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1. 25. 04:27


끼니

눈보라가 매섭다. 나는 우선 손을 뻗어 음식이 담겨있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천막 안은 캄캄한 암흑이었다. 일 분쯤 더듬었을까? 차가운 것이 손가락 끝에 닿는다. 같은 크기의 둥그런 쇳덩어리들이 층층이 쌓여있다. 그래, 어쩌면 만두 찜통인지도 모른다. 맨 위의 두 통은 비어있다. 오, 제발… 세 번째 통에 손을 집어넣는데 뭔가 단단하지 않은 것이 만져진다. 만두다. 나는 양손을 재빨리 놀려 세 번째 찜통을 끄집어내 가슴팍에 끌어안고 포장마차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만두는 다행히 얼지는 않았지만 빚어진 후 한 번도 익어본 적 없는 날것이다. 하지만 이거라도 좋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입 안에 만두를 넣고 온몸의 온기를 모아 만두를 데운다. 긴 시간이 흘렀다고 느낀다. 그러나 만두는 익지도 않고 데워지지도 않는다. 혀를 이리저리 놀려보지만 입술과 혀의 온도만으로는 만두를 익힐 수 없다. 너무 오래 추위에 떤 탓일까. 입안에 불이라도 질러야하나. 생 만두를 씹는 이빨 사이에 언 야채와 날고기가 끼어 서걱거린다. 세 번째 만두 알을 씹어 삼키자 종일 접혀있던 창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돌돌 말려있던 줄기를 펴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허리 접힌 연통이 뻐근한 소음을 내며 펴지는 것 같은 소리, 혹은 작은 북소리 같기도 하다. 그 작은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다. 이게 행복이다. 배부른 것. 배가 부르고 나서야 뭘 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전철이 다닐 때까지만 버티기로 한다. 그러면 밤새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집채만 한 바람이 포장마차를 쿵 때리고 지나간다. 포장마차의 바퀴가 도르르 구르며 옆으로 일 미터쯤 밀려나다가 타이어에 묶인 체인에 걸려 쇳소리를 내며 멈춰 선다. 물에 곱게 반죽된 밀가루와 질 낮은 생고기와 날 두부와 갖은 야채들이 대장을 밀고 내려가며 불쾌한 조짐을 보이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만두를 씹는다. 최대한 많이 먹어야 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 내가 먹어 치울 수 있는 최대한의 양을 먹어야 한다. 포장마차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아무리 날것이더라도 절대 공짜로는 만두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속이 걸레가 되더라도 지금 먹어둬야 춥고 배고픈 내일을 또 버텨낼 수 있다. 매 맞지 않고 실컷 생 만두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만두 탓일까?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몸은 서서히 얼어가고 있었다. 혀는 미각을 잃었고, 턱뼈의 움직임 역시 둔해졌다. 해가 뜨려면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할까? 정오가 오고 태양의 온도가 최고조에 닿으면 뜨거운 일광욕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추위에 얼어 둔해진 턱뼈가 허기에 축 늘어진 혀의 모서리를 깨물었다. 멍한 고막 안으로 ‘으적’하며 혀가 찢어지는 소리가 작지만 힘 있게 울렸다. 금세 입안으로 피의 뜨거운 기운이 번져나갔다. 따뜻했다. 그리고 비렸다. 오래 씹어서 잘게 부서진 만두 알갱이들 사이로 피가 섞여들었다. 묘한 맛이었다. 이미 날것인 만두는 더욱 날것의 맛을 냈다. 나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내 몸의 속살에서 솟는 피의 맛은 불쾌하지만 낯선 쾌감을 동반했다. 절단. 출혈. 피. 피의 맛. 머릿속을 맴돌던 비린 맛은 이내 목구멍을 타고 식도를 따라 흘러내려갔다. 만두를 몇 개나 먹었을까? 개수를 셈하기도 전에 광풍에 밀린 포장마차의 비닐이 내 등을 떠밀었다. 그대로 고꾸라진 나는 양손을 뻗어 얼음 같은 아스팔트 바닥을 짚었다. 손목과 손가락 마디가 끊어질 듯 고통스러웠다. 바람이 잠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입술 사이로 계속 피가 흘렀다. 나의 체온을 담은 체액의 정수가 땅위로 떨어져 번졌다. 나는 땅을 짚은 채로 먹은 만두를 모두 토해냈다. 심장이 뛰었다. 어둠에 충분히 익숙해진 눈동자였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도 들키지 않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만두를 먹을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이라고. 다행이었다고. 한 겨울, 늦은 새벽. 세상에는 눈과 바람과 추위와 굶주림만 존재하는 듯했다. 바람에 열린 천막 사이로 노란 가로등 빛이 눈에 들어왔다. 빛 아래로 그림처럼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지난 밤 전철 역사 앞에서 우연히 지나쳤던 어떤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평생을 살아도 같은 얼굴을 두 번 마주치기 힘들 만큼 거대한 도시에서의 삶. 나는 어쩌면 두 번 다시 그 여자의 얼굴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 도시는 거대하지만 생각보다 작은 도시다. 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절망이기도 했고 희망이기도 했다. 작은 얼굴, 작은 어깨, 작은 몸, 작은 키였지만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롱 코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 여자는 베이지색 롱 코트 위에 피처럼 붉은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운이 좋다면 한 번 더 봤으면 좋겠다고. 가능하다면 봄이었으면 좋겠다고. 엷고 수수한 색의 꽃무늬가 새겨진 얇은 원피스의 그녀. 칼날 같은 바람에 작은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계절에, 자유로운 육신의, 자유로운 호흡의, 자유로운 바람처럼, 자유로운 걸음을 걷는 그녀를 보고 싶다고.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썩어가는 내 영혼도 잠시나마 맑아질 것 같다고. 하지만 바람이 스치듯 내 옆을 지나치던 그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포장마차는 길보다는 나았지만 밀려드는 바람을 완벽하게 막아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겨울잠에 들지 못하고 산 채로 겨울을 나야 하는 짐승에게 겨울은 길고 혹독한 계절이다. 바람과, 눈과, 얼음과, 풍족하게 겨울을 나는 다른 짐승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곳은 그리 마땅치 않다. 몇 시나 되었을까? 해가 떨어지고 난 후에는 사람들과 버스와 전철의 움직임을 보며 시간을 가늠할 수 있지만, 가장 두렵고 길고 흐르지 않는 시간은 자정 무렵부터 태양이 솟아오르기까지의 시간이다. 깊은 어둠에 몸을 담그고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오지 않을 것 같은 아침을 기다리는, 온몸과 온 정신을 토하듯 쏟아내어 인내해야 하는 시간. 그건 가장 추운 겨울의, 가장 추운 시간을, 가장 추운 길에서 보내야 하는 짐승에게는 가볍지 않은 저주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슬픈 눈물조차 그 시간을 당기거나 미룰 수 없다. 신은 좀처럼 설득 당하지 않는다.

“신은 없어.”

라고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그럼 계절은 누구의 손에 의해 회전하지?”

라고 중얼거린다.

“계절.”

이라고 중얼거린다.

바보 같은 대답.

사람조차 자신의 삶을 나누거나 합치거나 흐르거나 멈추게 할 수 없지. 하물며 계절 따위가.

“신은 존재해.”

라고 다시 중얼거린다.

“단지… 나만 위해주는 신이 없을 뿐이지.”

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니 신은 확실히 존재해.”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태양의 고도가 정오에 닿으면 일광욕을 하고자 하였으나, 내게는 집도, 올라가 누울 지붕도 없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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