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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 울트라 쏠티 스토리

[초단편] 담배

꽤 오래 전부터 가슴의 통증을 느껴왔다. 아침마다 그랬다. 어느 날은 무겁고 답답했고, 어느 날은 송곳이라도 박힌 것처럼 쿡쿡 쑤시기도 했다. 담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담배를 끊을 수는 없었다. 담배를 배우고 10년이 지나던 해에도 그랬고, 20년이 되던 해에도 그랬다. 담배는 친구였고, 위로였고, 휴식이었다.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마다 곁에 담배가 있었다. 인간의 고독을 달래주는 것이 꼭 인간뿐이라고…? 글쎄다. 담배는 무생물에 가까웠지만 지적인 존재가 줄 수 있는 특정한 감흥을 뛰어넘는 휴식을 선사하는 피조물이었다. 숨 쉬는 존재, 살아있는 존재와 교감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오묘한 맛을 지닌 생명체였다. 숨 쉬지 않지만 생명이 없다고는 정의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와 가까운 존재들 중에서도 유독 특별히 나와 가까운 존재였다. 나와 함께 나의 폐와 혈관과 뇌를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 대단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떤 인간이 나와 이런 것을 나눌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것도 결국 내 존재의 실체, 내 육신을 고스란히 나눠 쓸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담배는 인간이 지니지 못한 초월적인 공유 능력을 지닌 존재였다.


담배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담배 잎입니다.

그렇다면 담배 연기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설명해드리지요. 담배 연기에는 대략 4천 가지의 화학 물질이 들어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기의 성분 가운데 인체에 가장 치명적으로 해를 끼치는 물질은 타르, 니코틴, 일산화탄소가 대표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이 다이옥신인데, 다이옥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 중에서 가장 위험한 독극물’로 불리지요. 그 외의 것들을 좀 주워섬겨보자면, 연탄가스 중독의 주인공인 일산화탄소, 페인트 제거제로 쓰이는 아세톤, 최루탄에 사용되는 포름알데히드, 방부제에 들어가는 나프틸아민, 로켓 연료로 쓰이는 메탄올, 좀약에 들어가는 나프탈린, 살충제이기도 하고 제초제이기도 하고 마약성분이기도 한 극악성분 삼관왕 니코틴, 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카드뮴, 차량 배기가스에 들어있는 독성가스인 카본 모낙사이드, 사형장 가스실에서 쓰이는 독극물인 청산가리, 톨루딘, 암모니아, 산업용 용제 우레탄, 비소 성분의 아세닉, 디벤즈아크리딘, 소독제로 쓰이는 페놀, 라이터 가스 원료 부탄, 방사선 성분인 폴로늄 210, 살충제 디디티, 타르, PVC 원료인 비닐크롬라이드 등이 있습니다. 몇 가지 안 되는 성분들의 이름만 읽는데도 숨이 차는군요. 거기에 보너스로 발암물질 시리즈도 있지요. 디메칠니트로사민이나, 발암물질의 꽃 벤조피렌이 있습니다.

끔찍한 연기로군요.

당신의 몸과 뇌는 지금 몹시 끔찍한 것에 중독되신 겁니다. 이제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글쎄요, 일단 한 대 피우면서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아,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가슴이 시원한 쪽보다는 답답한 편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슴이 시원해지고 싶을 때까지는 담배를 끊기 힘들겠네요. 답답한 가슴으로 느리지만 빠르게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쪽이 지금으로서는 좋습니다.


아마도 의사는 짧은 한숨을 내쉰 것 같다. 나는 다진 마늘 한 조각만큼이나 짧은 한숨 소리가 흐르는 동안, 의사의 얼굴이 아니라 벽을 보고 있었기에 어떤 심경이 그로 하여금 한숨을 내뱉게 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어쩌면 그는 나를, 아니 한 흡연자를 구해내지 못한 자괴감에 가볍게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구해낼 수 있는 흡연자는 세상에, 아니 이 동네에만 해도 셀 수 없을 만큼 넉넉했기에 나는 굳이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또는 언젠가 내가 문득 시원한 가슴으로 살고 싶어질 즈음에 그를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