯선 남자는 뭔가 제대로 아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늦으면 고칠 수 없어.”

“어째서 그렇습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자는 꽤 잘 나가던 피부과 의사였지만, 지금은 친구가 운영하는 약국 근처를 떠돌면서 약사 친구에게 용돈을 얻어 쓰며 연명하고 있다. 몇 번 물어보았으나 길을 떠돌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내게 별로 도움 되지 않는 주치의가 되어주었다. 약을 쓰는 방법과 어떤 약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병증에 대한 우리의 질의응답은 항상 묻고 답하기로 끝났다. 묻고, 답하고, 끝. 누가 나에게 약을 주겠는가. 그는 내게 몇 가지 종류의 면억억제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면역억제제는 보통 장기이식 환자들의 면역부작용을 위해 만들어진 약이지만 요즘은 건선에도 쓰인다고 했다.

“건선은 자가 면역 질환 중 하나야.

한 마디로 면역세포들이 혼란에 빠진 상태인 거지.

멀쩡한 세포를 망가진 세포로 인식하거나, 공격대상으로 오인하는 거야.

상대의 정체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마구 면역 활동을 해서

결국은 지금의 자네 몸처럼 엉망진창을 만드는 거지.”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안정된 삶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게 편해. 이게 나에게 어울린다는 걸 길에서 살면서 깨달았어.

처음이야. 나에게 뭔가가 어울린다고 느낀 건.

일단 현재로선 이 생활이 나에게 어울려.”

짧은 찰나, 그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스쳤다. 자유… 자유를 얻은 가난한 영혼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랄까. 억측일지 모르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평화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가끔 그의 얼굴은 본인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충동으로 가득차고는 했다.

“견디기 힘들어. 이러면 곤란하지.”

그는 자주 혼잣말을 뱉었다. 나는 질문 대신 그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사고현장을 이리저리 거닐며 아스팔트 위에 흩어진 아내의 살점들을 알뜰히 긁어모았다. 그녀가 차와 부딪쳤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으로부터 약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그는 아내의 송곳니 하나를 찾아냈다. 미소가 아름다운 여자였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와는 조금 달랐어.”

“뭐가 말입니까?”

같은 사람끼리 사람 사이에 경계를 긋고,

‘우리와 달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 수 있을까 나는 궁금했다.

“뭐랄까… 종이 달랐다고 해야 하나?

미소가 참 고운데, 그 환한 얼굴 속에서 송곳니만 유난히 반짝이는 거야.

그거 참 희한한 표정이거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

나는 역시 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것으로 이야기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자넨 잘 먹어야 해.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는 어렵지.

어딘가 돌아갈 곳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몸을 추스르게. 늦으면 수습하기 힘들어져.”

그의 말을 듣고서는 돌아갈 곳이 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긴 생각 끝에, 나 역시 그처럼 길이 나에게 어울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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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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