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9. 2. 12. 21:42



여행


딱 체온만큼의 온도로 데워진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었다.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첫날은 산 아래 개울가에서 보냈다. 돌 사이의 살얼음을 깨고 개울물을 받아 라면을 끓였다. 개울물로 탄 커피도 마셨다. 개울가에 쌓인 눈으로 빙수도 만들어 먹었다. 여행의 시작은 아이들의 소풍 같았다. 하얀 세상에 세워둔 노란색 스쿨버스는 흰 구름 한 가운데에 떠있는 길쭉한 태양 같았다. 우리는 한 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겨울 산의 공기는 얼음처럼 차고 맑았다. 선생은 산 공기가 담배보다 맛있다면서 담배 태우는 일에 게으름을 피웠다. 뒷모습은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지를 붙들고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여전히 많은 메모를 했다. 우리는 인적이 드물고, 낯설고, 숨겨져 있지만 걸작인 풍경들을 찾아 거처를 옮겼다. 세상과 사람들이 모르는 숨겨진 빛의 조각을 찾아내고, 그것의 모습, 혹은 그곳의 풍경을 기록했다. 우리는 마치 순례자가 된 기분이었다. 우리의 여행에는 결핍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풍족했다. 넉넉한 풍요 속에서도 우리는 가볍게 먹었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영혼은 소용돌이치듯 부딪치며 서로의 영혼을 먹이고 살찌웠다. 목적지가 없는 삶은 우리에게 자유이자 선물이었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궤도가 없었으므로 지도도 항로도 나침반도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 셋의 눈동자는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아름다움을 찾아냈고,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찾아낸 아름다움 안에서 편안한 쉼을 가졌다. 우리는 어느 곳에 가도 이방인이었지만, 우리가 머무는 그 땅에서 가장 행복한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분화구가 열린 화산처럼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호흡했다. 하루하루가 신비로웠다. 우리의 발길은 미답의 세상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 작은 나라조차도 우리에게는 거대한 행성이었다. 어쩌면 우리 셋은 애초부터 낯선 곳이 더 편하고 익숙하도록 설계된 인간들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공기의 주인은 아니지만 늘 호흡할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었지만 늘 우리에게 열려있었고, 허락 없이 디디고 설 수 있는 자비로운 땅이었다. 우리에게는 열린 세상을 거절할 의사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반기는 것을 거부할 의사가 없었다. 우리는 어느 것에나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세상에는 담도 벽도 없었다. 세상과 우리는 서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비밀을 가지지도 않았다. 우리의 거처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꿈 | 갈매기


갈매기들은 모두 잠들어있었다.

눈꺼풀이 떨렸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스팔트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그들은 왠지 가난해보였다.

왜 이 동네에 갈매기들이 날아들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무리지어 나타났지만 모두 외로워보였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나 사람의 손길에 쉽게 자신을 맡기지도 않았다.

벚꽃이 필 때 날아와서 동백꽃이 지도록 떠나지 않고 있으니 벌써 일 년이다.

그들은 산꼭대기 노파의 집 앞에 둥지를 틀었다.

노파는 생선가게에서 손질하고 버려지는 부산물을 얻어다 그들을 먹였다.


노파의 남편은 뱃사람이었다.

배는 언제나 멸치로 만선이었다.

남편의 밥상 위에는 늘 멸치가 올랐다.

배 위의 밥상과 집의 밥상 풍경이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평생 먹은 만큼의 멸치를 노파도 먹고 살았다.


뱃사람은 바다에서 죽는다.

노파의 남편도 바다에서 죽었다.

그의 배는 여느 때처럼 멸치로 만선이었다.

그가 먹이던 갈매기들로 만선이기도 했다.


노파는 남편의 바다를 떠나 벚꽃의 계절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갈매기들도 노파와 함께 남편의 유골 옆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갈매기들이 산으로 온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제 다시 그들의 고향으로…,

그들의 바다로 돌아갈지 알지 못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