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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흔들리는 것은 촛불뿐이다. 선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동상처럼 앉아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집의 제목은 바다(Sea)다. 선장의 어머니는 여전히 차를 홀짝거린다. 노파가 건넨 책은 땅이 아니라 흙을 묘사하고 있다. 수십 페이지 내내 흙 얘기다. 그 다음은 산의 이야기다. 산과 흙. 비옥한 흙과 흙을 돌보는 종으로서의 산. 씨만 뿌리면 풍년으로 답하는 손 안 가는 기름진 흙에 대한 지루한 이야기이다.

“어머니가 쓴 책이네.”

선장이 말한다.

“그렇군요.”

노파는 자리라도 비켜주려는 듯 거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간다.

“이곳은 어디인가요? 이런 땅이라면 무슨 농사를 지어도 풍년이겠는걸요.”

“자네가 가고자하는 곳.”

“그곳은 사막입니다.”

“어머니가 쓴 글은, 사막에 대한 이야기네.”

“그러니까 그곳은 사막입니다.”

“옛 사막의 이야기네.”

사막이 사막이기 이전에 비옥한 땅이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만약 뒤늦게 사막화되었다면 적어도 이미 수천 년 전이나 수만 년 전의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 씨나 뿌려도 무성한 열매를 맺는다…? 지구의 자전축이 틀어지기라도 했다는 의미인가?

“옛 사막의 모습을 어머니가 어떻게 눈으로 본 것처럼 쓸 수 있는 겁니까?”

“어머니는 눈으로 보았네. 현실이 아니었을 뿐이지.”

눈으로 보았으나 현실은 아니었다? 현실이 아니었다면 꿈에서 보았다는 뜻인가? 거실은 침묵에 잠겼다. 우리는 평생 고뇌와 번민과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유하는 육신일 뿐이다. 생각하는 짐승일 뿐이다. 인간은 생각 밖의 것, 상식이 인정하지 않는 현상은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자,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다. 인간의 상식은 영혼을 묶고, 결박당한 영혼은 사유의 한계 안에 갇힌다. 신은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고, 무엇이든 멸망하게 할 수 있고, 창조한 모든 것을 무너뜨린 후에 흔적만 남겨둘 수도 있지만, 사람은 여전히 부지런히 사유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나 역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사유의 한계 밖의 현상은 믿지 않는다. 상식을 벗어난 현상은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나는 영혼을 결박한 적도 없고, 가둔 적도 없다. 단지 믿지 않을 뿐이다. 침묵이 이어진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길을 잃었다. 길을 잃은 탓에 이 도시에 와있고, 사막을 향하여 마음의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곳에 가야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곳에는 승리가 있는가. 구원이 있는가. 인간이 사유 안에서 허덕이며 찾는 번민의 해답이 있는가. 자유가 있는가. 행복이 있는가. 결국 사유하는 인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사유의 틀 바깥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이다. 내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 내가 믿지 않았던, 내가 믿을 수 없는 것을 내 눈으로 보는 것. 그리고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다시 사유하는 것. 혹은, 본 그대로 믿는 것. 제한 없이 믿는 것. 한계의 바깥까지, 그 너머의 세상까지 믿는 것. 결국 보지 않고도 믿는 것. 끝내, 사유 밖의 모든 것,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믿는 것.

“어머니는 사막에서 온 사람일세.”

선장이 말한다.

사막의 사람들은 아무도 사막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도 떠나지 않는다고 들었다. 사막을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사막에서 온 사람이라니…. 나는 노파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마당에서 돌아온 노파의 품에는 장작이 들려있다. 노파는 거실 한 쪽에 놓인 작은 화목난로의 문을 열고 장작을 집어넣는다. 티딕, 티디딕,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리에 앉은 노파는 여전히 느린 몸짓으로 여유 있게 차를 즐긴다. 저녁 준비를 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난장이처럼 작은 이 노파는 사막에서 왔다. 나는 사막에서 온 사람을 처음 본다. 사막은 성지이거나, 탈출 불가능한 전설의 감옥 같은 것이 아니므로, 그러니 누구든 사막을 못 나올 이유가 없고, 사막을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으나 사막을 떠난 사람이 있다면, 떠난 이유만큼은 참 궁금하다. 사막이 고향이라면 그립지 않을까…라는 궁금증도 일고. 나는 노파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본다. 자글자글한 주름. 검버섯.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마른 노인의 얼굴일 뿐인데, 굳이 칭찬할 거리를 찾자면 곱게 늙은 얼굴에 꽤 미모라는 것 정도. 하지만 여전히 그저 평범한 노인의 얼굴에 불과하다. 노파는 차 마시기를 그치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잠깐 눈이 마주친 노파는 여린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스튜.”라고 말한다. 고운 음성이다. 나는 계속 책을 읽는다. 책 속의 땅은 지상 최고의 농경지로 표현되어있다. 대지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강은 대지 전체를 촉촉이 적시며 땅을 기름지게 하고, 대지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씨를 뿌리고 밭을 돌본다. 책 속의 대지는 인간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풍요 그 자체다. 이런 곳이라면 불행하게 살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파는 단정한 자세로 서서 채소를 다듬는다. 파프리카, 양파, 당근, 감자…. 이제 노파는 고기를 썬다. 노파는 뒤를 돌아보며 내게 작은 소리로, “안심.”이라고 말한다. 곧 채소 볶는 냄새가 거실에 퍼진다. 고소하다.


