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13 . 비의 가르침

**

사막은 여전히 비의 때를 지나고 있다.


바람이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라면 비는 치유와 위로의 시간이다. 구름이 연기처럼 사막을 덮고, 비가 마른 사막을 초원처럼 적실 때면 사막의 사람들은 모두 사막에서 풀이 자라나지 않을까 기대하고는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모래알에는 이끼조차 덮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일 비의 음률에 귀를 기울인다. 천상의 음악이 바로 이럴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비의 때는 주기적으로 오지만, 올 때마다 다른 곡을 들려준다. 비의 레퍼토리에는 같은 곡도, 마지막 곡도 없다. 비의 때에 사람들은 매일 몸을 씻는다. 빗줄기가 굵어질 때는 벌거벗은 채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비의 때는 모두에게 행복한 축제다. 마음껏 비를 마실 수 있고, 마음껏 몸을 적실 수 있고, 마음껏 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 사막의 사람들은 바람 소리와 비 소리를 우주의 소리로 예우하며 소중히 여긴다. 비와 바람이 함께 소리를 내는 날에는 소름이 돋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영혼이 녹아내릴 만큼 아름다운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비 내리는 풍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를 보고, 비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들의 가슴 속에 가라앉아있던 슬픔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 그들에게도 슬픔이 있다. 그들은 각자에게 가장 슬픈 비가 내리는 날, 자신이 선택한 바위 뒤에 홀로 앉아 슬픔의 덩어리를 꺼내 비에 젖은 모래 위에 올려놓는다. 이 모든 행위는 추상, 즉 그들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의식만큼은 세상의 어떤 진지한 예배보다도 무겁게 치러진다. 비에 젖은 슬픔은 무거워지고, 무거워지고, 더욱 무거워지다가, 더 이상 무거워지지 못할 만큼 무거워지고 나서야 깊은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다. 사막이 그들의 슬픔을 껴안는다. 사막이 그들의 슬픔을 뜨거운 모래 속에 품는다. 결국 그들은 모래 속으로 흘려보낸 눈물을 자양분으로 사막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슬픔을 단단히 딛고 다시 모래 위에 선다. 모든 것이, 모두의 삶이, 그렇게 다시 시작된다. 비는 가끔 그들이 그리워하는 얼굴들의 소식을 들려준다. 한때 사막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모래 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막의 품에 안겨 모래로 화한 사람들. 그리운 얼굴을 가진 자들은 빗소리 속에서 떠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들의 안부를 전한다. 비는 사막의 사람들에게 위로의 전령이다. 비는 또한 치유의 전령이기도 하다. 비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의 상처도 치유한다. 비의 때가 오면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치유의 물방울에 빈 몸을 내맡긴다. 마른 살의 상처가 낫고, 태양에 그을린 화상이 낫고, 헐어버린 입술과 혀가 낫고, 두피를 덮은 버짐이 낫는다. 사막의 사람들은 비의 때에 육신을 회복한 후 다시 태양의 열기와 거친 바람의 세월을 견뎌낸다. 비는 태양에 불타고 갈증에 메마른 육신과 바람에 상처입고 나약해진 영혼을 적시고 새 숨결을 불어넣는다. 비의 때에도 여명은 밝는다. 사막의 사람들은 비구름 너머에서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닿지 못하는 태양의 숨결을 느낀다. 먹구름에 가려진 여명 아래, 비의 포말에 잠식당한 세상에서는 모든 사물과 풍경이 원근감을 잃는다. 가까운 것이 멀어지고, 먼 것이 가까워진다. 바로 건너편 바위 아래에 앉은 사람이 사막 저편에 앉아서 쉬는 매처럼 흐리게 보이기도 하고, 지평선을 향해 던진 시선에 신기루처럼 사막 너머의 수평선이 보이기도 한다. 비가 몰고 다니는 안개는 다양한 형상의 피조물들을 보여준다. 영장류라기에는 한없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들에게 그들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전부가 아님을 가르쳐준다. 안개는 육지의 생물들과 바다의 생물들, 꽃과 덤불과 산과 숲과 들의 모습을 대기 위에 그려내고, 어른들은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안개가 그리는 그림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그것의 이름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비와 안개는 한없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아이들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있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세상,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 별 위에 한결같이 이어져 온 다양한 생명들을 느끼고 배운다. 사막의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은 아이들을 가르친다. 사막의 원로들은 부와 가난을 가르치는 대신 존재의 가치를 가르치고, 소유의 경계와 내 것과 네 것을 가르치는 대신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 허공을 가리키며 추상을 가르치고, 모래알을 쥐어주며 실재를 가르친다. 바람의 소리로 힘을 가르치고, 비의 소리로 시의 운율과 노래를 가르친다. 문명 대신 자연을 가르치고, 녹슬어버릴 문명과 문명의 쇠퇴가 아니라, 풍성한 자연과 자연이 주는 풍요를 가르친다. 죽은 생명의 썩은 고린내가 아니라, 산 생명의 향기를 가르친다. 그리고 사막은 여전히 비의 때를 아직……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