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1. 19:57



소나기

“썅, 지포 라이터 말이야. 썅, 터보 라이터 말이야.

얼마나 인간적이야! 일회용 라이터 말이야.

바람 불면 꺼지고 말이야.”

난데없는 소음에 나는 불현듯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곧 사람들의 시선에 둘러싸인다. 사람이 아닌 듯 사람의 체온을 잃어버린 차가움을 담은 눈동자들. 나는 냄새 난다. 나의 냄새는 독하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둘러본다. 그들의 눈동자는, 선명하고, 튼 살처럼 건조하고, 냄새 난다. 독한 냄새. 그 독한 시선에 취해버릴 것만 같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눈깔이 말이야. 그러면 못쓰지.”

어디선가 거친 소리를 담은 냄새가 흘러나온다. 내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풍기는 냄새를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소변의 냄새와 대변의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내 몸의 냄새도 마찬가지다. 같은 거리에서 지내는 사람들이더라도 모든 각자가 각자의 냄새를 지닌다. 같은 냄새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옆으로 이동한다. 마른 눈동자들이 서걱거리며 움직인다. 지난밤 내가 덮고 자던 포장마차는 온데간데없다. 짙게 깔린 구름덩어리들 사이로 은빛 태양이 잠시 빛을 뿜다 사라진다. 나는 잠시 그 빛에 눈이 부시고 현기증을 느낀다. 나는 눈을 돌려 사람들의 눈동자를 따라 시선을 옮긴다. 시선이 멈춘 곳에 낯선 누군가가 양은양동이를 깔고 앉아있다. 양동이를 깔고 앉았다. 라… 그게 무슨 대수인가? 라고 생각한다. 양동이를 올라탄 남자는 담배를 문 채 일회용 라이터를 연신 켜댄다. 불이 붙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눈동자가 불붙은 듯 붉다.

“얼마나 낭만적이냐 말이야. 바람 불면 꺼지고 말이야. 콧김 불면 꺼지고 말이야.”

여전히 그의 담배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나는 그를 향해 기어간다. 몸의 모든 뼈마디가 부서질 듯 삐걱거린다.

“여기요, 일회용.”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켜보던 사람들을 훑어 내리던 그의 시선이 나를 향해 방향을 비튼다.

“그럼!!” 하고 그가 외친다.

외침과 함께 양동이 안으로 묵직한 것이 후드득 쏟아져 내린다. 그는 바다 속을 유영하며 청어 떼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상어처럼 입을 크게 벌리더니 마치 성기를 거세당한 인간처럼, 억지로 뚫어놓은 구멍으로는 소변보기가 괴롭다는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사람이 말이야.

살을 만지면 따뜻하잖아. 속살을 만지면 더 따뜻하잖아. 그치?

그런데 왜 마음은 차가우냐 말이야.

마음도 살만큼만 따뜻하면 안 되느냐 말이야.

사람이 사람을 쳐다보는 눈깔이 말이야. 저래서야 되겠느냐 말이야.

나도 사람인데 말이야!”


그는 엉덩이를 깐 채로 양동이를 깔고 앉은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의 모양새보다 그의 변이 풍기는 냄새가 더 고역스러웠지만 그의 대사만큼은 인정해주고 싶었다. 그의 엉덩이가 뱉어낸 덩어리가 내뿜는 썩은 멸치젓 같은 냄새를 맡고 있다가 문득 시원한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어졌다. 액젓으로 맛을 낸 부추가 한가득 들어간 시원한 오이소박이. 그는 연신 얼굴을 찡그리며 거친 호흡으로 담배 태우기에 골몰했고, 같은 자세로 10분이 넘도록 양동이에 똥오줌을 지렸다. 이쯤이면 양동이의 반은 채우지 않았을까 싶을 무렵이 되어서야 그는 바지를 추켜올렸다. 엉덩이와 엉덩이 아래 사타구니에 양동이에 굵게 눌린 자국이 보였다.

“밑을 좀 닦으시죠.” 내가 말했다.

