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자주 죽여 버릇하니까 나중엔 무뎌지더라고요.”

- 몇 명이나 죽이셨습니까?

“사십 명? 아니 한 육십 명? 글쎄요. 수를 세는 일은 지루해요. 어느 정도 세다가 포기하게 되지요.”

- 죄책감은 없으신가요? 무뎌지신 건가요?

“저는 한 번도 제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인 일이 없어요. 이건 사실입니다. 단지 그들이 죽은 거예요. 그게 왜 죄책감을 느낄 일이어야 합니까?”

- 하지만 죽였다고 하셨잖습니까?

“저는 저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물론 나중에는 알게 됐지만요. 그렇다고 제 마음을 제가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했던 사람은 인류 역사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저도 미우신가요?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왜요? 불안하십니까?”

- 조금은요.


살인자는 오늘도 한 구의 시체를 날랐다. 그의 일은 무연고 노숙자의 사체 정리였다. 시체를 나르는 것부터 시체의 쓰임새를 구분하고 그에 알맞은 뒤처리를 하는 일을 총괄했다. 쓸 만한 시체는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보내졌고, 엉망인 것은 화장했다. 총괄이라고 해봐야 담당 공무원의 잡일을 거드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오늘 나른 시체는 ‘자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5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그의 전직은 합법적이고 화려한 사기꾼이었는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마법에 가깝다고 해서 동료 노숙자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끊이지 않았고, 대부분 그에게 사기를 당했으나 놀랍게도 그런 사실을 눈치 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큰 자랑거리였다.


“사람을 속여 놓고 안 속인 척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아세요?”

자석이 살인자에게 물었다.

“글쎄요…….”

잠깐의 고민 끝에 살인자는 그런 방법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 곁에 있는 겁니다. 평소처럼요.”

놀라운 비법이었다. 대부분 죄를 저지르고 나면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현장을 벗어나려 하기 마련이다. 역시 프로다운 비법이었다.

“하지만 사기꾼도 사람인지라 고독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진실을 털어놓아야 숨을 쉬고 살 수 있죠.”

안타깝게도 자석이 선택한 그 한 사람이 바로 살인자였다.

살인자가 처음부터 자석을 미워했던 것은 아니다. 자석의 이야기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었다. 돈을 내고라도 듣고 싶은 알찬 재미로 가득한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하나도 빠짐없이 교활하고 치졸한 그의 사기극들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서사적이고 영화 같아서 비장한 심포니라도 배경음악으로 깔아준다면 눈물을 참기 어려울 만큼 극적인 장면들도 많았다.

“제가 사기 친 남자의 부인과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어요.”

그렇다. 이 인간은 통돼지 굽듯 한 가족을 통째로 거덜 낼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 여자의 남편이 전화로 자살하고 싶다고 찡얼대니까 여자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네 맘대로 해!’ 하고서는 전화를 끊어버렸죠.”

살인자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그 인간이 정말로 죽어버린 거예요. 참나…. 목을 매달았는데 머리에 깡통을 쓰고 있었다나 뭐라나….”

살인자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자석은 아마도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몰랐을 것이다.

자석이 자살로 내몬 남자는 바로 살인자 자신이었다. 살인자는 자신의 삶을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자신이 미워했던 한 인간을 죽이고, 그 인간의 머리 위에 깡통을 씌워 놓은 채 불을 질렀다. 물론 자기 손으로 직접 그 인간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살인자 자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소속된 인간이 아닌 인간이 되었다.


“저는 시체에다 불을 지른 거예요. 이미 죽어있었다고요. 물론 멀쩡한 시체에 불을 지른 건 나쁜 짓이지만 저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거든요.”

- 그건 그렇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인다는 건 살인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가 아니니까요.


그 후로도 살인자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그 상대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살인자가 미워한 모든 사람이 한 건의 예외나 누락 없이 이튿날 시체로 발견됐다. 대신 그 시체를 치우는 일은 살인자의 몫이 되었다.


“제가 하겠다고 나선 일은 아닙니다. 그냥 담당 공무원이 저를 지목했을 뿐이에요. 밥과 잠자리를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잖아요. 덕분에 새 신분도 얻었어요. 대충 새 이름을 짓고, 생일을 정하고, 새 주민번호를 발급 받았죠.”

- 살인을 저지르고 새 생명을 얻은 셈이로군요.

“어이없지만 인생이 그렇게 돌아가기도 하더라고요.”


살인자의 살인 목록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전직 고리대금업자 출신의 노파, 망해버린 회사의 악덕 고용주, 교회 돈을 빼돌린 목사, 다섯 명의 남편을 두고 살았던 마담뚜, 한때 포악한 포주였으나 길 위의 행려병자가 되어버린 늙은이, 사기꾼이었던 자석….


- 시간이 다 차서 이제 인터뷰를 마칠까 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라도?

“저는 세상을 향해 물어보고 싶습니다. 세상에 죽어도 싼 인간이란 게 있습니까? 저는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인간이 가까이에 존재한다면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고민 끝에 저는, 죽이는 대신 미워하는 걸 선택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라는 건 행동이 아니니까요. 미워하는 마음은 소리도 내지 않습니다. 미움은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힘들 게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미워하는 쪽을 고른 겁니다. 세상의 법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것이니까요. 사람을 많이 죽이면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저는 살고 싶어요. 사는 게 아무리 힘들어도 조금 더 살고 싶습니다. 며칠을 굶은 후에 운 좋게도 아직 상하지 않은 음식을 주워 먹을 때의 행복을 아십니까? 행복이라는 건 하늘의 별을 가지는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그런 거지꼴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라도 저는 죽음보다는 삶에 머물고 싶습니다.”


20층 건물에서 낙하한 자석의 시체는 훼손 정도가 심해서 ‘화장’으로 처리됐다. 살인자는 자석의 시체를 가마에 넣고 점화기 스위치를 누르면서 말했다.

“가끔은 시체에 불을 지르는 게 합법이자 바른 절차인 경우도 있어…….”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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