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2. 10:46



나에게 비는 제 2의 언어다. 비는 사람의 말처럼 음절로 소리 내지는 않지만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때로는 자신이 고여 있던 호수의 풍경이나, 자신이 흐르던 계곡의 이야기, 혹은 자신이 부딪쳤던 절벽과 바위에 대해서, 자신이 떨어져 흘러내리고 있는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과 유리와 아스팔트의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가끔 자신을 이곳으로 몰고 온 크고 작은 구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날에는 살아있고, 어떤 날 어떤 시간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검은 구름에 대해서. 긴 장마의 중간에 죽은 듯 검게 그을린 구름조차도 어딘가에 비를 내리기 위해 살아있다는 것,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몽골의 거대한 호수와, 중국의 강들과, 남쪽 섬들의 맑은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조각구름을 이야기하고, 인도양에서 구름과 구름이 만나 거대한 태풍을 이룬 이야기와 이곳에 떨어져 내리기 위해 얼마나 먼 길을, 얼마나 빠르게 달려왔는지를. 밤이면 불을 켜지 않고 어둠을 어둠 그대로 받아들이는 북쪽과 남쪽나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있는 것처럼 구름 역시 살아있는, 움직이는, 그리고 변화하는 생물이라고 이야기한다. 비가 이야기하는 구름과 비는, 평화롭지만 거칠고, 거칠지만 평등하고, 무분별하지만 자유롭다. 비는 자신이 닿는 물체의 강도에 따라 다른 소리로 이야기하고, 나는 내 살갗과 마음과 눈을 열어 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비의 이야기들은 내 마음을 채우고, 몸을 채우고, 결국 내 영혼마저 적신다. 비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무엇을 찾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 완벽한 절대 자유다. 젖은 시선이 빗속을 떠돌다 내려앉는 순간, 검은 구름 아래로 번개가 떨어졌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까운 곳으로. 신의 칼인 듯 날카롭게 빛나는 저 빛의 검을 잡아 휘두를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빛과 빗소리에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빛과 포말이 만나는 경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검은 구름 아래에서는 처음 보는 무지개였다. 마치 나는 번개와 비의 중간 어디엔가 번개도 닿지 못하고 비도 적시지 못하는 공간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손은 번개를 잡을 수도, 비에 젖을 수도, 무지개에 닿을 수도 없었다. 순간 나는 어쩌면 내 소원대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구더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지만 비를 쫓는 내 눈동자는 현실이 보여주는 순간순간을 여과 없이 주워 담고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무거운 비바람이 새로 문을 연 빵집의 차양과 오픈 기념으로 현관에 세워둔 풍선대문을 거칠게 때렸다. 주인이 나와 부랴부랴 풍선대문을 차양 아래로 옮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빵집 주인은 우산으로도 피할 수 없을 만큼 거친 비에 대항해서 한 손바닥을 하늘로 올려 머리를 가린 채 풍선을 옮기다가 풍선을 받쳐둔 버팀 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양손으로 힘겹게 대문을 옮겼다. 차양 밑 한편으로 풍선대문을 밀어 넣고는 차양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본 주인은 양손으로 젖은 머리칼을 털어냈다. 나는 문득 비의 연주가 주는 고된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지속될지 불안해졌다.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세상과 지붕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어떤 세상에서든, 어떤 지붕 아래에서든 쫓겨날 수 있는 사람인 탓에.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무슨 일로든 늘 바쁘게 걷는 게 몸에 배어있다. 느리게 움직이거나 여유롭게 서서 담배를 피워 무는 사람들은 촉촉이 젖은 눈동자로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감상하는 한량들이거나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트레이닝복을 입고 팔자걸음으로 대중목욕탕을 향해 걷는 모녀 정도일 뿐이다. 어디선가 덩어리져 몸뚱이를 부풀린 바람이 세차게 거리를 후려치고, 사람을 때리고, 우산을 꺾고 지나간다. 찬바람이 분다는 것은 곧 추워질 것이란 의미이고, 추위가 닥친다는 것은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의미이고, 겨울이 온다는 것은 곧 세상이 얼어붙을 거라는 의미이다. 나는 삼사 년 전의 이 계절을 떠올렸다.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 스멀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민달팽이와 습한 냉기의 기억. 어디엔가 손을 내밀고 싶지만 자신의 손마저도 녹이기 힘든 계절의 힘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 옷깃을 여며가며 연명해야 하는 시기.