“난 이 구린내가 좋아. 불 빌려줘서 고마워.”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마음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일회용 라이터 정도의 배려로 2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그와 친구가 되었다. 양동이에 똥을 지리는 놈과 남의 포장마차를 지붕 삼아 하룻밤을 버티는 놈은 아주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그 눈동자들이 품고 있는 차가운 사악함은 무절제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중 한 여자는 입 꼬리를 추켜세운 채 어이없다는 실소로 남자를 비웃고 있었다. 눈 꼬리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고드름알갱이처럼 매달려있었다. 귀여운 얼굴이네. 라고 생각했지만 귀여운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냉담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잠시 후, 전철 계단 위아래로 사람들의 어깨가 뒷모습과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꿈 너머인 듯, 못 이룬 꿈과의 작별이거나 악몽에서 벗어난 자들의 한숨처럼 맥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과의 말 같은 것은 없었다. 양동이 아저씨 역시 그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채 사람들은 제 갈 길을 걸었다. 사람도 공기도 바람도 차가운 계절. 어느새 구름이 두께를 더하고 있었다. 태양은 기운을 잃고 은빛 구름에 가려졌다. 눅눅한 냉랭함이 어깨를 감쌌다. 비가 내리려나… 거리의 사람들에게 영하의 날씨보다 더 괴로운 것은 겨울비였다. 겨울비. 혹한을 등에 진 물방울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옷을 뚫고 살을 가르는 면도날을 덩어리째 몰고 다닌다. 습한 냉기는 한번 살갗에 똬리를 틀고 나면 좀처럼 몸을 놓아주지 않는다. 일단 몸이 묶이고 나면 영혼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가 덜덜거리기 시작했다. 어디가 됐건 따뜻하고 건조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몸을 일으켰다. 몸이 오그라드는 만큼 얼굴도 심하게 일그러졌다. 문득 나도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철구내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릎을 굽힐 때마다 관절이 버걱거리며 쇳소리를 냈다. 이런 날씨에 이런 몸으로 길을 걷는다는 건 무리다. 오늘은 아마도 걸음을 쉬어야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길과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며 화장실을 향해 걸었다. 화장실에 들어서자 멀리서 다가오는 축제 행렬의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간단히 일을 보고 나와 창가로 다가갔다. 북을 울리는 축제의 행렬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한여름 땡볕 후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맹렬한 기세. 겨울 소나기라… 구름의 두께는 그것이 소나기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비는 심술궂게도 소나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순간 등허리를 뚫고 한기가 밀려들었다. 비… 처음 비를 맞은 게 언제였을까?


아주 어릴 때였다.

난 마냥 신기해했었다.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다니.

그런데 그냥 떨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다.

가만히 맞고 있으면 몸이 젖는다.

몸이 젖으면 춥다.

그냥 춥기만 한 게 아니다.

뼈도 얼고 골수도 얼어붙는 것처럼 춥다.

가을이었다.

따가운 가을 햇볕이 세상을 달구고 있었다.

과일 서리를 하려고 밭을 시야에 두고 덤불 뒤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잠시 후 삽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에 속절없이 젖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한 순간 사지가 오그라들면서 뼈 속을 파고드는 추위에 고통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 근육마저 주름진 채로 얼어붙어 버릴 것 같은 극악무도한 추위…

지금, 전철역 화장실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옛 추위를 느꼈다.

반갑지만 춥고, 춥지만 반가운 것.


나는 조금 더 오래 비를 보고 싶었다. 비를 바라볼 수 있는 곳. 그러나 비로부터 자유로운 곳. 습하고 차가운 기운으로부터 벗어나 비와 나를 서로 다른 종으로 가르고, 비와 내가 떨어진 채로도 여전히 서로를 세세히 관찰할 수 있는 곳. 몸이 느끼는 냉기와 살갗 위로 떨어지는 충격을 직접 흡수하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곳. 그곳은 내가 먹고 자는 곳이었고, 양동이에 똥을 지리는 남자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였고, 다른 땅에서라면 언제 어느 시간에 차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사소한 미지의 장소이기도 했으며, 세상에 드러나는 어떤 한 순간, 내 손으로 깎아 내버린 발톱처럼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이 소중한 이유는, 그곳이 내가 살아있는 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더러는 나만의 공간이 되어준다는 꿈같은 현실이었다. 내 몸에 붙어있는 사랑스런 살갗이지만 언제든 고통 없이 떼어내 버릴 수 있는, 마치 머리카락 같은 살덩어리. 나는 화장실을 나와 나만의 비밀스런 장소로 향했다. 비밀스런 장소라고 해봐야 직원화장실에 불과했지만 그곳의 비밀은 화장실의 맨 구석, 즉 외벽 쪽에 붙어있는 청소도구실 안에 있었다. 그곳에는 필요 이상의 큰 창이 붙어있었고, 의자로 쓸 만한 작은 플라스틱 박스들이 있었다. 나는 박스 두 개를 쌓아 올린 후 그 위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빗속으로 작은 회오리가 보였고 회오리는 꽤 오래 한 자리에 머무르다가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듯 오는 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 즐거운 식사시간, 꿈 없이 고요한 수면, 잔잔한 평화.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고 안락한 평화… 나는 가끔 이곳, 화장실 한편의 작은 공간에 주저앉아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면서, 내가 매일 잊지 않고 기다리는 그 모든 것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어떤 하루를 꿈꾸곤 했다. 그것은 물론 내가 내 존재를 끝까지 숨기지 못한 채 직원들에게 덜미가 잡혀 전철 역사 밖으로 쫓겨나기까지의 짧은 순간이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가끔 마음에 쌓인 오물을 걷어내고 맑은 평화를 얻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보통 행복은 행복으로 마감될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가끔은 행복마저도 극복되어야 할 장애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행복은 늘 행복으로 시작됨과 동시에 스스로 일정 분량 이상의 상처와 파손, 혹은 분실의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곧 불행을 몰고 올 행복, 혹은 곧 행복을 몰고 올 불행을 섬세하게 지켜보고 느끼기도 전에 불행이 주는 고통과 행복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의 바람과 비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따뜻한 곳에 앉아 유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바람에 흔들리며 쏟아지는 비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나는 여전히 속이 빈 상태였지만 이토록 쾌적한 환경에서 비를 볼 수 있다는 행복에 배고픔마저 잊었고, 심지어는 마음의 평화가 주는 나른함에 젖어 졸음을 느끼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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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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