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두가 꿈에 나타났다. 내 인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친했던 친구들조차 드물게 출현하는 비좁은 내 꿈의 세상에 어린 시절을 빼고는 이름 두 자도 소리 내 볼 일 없는 언두가 나타나다니. 현실의 삶에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언두가.

꿈속의 언두는 뜻밖에도 내게 자신의 진로를 물어왔다. 실제의 언두도 미래를 염려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우리는 계절마다 열리는 열매를 따먹는 것에만 열중하던 시골아이들에 불과했는데.

“너에게는 어떤 일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말하자면, 직업 같은 거.”

“나는 선생님.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나는 말이야…. 나는 말이지…….”

자신의 미래를 헤아려보는 언두의 눈동자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검고 흰 눈동자처럼 언두의 현재와 미래는 완벽하게 분리된 세상이었고, 미래가 미래의 자신 앞에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바로 지금처럼 지금의 지금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짐작도 계획도 할 수 없는 완벽한 미지의 세상이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우리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였다. 언두의 집과 우리 집은 한 겹의 담장을 공동으로 소유한 몹시 가까운 이웃이었다. 언두의 집 마당에는 우리 집에는 없는 포도나무가 있었고, 여름마다 담 너머로 언두네 포도를 얻어먹었다. 당연히 언두의 손이 건네준 포도였다.


언두의 아버지는 언청이였고 조금 모자랐다. 인물도 키도 체격도 변변치 않았다. 언두의 아버지는 말하기를 좋아했지만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말은 흡사 조개껍질 속을 맴도는 공명 같아서 아무리 선명하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아도 그저 한 폭의 추상화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언두의 아버지는 언두가 말만큼은 잘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말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을 담아 아들에게 ‘언(말씀 언 言) 두(머리 두 頭)’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언두는 안타깝게도 아버지의 뜻대로 자라주지 못했다. 한 마디로 언두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동창 모임에서 흘려들은 언두의 소식은 꿈속의 언두가 그려낼 수 없었던 미지의 미래만큼이나 흐릿하고 모호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직도 어릴 때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사십 중반의 나이에 장가 못 가본 총각이라는 것.

뭔가 일을 하고는 있을 텐데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드문드문 드나든다는 언두의 어머니 이야기.

미미하지조차 못한 언두의 존재감에 비하면 언두의 어머니는 친구들 사이에서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언청이에, 모자라게 나서, 별 볼 일 없는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언두의 아버지와 결혼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여자인데다가, 우리가 언두를 알고지낸 세월만큼,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세월만큼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두의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과 한 집에 함께 사는 와중에도 봄바람처럼 자유를 만끽하는 출가외인이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갈 때마다 언두의 아버지도 언두처럼 “나는 말이야…. 나는 말이지…….”라며 안개처럼 희미한 소리로 알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목구멍 속에 꼬깃꼬깃 접어 넣었을지도 모른다. 나가서 안 돌아오면 그걸로 끝이었겠지만, 언두의 어머니는 돈이 떨어질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왔다. 언두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반겼던 것 같다.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지만 근 한 달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비상식적인 행각에 온 동네가 혀를 끌끌 찼지만 언두의 가족들은 나름 평화로워 보였다. 언두의 어머니는 길게는 일 년 넘게, 짧게는 서너 달쯤 여염집 어머니들처럼 가족의 밥상을 돌보다가 다시 가출하곤 했다. 당연히 돈 꾸러미를 챙기고서였다.


겨우 담 두께의 선 너머에 자리 잡은 언두의 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발 디디기를 꺼리던 땅이었다. 먼 과거에, 우리가 살던 동네 전체가 논이었던 시절에 언두의 집터만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리 넓지 않은 규모였기에 땅 주인도 별로 아쉬워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곳은 오각형 모양을 한 이끼 밭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드넓은 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끼 밭을 요사스럽게 여겼고, 오가는 길에도 이끼 밭은 애써 피해 다녔다. 이끼를 뽑아내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개간하려는 노력을 안 했을 리 없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오직 이끼만 머리를 내밀었다고 한다. 이끼가 아니라 미역이나 김 같은 것이었다면 오히려 효자노릇을 했을 텐데…. 어쨌든 언두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되는 조상님이 종살이를 하고 삯으로 받은 이끼 밭에 지금의 언두네 집이 서있는 것이다.


그렇게 뭔가 요상한 기운이 흐르는 땅에서 사는 탓일까? 언두네 집터에서 삶을 꾸렸던 과거의 사람들 역시 항상 구설수에 시달리거나 사고를 당했다. 언두네는 얇은 담을 치고 집터의 반을 세놓고 살았는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특기할 만한 객사로 삶을 마감했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오빠 하나는 군 시절 부대 인근 횡단보도 앞 인도에 걸터앉아 있다가 몸이 반으로 찢겨죽었다. 부검한 의사는 ‘최고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받친 충격이라고 했지만 그곳은 과거에 잠시 철로가 놓였던 자리였을 뿐 사고 당시에는 넓고 말끔한 도로가 닦인 상태였다. 둘째는 제대 후에 건빵으로만 끼니를 때우는 검소한 배낭여행을 갔다가 파리 인근에서 건빵이 목구멍에 걸린 채 질식사했다. 막내가 살아있으니 다행히 대가 끊이지는 않았고, 지금은 막내가 할머니를 모시고 산다.


첫눈이 내리고 친구들 모두 해가 넘어가면 마흔일곱이 되는 12월의 어느 날, 우리는 여느 해처럼 고향 근처 시내의 한 식당에서 송년회 자리를 가졌다. 그날은 특이하게도 동창모임 이래로 처음 언두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덕분에 친구들 모두 모임 때마다 귀추가 주목되었던 언두의 근황을 풀어내지 못해 입이 간지럽다 못해 소름이 돋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언두의 입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언두의 눈치만 볼 뿐 아무도 이렇다 할 질문을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송년회는 시시하게 끝나버렸고 언두에 대한 기억이 다시 사그라질 무렵, 여자애 중에 가장 입 싸기로 소문난 별로 덕스럽지 못한 덕자의 전화를 받았다.


“야, 언두네 엄마 있잖아. 집에서 완전히 쫓겨났대. 언두네 형은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고, 우리는 엄마 없다고 생각하고 산지 오래 됐다고 하면서 내쫓으려 하고, 언두네 엄마는 기를 쓰고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는 거야. 그렇게 문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언두네 옆집 할머니가 나와서 언두 엄마를 쏘아보더래. 그런데 갑자기 언두네 엄마가 못 볼 거라도 봤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들고 있던 가방도 떨어뜨리고 쫓기는 사람처럼 도망을 쳤다는 거야.”

언두네 옆집 할머니는 언두네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걸까? 언두네 엄마는 대체 뭘 본 걸까?

“그런데 가방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덕 없는 년아!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뭐가 들어있었는데?” 라고 지그시 물었다.

“애기들 배냇저고리가 들어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그게 죽은 옆집 형제들 거였다지 뭐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정말 이상한 이야기였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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