너무 오래 비에 몰두한 탓이었을까? 나는 사람의 인기척은커녕 문 삐걱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는 문득 내 몸을 둘러싼 여백의 허전함에 눈길을 돌렸을 뿐이고, 나의 시선이 닿은 그곳에서는 작은 키의 거구가 나를 내려다보며 부푼 눈동자를 허겁지겁 굴리고 있었을 뿐이다. 키 작은 거구의 여자는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쾅 닫고는 멧돼지처럼 괴성을 지르며 복도를 향해 내달렸다. 만약에 안으로 열리는 문이었다면 아마도 나는 오른쪽만 못 쓰는 반신불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 뛰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화장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청소도구실 안에는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걸까. 아니면 냄새 나는 인간이어서 그런 걸까. 어쩌면 둘 다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일 굶은 몸뚱어리는 얼마 뛰지도 못하고서는 전력질주를 거부했다. 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뒤쪽에서 다시 멧돼지의 괴성이 들렸고 고개를 돌리자 거구의 여자와 남자 몇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곧 달려올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뛰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눈과 마음으로만 즐기던 차가운 겨울 비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랫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나를 외면해왔지만, 결국 나는 나를 외면하는 것에 실패했다. 나는 단지 나를 들여다보는 것에 질려버린 한 인간일 뿐이다.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말해본다. 하지만 그리 빨리 늙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소원은 늘 소원으로 그친다. 나는 종종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잠들었고, 다행히도 관객들의 냉랭한 시선, 서슬 퍼렇게 날 선 그 눈동자들은 얕은 잠으로도 충분히 외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겨울처럼 잠들어있기. 라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들이 현실의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잠든 나를 내려다보는 동안 나는 꿈이 주는 자유와 엉뚱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나를 보며 즐거워하곤 했다. 나는 구더기처럼 내 속을 드나드는 내 썩은 영혼의 행태가 끔찍하게도 싫었지만, 세상을 읽는 일만은 멈추지 않았다. 다가올 시간은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지루했고, 지나간 시간들은 되새길 때마다 즐거웠다. 나는 대부분 하루 지난 신문을 통해 어제의 일들을 읽었다. 신문은 이미 지나버린 어제를 이야기해주었고, 나는 그나마 그마저도 남들보다 하루 늦게 주워들었다. 신문이 유일하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날씨뿐이었는데, 심지어는 그것 하나조차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처럼 현실이다. 게다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현실이다. 나는 굶주림을 호소하는 두 다리를 잡아당기고 질질 끌어가며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몸 위로 떨어져 내린 비는 방울방울 날카로운 비늘처럼 옷과 살갗을 뚫고 지나갔다. 비는 살갗을 관통하듯 단단한 머리 껍질까지 뚫고 들어온다. 왜 달리고 있는 걸까, 무슨 죄를 지은 걸까를 생각하기도 전에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어 연기처럼 흩어져 비에 쓸려 내려가 버리는 느낌. 머리에 이고 가던 수소폭탄이 그대로 터져버리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다행히 그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전철역 계단 아래로 피신할 수 있었고 비와 바람은 여전히 허공과 지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후두두두두두둑. 이 소리는 더 이상 나만의 공간에서 듣던 아련한 북소리가 아니었다. 빗소리는 이제 행복한 북소리에서 저주의 울림으로 얼굴을 바꾸었다. 난 다시 빈 집 같은 존재가 되었다. 버려진 빈 집이고, 그나마 지붕마저 뚫린 집. 스스로는 더 이상 비나 바람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쓸모없는 흉물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벽돌과 시멘트는 이제 나를 지켜줄 수 없다. 나를 따뜻하게 해줄 수도 없고 비나 눈을 막아줄 수도 없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던 거리의 행인들은 비를 피해 어디론가 피신한 모양이다. 정오쯤 되었을까? 빗속에서는 먹구름 위의 태양을 읽을 수 없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먹을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 구걸을 해도 좀처럼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을 보호하고 추스르기에도 벅찰 때에는 다른 사람의 사정 같은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나는 길 위에 혼자 서있다. 가끔 머리 위에서 울리는 전철의 굉음과 버스의 굵은 타이어가 도로에 고인 빗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길 위에 서있다. 다시 이가 덜그럭거리기 시작한다. 귀밑을 긁고 가는 바람이 내게 어서 피할 곳을 찾으라고 말한다. 어디로든 이동하려면 비가 졸음에 빠져 잠시 수그러드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비가 내 인생의 마지막 비가 될지도 모른다. 중요한 순간일수록, 빠른 결정을 요구하는 순간일수록 머리는 더디게 돌아간다. 나는 문득 세 블록쯤 떨어져있는 주택가 입구의 공중전화박스를 떠올렸다. 문을 닫을 수 있는 공간이고, 오늘 같은 날이라면 쓰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 그 정도면 훌륭하다. 나는 계단 기둥에 몸을 의지한 채 쪼그리고 앉아 코트 깃을 세웠다. 비가 잦아들 때를 기다리면 된다.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고 몸을 최대한 마른 상태로 유지하며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오면 캥거루처럼 잽싸게 달려서 생쥐처럼 공중전화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굳게 닫고 고양이처럼 웅크리면 된다. 비와 바람을 한 번에 막아줄 수 있는 작은 참호. 오늘은 그곳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는 것이다. 나는 기둥에 등을 기댄 채 바람이 달리는 길을 읽으려고 애썼다.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책이나 신문이 전부는 아니지만 오늘의 바람은 마치 읽히기를 거부하는 천재의 악필 같다. 사선으로 긋는 비는 수시로 각도를 바꾸고, 바람은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래에서 위로, 제 정신이 아닌 듯 허공을 방황하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람들은 양손으로 우산을 부여잡고 종잡을 수 없는 바람 사이를 지그재그로 걷고 있다. 비는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는 곧. 자, 뛰자. 하고는 빗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큰 길에서 왼쪽 골목으로, 그 다음 사거리 골목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그 다음 사거리 골목에서 직진, 그 다음 사거리 골목에서 또 직진.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다음 사거리 골목에서 좌회전… 인데, 뭔가가 눈에 들어온다. 편의점 바깥, 비를 막아주는 차양 아래에 정리해둔 박스더미. 나는 도톰한 두유박스 세 개를 잽싸게 집어 들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따뜻해졌고, 빗방울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공중전화박스에 도착했을 무렵, 옷은 꽤 젖어있었지만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두 칸의 박스가 모두 비어있었고, 한쪽은 조명이 나간 상태였다. 나는 어두운 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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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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