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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묵상

한페이지독서 - 헨리 밀러, 북회귀선 (포르노그래피와 예술의 경계)

https://youtu.be/HEavxXdzeJY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입니다.

포르노그래피와 예술의 경계라는 부제를 붙여봤는데요.

 

외설이라는 화두를 표현의 자유로 바꾸어 생각했을 때,

저는 두 명의 미국 작가가 떠오릅니다.

한 사람은 찰스 부코스키이구요.

다른 한 사람이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헨리 밀러입니다.

두 작가의 차이가 있다면, 부코스키는 시를 썼고,

밀러는 소설을 썼다는 것이겠지요.

 

북회귀선은 미국 문학사에서 꽤 긴 시간 동안 외설시비에 시달렸던 작품입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외면 속에서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된 작품이기도 하구요.

그로부터 무려 30년이 흐른 뒤에야 미국 본토에서 얼굴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합니다.

외설 시비의 골격은 매우 단순합니다.

예술성이 있는 작품인가를 증명하면 일단락이 되는 것인데요.

삶의 추한 면을 쏙 빼고, 인생의 반짝이는 비늘만 긁어모아놓으면 예술이 되는 걸까요?

그 끝에 무엇이 남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끝까지 들이마셨을 때, 그 바닥에 삶의 진실이 남는다면, 예술로 인정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프랑스의 파리를 무대로 하구요.

작품 속에서 밀러는 파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같은 인간을 파리로 기어들게 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파리는 바로 인공적인 무대이다. 구경꾼들이 투쟁의 모든 장면을 슬쩍 훔쳐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회전무대이다. 파리 스스로는 결코 어떠한 드라마도 시작하지 않지만, 드라마는 곳곳에서 펼쳐진다. 파리는 단지 자궁으로부터 살아있는 태아를 끄집어내어 인공 보육기 속으로 옮기는 산부인과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는 인공 출산의 요람이다. 이 요람 속에서 흔들리면서, 사람들의 꿈은 어느 결에 자신의 토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베를린으로, 뉴욕으로, 시카고로, 빈으로, 민스크로 사람들의 꿈은 돌아간다. 빈은 결코 파리에서의 빈보다 빈답지 않다. 모든 것이 숭배의 경지에 오른다. 그 갓난아기들이 요람을 떠나면, 또 새로운 갓난아이가 그리로 들어간다. 졸라와 발자크, 단테, 스트린드베리 등, 이전에 어떤 일을 이룩한 인물이 살았던 이 벽에서 우리는 그 주인공의 자취를 읽을 수 있다. 모두들 한때는 여기서 살지만, 아무도 여기서는 죽지 않았다....”

 

밀러의 글을 읽고 있으면 그가 타자기 앞에 앉아 글 쓰는 풍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는 글자들을 마침표도 찍지 않고, 신들린 듯 타이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죠. 그의 원고지는 순식간에 활자로 가득 찹니다. 글을 썼다기보다는, 그의 입이 토해낸 활자를 원고지라는 드럼통에 받아놓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그의 글에도 깊은 상념에 잠겨 무겁게 건져 올린 문장들이 존재합니다.

 

알고 지낸 여자들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것은 스스로의 고통이 만들어낸 사슬과 닮았다. 모두 염주처럼 꿰여 있다. 따로 떨어져서 사는 불안,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공포, 자궁 입구에는 언제나 자물쇠가 잠겨있다. 두려움과 절망, 핏속 깊숙한 곳에 있는 낙원의 손잡이, 피안, 언제나 피안이다. 그것은 모두 배꼽에서 시작된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탯줄을 자르고 당신의 궁둥이를 철썩 때린다. 당신은 세계로 뛰쳐나온다. 표류해서 나온다. 키가 없는 배. 당신은 별을 쳐다보고, 자기 배꼽을 본다. 당신의 모든 곳에 눈이 생긴다. 겨드랑이 밑에, 입술 사이에, 털구멍에, 발바닥에. 먼 것이 가까워지고 가까운 것이 멀어진다. 내부의 외부, 끝없는 유동, 껍질을 벗어 던진다. 안을 뒤집고 밖으로 나온다. 이리하여 당신은 해마다 표류하다가 마지막에 가장 중심부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거기서 당신은 서서히 썩어가고 조금씩 무너져 내리며 흩어진다.”

 

제가 만약 영문학 교수라면 이런 숙제를 내보고 싶습니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과,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그리고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을 연달아 읽은 후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 인간의 삶은 무엇입니까?

각각의 작품이 남기는 여운에 모두 인생이 담겨있다면, 그 여운이 한없이 깊은 삶의 진실에 닿아있다면, 과연 북회귀선이라는 작품을 외설로 치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 외설 속에 더욱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헨리 밀러의 다른 책, ‘사다리 아래에서의 미소에 나오는 한 줄의 글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자살도 살인도 할 수 없을 때, 인간은 어릿광대가 된다.”

 

 

헨리 밀러, ‘북회귀선/남회귀선오정환 옮김,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