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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문 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는 여전히 노파와 선장의 집에 있다. 이번에는 앉아있지 않고 누워있다. 소박한 색을 지닌 꽃문양의 벽지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다. 방은 내 방인 듯 아늑하다. 나는 손바닥 하나 높이의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다. 아마 선장이 나를 들어 이 방에 옮겨다놓았을 것이다. 문을 여니 마당 맞은편으로 거실이 보인다. 치키치키치키치키….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보슬비가 마당의 돌들을 적시고 있다. 거실 탁자에서는 낯선 여자가 노파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실 창 옆에 못 보던 화분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둘 다 꽃이 피어있다. 흰 꽃과 노란 꽃. 낯선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앞으로 가서 갓 꺾어온 듯 싱싱한 빛깔의 꽃다발을 정리해 화병에 꽂는다. 여자는 화병을 탁자 가운데에 내려놓는다. 머리는 맑은데 잠이 쉬이 깨지 않는다. 다시 끼이이익…. 대문을 열고 선장이 들어온다. 선장의 손에는 큰 비닐봉투가 들려있다. 나를 본 선장이 아침인사로 윙크를 쿡 찍어 보낸다. 늙고 마른 불독의 윙크하는 얼굴을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는 손바닥으로 허공을 누르는 시늉을 하며 조금 더 자라는 신호를 보낸다. 나는 선장의 말대로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천정 벽지의 꽃을 센다. 벽지는 무채색에 가까운 파스텔 톤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집은 소박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처음 발을 들인 순간부터 하룻밤 신세를 진 지금까지 전혀 낯선 집 같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아내와 내가 살던 집이 떠올라서였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곳은 공기마저도 닮아있다. 한 번 잠이 깨고 나니 더 이상 잘 수가 없다. 매트리스는 크기도 넉넉하고, 쿠션도 좋았지만 나를 두 번 잠들게 할 정도로 달콤하지는 않다. 아무래도 남의 집은 남의 집인 것이다. 나는 옷매무새를 고치고 마당으로 나선다. 마당 풍경은 어둠 속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평화로운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다. 색이 절제되어 있다. 선명한 색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오직 생명을 가진 것들뿐이다. 꽃과 나무와 이파리들. 낯선 여자가 노파와 선장에게 인사를 하고 거실을 나온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여자는 내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대문 밖으로 사라진다. 나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본다. 가느다란 물방울들이 얼굴을 적신다. 네모난 하늘 위로 파랑새 한 마리가 지나간다. 나는 거실로 들어서서 자연스레 난로 앞에 앉는다. 다시 노파와 선장과 나만의 시간이다. 노파는 갓 끓인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내게 눈짓을 한다. 나를 위한 차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노파의 움직임을 본다. 느리지만 정확하고, 모든 동작이 정성스럽다. 그릇을 넣거나 꺼낼 때도 다른 그릇이나 찬장 문에 부딪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노파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수도원에라도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루가 종일 묵상을 위한 시간인 듯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내 심신을 안정시킨다. 한 시간에 두어 번 정도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순간이 온다. 신기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그런 순간에는 오직 자연의 것만 움직이고, 사람과 사물은 멈춰서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나뭇잎과 촛불이 흔들리지만, 벽과, 집 안의 사물들과, 노파와, 선장과, 나는 멈춰있다. 선장은 충분히 몸을 녹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 앞으로 간다. 노파는 선장이 들고 온 봉투를 선장에게 내민다. 봉투 안에는 꽤 큰 생선이 세 마리나 들어있다. 선장은 능숙한 솜씨로 생선의 아가미를 딴 후,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등으로 칼집을 넣어 생선을 두 토막 낸다. 노파는 선장이 손질한 생선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노파는 화로 위에 놓인 석쇠에 생선을 올린다. 거실 유리 너머의 노파는 나를 쳐다보며 큰 입술모양으로 “숯은 난로 안에 많아.” 라고 말한다. 선장은 손을 깨끗이 씻고 방에 들어가 책을 한 권 들고 나온다. 지난밤에 새로운 읽을거리를 골라둔 모양이다. 이번에는 그림이나 사진은 없고, 활자만 가득하다. 나는 무관심한 듯 조금 건조한 어투로 무슨 책인지를 묻는다. 선장은 지체 없이 ‘거룩한 책’이라고 대답한다.


식사를 하는 것은 선장과 나뿐이었다. 노파는 차 한 잔을 들고 탁자 앞에 앉았다. 노파의 생선구이는 일품이었다. 숯도, 생선도, 굽는 자의 손길도 모두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선구이가 정말 맛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뜻밖에도 배 창고에 산 고기가 꽤 있더군.”

선장이 말했다.

노파의 눈동자가 향수에라도 젖은 듯 몽롱해진다. 노파는 식탁 앞에 몸을 남겨두고 이미 어딘가로 떠나있다.

“그곳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어림짐작으로 노파에게 물었다. 여행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궁금한 것이 생긴 탓에.

“감이 좋은 젊은이로군.”

노파가 말했다.

“사막의 사람들은 무얼 먹고 삽니까?”

노파에게 물었다.

“비와 이슬.”

노파가 대답했다.

비와 이슬. 사람이 어떻게 평생 물만 마시고 살 수 있을까? 물만 마시고 사는 인간에게 수명이란 것이 계산될 수 있을까?

노파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막의 사람들이 물만 마신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메말라버린 것은 아니야.”

노파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나는 내친김에 궁금증을 조금 더 해결하기로 했다.

“사막이 천국에 가까운 곳이라는 말은, 천국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까?”

노파에게 물었다.

“사막은 모든 것이 부족해서 모든 것이 채워지는 곳이야.”

노파는 느리게 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그런 곳을 천국이라고 한다면, 사막이 곧 천국인 셈이지.”

라고 말했다. 입가의 주름 사이로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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