“어머니의 이름은 ‘바다의 딸’이었지.”

선장이 말한다.

사막의 여자가 어떻게 바다의 딸일 수 있을까?

선장이 내 눈동자를 읽는다.

“어머니는 사막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네.”


노파는 해변으로 밀려온 난파선에서 발견되었다. 겨우 걸음을 떼는 법을 배운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반 토막 난 배의 후미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해 방긋 웃었다. 그것이 모래사막의 사람들과의 첫 인사였다. 잘 웃는 아이였다. 사막의 사람들은 아이를 사랑했고, 누구의 아이도 아닌 모두의 아이로 키웠다. 아이는 사막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명상과 강과의 만남, 거센 비와 회오리바람, 그리고 그녀를 돌봐준 사막의 모든 사람들을…. 아이가 성장했을 때, 모래사막의 족장은 아이를 자신의 딸로 삼고 ‘바다의 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의 사람들이 길렀을 뿐 본래 바깥세상의 아이라면 노파가 사막을 떠나 도시에서 살게 된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노파는 꽃다운 20대에 도시에 왔다. 노파가 도시에 정착해서 처음 찾아낸 자신의 일은 꽃집 점원이었다. 그녀는 꽃을 사랑했다.


꽃집의 온실은 작은 축구장만 했다. 크다기보다는 거대하다고 해야 할 온실이었다. 그녀의 출근 시간은 ‘여명이 밝은 후 한 시간 안에’였다. 그녀는 아마도 도시에서 가장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해야 할 일은 온실의 천장을 개방하는 일이었다. 도르래는 무거웠고 일과는 단순했다. 모두 열두 개의 도르래를 돌려 천장을 개방하고 화초들의 광합성을 준비한다. 그 다음에는 화초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일지에 기재된 화초들의 이름 옆에 건강상태를 기록한다. 물을 주어야 하는 화초들에게는 물을 주고, 물을 주는 주기가 정해져있는 화초들은 주기에 맞춰 물을 준다. 그녀는 마치 꽃들의 어머니처럼 열심히 화초를 돌봤다. 자주 물을 주어야 하는 화초들은 별도의 온실에 따로 모여 있었다. 비가 자주 내리는 곳이었기에 온실의 천장은 겨울에만 닫아두었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 세상의 전부였던 그녀에게 꽃과 나무를 돌보는 일은 하늘의 선물이자 천직이었다. 그녀는 처음 취직했던 꽃집에서 정확히 10년을 일했다. 그녀가 그만두던 날 꽃집에서는 그녀를 위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 모두 그녀와의 이별을 아쉬워했고,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했다. 그녀는 도시 외곽의 한적한 동네에 자신의 꽃집과 과수원을 열었다. 그녀가 일했던 화원은 수십 그루의 나무를 축하의 뜻으로 보내왔고, 그녀가 새로 자리 잡은 동네에서는 그녀의 꽃과 과일을 환영했다. 도시의 그 누구도 그녀가 사막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30대 초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사내아이였다. 그녀는 결혼한 적이 없었고, 아이에게는 아빠가 없었다. 그녀는 꽃과 나무를 돌보듯 정성껏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아이의 둘도 없는 엄마였고, 아이는 그녀의 든든한 아들이었다.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자주 사막을 이야기해주었다.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과, 강과, 초원의 사막에 대한 이야기…. 그녀는 딱 한 번, 아이와 함께 사막에 다녀왔다. 그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아이에게 사막에 대해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스튜는 따뜻했고, 맛있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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