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면 뭘 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 

아이는 잠시 놀란 척 눈을 크게 치켜뜨더니 금세 다시 평화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말이야. 막다른 골목길에서 학교에서 제일 성질 고약한 녀석과 딱 마주쳤다고 생각해봐. 안타깝게도 그 놈은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평소보다 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는 거야. 자, 그놈 눈동자와 네 눈동자가 딱 마주쳤어. 놈의 눈빛이 딱 알맞은 먹잇감을 찾은 불곰처럼 번쩍이는 거야. 이 모든 일이 1초도 채 안 걸려 일어났어. 엄청나게 놀랄 일이지. 불행한 일이고. 하지만 놀란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 그런데 놈은 당연히 내가 놀랄 거라고 생각한 거야.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할 거라고. 하지만 그놈과 마주친 그 순간에 내가 털이 설 만큼 놀란다고 그놈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거나 내 몸이 갑자기 내 방으로 순간이동 한다거나 하는 고마운 일이 생길 리가 없잖아? 그러니 놀랄 필요가 없는 거지.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져.”


“어떤 일?” 내가 놀라서 물었다.


“조금도 놀라지 않는 나를 보고 오히려 그놈이 놀란 거야. 나는 그냥 놈의 눈을 무표정하게 쳐다봤어. 꽤 오래 쳐다봤다고 느꼈지만 사실 10초도 채 안 걸렸을걸. 놈의 눈동자가 흔들리더군. 놀라지 않는 내 모습에 놈이 놀란 거야. 나는 잠깐 그렇게 서서 놈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대로 돌아서서 집으로 왔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자의 놀라지 않는 태도가 강자를 놀라게 만들다니!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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