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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불면인

불면인 #37 . 회귀




회귀


버스 안은 늘 잘 정돈되어 있었다. 뒷좌석 앞에 놓인 2인용 좌석 여섯 개를 떼어내고 두 겹으로 돗자리를 깔았다. 그곳이 우리의 방이었다. 방 앞의 2인용 좌석 네 칸은 모두 책으로 가득했고, 그 앞좌석에는 조리도구들을 두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은 모두 반납일이 지나있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여행을 시작했던 날을 기념하여 구름 자욱한 날을 돌아오는 날로 정했고, 여행을 마치기 전에 바다를 보러가기로 했다. 우리는 아쉬워하고 있었다. 아마도 슬퍼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여행을 마치는 것을 우리는 자유와의 이별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슬퍼하고 있었다. 여행이 준 행복이 살과 영혼에 새겨진 탓인지도 모른다. 떠나있는 시간 동안 우리는 영혼의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는 자신을 만났고, 안으로부터 바깥세상을 고요히 응시하는 법을 배웠고, 모든 감정의 뿌리를 찾는 법을 배웠고, 세상을 두드려 열고 세상과 대화하는 법과, 온전히 혼자가 되거나 온전히 우리가 되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사람과의 인연처럼 어떤 시간이나 장소와의 만남도 필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마가 고작 메마른 대지만을 적시기 위해 내리는 비가 아니라는 것을. 꽃이나 열매가 단지 절기를 알리기 위해 피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재난이 오직 세상에 혼돈과 무질서를 주기 위해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박함 아래에서 자라는 소원과 희망이 우리를 일으켜 세워 무덤 밖으로 끄집어내는 힘과 빛이 된다는 것을. 우리 자신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조차 인간 밖의 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내가 내 안에 들어가서 나를 만나고 나를 이해하기 전에는 내가 나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 바쁜 나머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데 무뎌졌고, 날짜가 얼마나 흘렀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휴식을 위한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날아가는지….


우리는 우리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오기로 정한 날을 만났다. 그리고 약속했던 대로 바다 앞에 섰다. 바다는 바다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파도는 구름 아래에서 깊게 일렁이고 있었다. 구름은 대기의 진동을 반영했고 파도는 심연의 울림을 따라 일렁였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자리에서 변함없이 자신을 굳건히 지켜내고 있었다. 자연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 안에 변하는 것이 있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낸 세상과, 그 안의 산물들뿐이었다. 결국 인류는 스스로 자연이기를, 또는 자연의 일부이기를 거부한 탓에 자연으로서의 영혼으로 살 수 없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연이 아니라 욕심이 되었고, 안타깝게도 욕심의 그물은 너무나 질기고 촘촘하여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자연의 냉소 아래에 놓였음에도 그 이유조차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연이 등 돌린 인간과 인간의 세상은 자연으로부터 방치되었고, 그 결과 미래의 부활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인간 모두가 잃어버린 기억의 시간으로 되돌아가려고 애썼다. 길은 험했다. 우리가 걸어본 길이 아니기에 회상하고 더듬는 것도 불가능했다. 잃어버린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잃어버린 것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더욱이 그걸 우리 안의 영혼의 뿌리와 내밀한 본능 가운데서 새로 탄생하게 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들어야 했다. 자연을 설득해야 했다. 뻔한 경험 속에서도 새롭고 생소한 만남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그 뻔한 것 안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곧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바다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의 땅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떠날 때보다 짧았다. 우리는 이제 새 세상에 데뷔하는 것인가. 글쎄… 학교는 뒷모습을 해고했고, 버스의 파손된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선생은 아내의 마지막 모습이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선생은 내게 새 거처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뒷모습은 이제 버스를 몰 수 없게 되었으니 수산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아내의 수족관 일을 돕겠다고 했다. 나도 짐을 쌌다. 그리고 나의 사랑스러운 노란색 스쿨버스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스쿨버스도 나도 이별을 묵묵히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