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9. 3. 2. 12:38



손톱


만약 내가 발톱으로 벽을 타야 하는 고양이였다면, 이런 손톱으로는 벽을 타지 못하는 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다. 빈 껍질로 변한 손톱과 발톱은 이제 체온마저 지니지 않는다. 내 육신을 숙주로 삼은 이 병마는, 나의 머리 가죽을 벗기고, 살가죽을 벗기고, 손톱과 발톱을 벗기고, 귓구멍을 뚫어놓았다. 이것은, 인디언의 살생법도, 몽골 전사들의 고문법도, 일본군의 생체실험정신도 아니다. 그러나 한 몸뚱이 안에서 이 모든 것을 해냈으니 진정 국제적이고 역사적인 고문의 정수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꿈 | 무인도


계속 모래를 씹고 뱉어냈다.

잠에서 깨었다.

입속과 목구멍은 바짝 말라있다.

사막인가?

모를 일이다.

사막에도 겨울이 있던가?

모를 일이다.

입 안을 구르는 모래알은 마치 생명인 듯 서로의 각진 살을 비비고 있다.

모래도 추위를 타는가?

모를 일이다.

살 껍질 위로 소금알갱이가 굴러다닌다.

마치 자기도 살갗인 양 떳떳하다.

파도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여기는.

그럴 리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모래와 바다뿐인 무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말 그대로 바다에 둘러싸인 모래섬이다.

나무 한 그루 없다.

식수 한 방울 없다.

해일이 섬을 덮치면 다음 해일이 올 때까지 섬은 소금밭으로 변한다.

그 섬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금밭 아래에는 이 섬에서 생을 마감한 망자들의 뼈와 머리칼이 드문드문 묻혀있다.

혹시 이곳이 그곳인가?


곧 내 뼈도 마디마디 끊어져 소금밭 위를 구를 것이다.


이곳에 던져진 이유,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라도 듣고 싶으나

이곳에서 나에게 언어로 대답할 수 있는 존재는,

유일하게 나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므로,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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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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