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3. 12:51



꿈 | 지진


흉흉한 세월이었다.

사람들은 어디로든,

이곳이 아니라면 어느 곳이라도 좋다는 식으로 하나둘 집을 버리고 떠나기 시작했다.

도시는 공동처럼 비어갔다.

밤이면 도시는 암흑에 잠겼다.

네온사인도 간판도 커피숍도 불을 켜지 않았다.

갈라졌다가 다시 충돌한 아스팔트는 꽤 높은 언덕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솟아오른 아스팔트 언덕을 넘어 어디론가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우리처럼 남는 사람들도 있었다.

남은 사람들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믿었다.

울림이 시작되면 몸을 웅크렸고, 울림이 지나가고 나면 먹을 걸 찾아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사람들은 곧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둔감해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었다.

단 한 시간 후의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죽음? 죽음. 그것은 외로움이었다.

살갗마저 얼릴 듯 냉담한 고독. 뼈마저 녹일 듯 뜨거운 고독의 공포.

더 이상 아무도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고,

아무도 죽음을 책임지지 않았으며,

아무도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줄 수 없었고,

죽음의 곁에서 죽음의 고독을 끌어안아줄 수 없었다.

그런 세월에.

아니 그런 세월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마지막 행운이었다.

키가 무척 작았고,

작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큰 뿔테 안경을 썼고,

언제나 바지차림인 여자였다.

우리는 별로 말을 많이 나누지 않았다.

처음 땅이 갈라졌다가 닫힌 날 이후로 사람들은 조금씩 말을 잃어갔다.

열린 땅이 닫히고 나면 얼마 동안은 고요했고,

닫힌 땅이 주는 잠시의 고요처럼 침묵이 고요를 가져온다고 믿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도시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이 남았고,

남은 사람들은 끼니조차 적게 먹었다.

우리는 거리와 이어진 거리와 거리를 걸었고,

아주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꽤 오래 고요한 날들이 계속됐고,

곧 고요에 적응했고,

고요를 즐기기 시작했다.

어느 곳에서도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발걸음 소리를 음악 삼아 걸었다.

하늘은 늘 흐렸으나,

비는 아주 드물게 내렸다.

아침이 오면 우리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산책을 나섰다.

어느 날,

평소 걷던 코스와 달리 반대편 코스를 잡고는 한 시간쯤 걸었을 무렵,

갑자기 땅이 10센티미터쯤 가라앉았다가 다시 솟아올랐다.

처음엔 헛발을 디딘 줄 착각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진의 전조였다.

분명 곧 지진이 시작될 것이다.

울림은 그녀의 몸에도 친절하게 울려 퍼졌고,

순간 그녀의 눈망울은 공포로 가득 찼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피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달려야 할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녀의 손이 내 손을 잡아끌었다.

‘왜…’ 그녀의 눈동자를 읽으려는데 그녀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시선이 오른쪽에 있는 단층집에 날아가 꽂혔다.

바로 저곳! 이라고 결정한 듯 단호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현관과 마당을 지나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손은 떨고 있었지만 따뜻했다.

그녀가 몸을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마치 한 마디라도 내뱉으면 그대로 땅을 분노케 해서

갈라진 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을 아꼈다.

그녀와 나는 마주본 채로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공포로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은,

어쩌면.

어쩌면 오늘이.

우리가 동행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고 느낀 순간,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 와 닿았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는 심장의 울림을 느꼈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은 사람의,

아직 체온을 가지고 있고,

눈으로 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따스한 울림.

그르렁거리며 땅이 울리는가 싶더니, 쩌억 하는 굉음과 함께 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품안으로 파고들어왔다.

우리는 절규에 가깝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집의 한쪽 벽이 날아가고 벽 저편으로부터 땅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십여 미터쯤 땅이 갈라졌고 그 틈으로 암흑이 새어 나왔다.

나는 암흑의 골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깊이를 잴 수 없는 암흑의 절벽이 느껴졌다.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의 삶을 집어삼켰을 암흑의 심연.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여전히 수시로 거대한 입을 벌리고,

생명을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괴물의 광기 어린 굶주림.

갈라진 틈 쪽으로 바닥이 기울기 시작했다.

방위를 인지하는 것은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어느 쪽 땅이 솟아오르고,

어느 쪽 땅이 꺼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정체 모를 기둥이 손에 잡혔고,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온 힘을 다해 기둥을 부여잡았다.

순간, 땅덩어리가 뱅그르르 돌더니 갈라진 땅이 쩍하고 달라붙었다.

깨진 콘크리트 조각과 아스팔트 조각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몸을 덮쳤다.

곧 진동이 가라앉았다.

짧았지만 긴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살아있을 때,

아직 살아있는 그녀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이식된 듯 붙어있는 그녀의 몸을 떼어낸 후,

그녀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홍수에 표정이 쓸려나간 얼굴.

그런 얼굴이 가능하다면…

그녀는 소리 내지 않았지만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떴다.

내 눈동자와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에서 또 한 덩어리의 공허한 눈물이 쏟아졌다.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 너머로 눈물이 아지랑이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내 손 위로 흘러내리는 그녀의 눈물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에 나는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

위로가, 위로가 되지 못하고 수면 아래 얼어붙은 채,

썩지도 살아나지도 못하는 낙엽처럼 무의미해지는 순간과 닮은,

무능력한 인간.

그녀가 울음을 그칠 무렵 나는 겨우 입을 열어 소리를 낼 수 있었다.

“끝났어요…”

하지만 그녀도 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 중 하나가 죽고.

나머지 하나가 죽은 후에도.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젖은 얼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이대로 계속 살아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의 삶에도 존재로서의 가치라는 게 있을까.

그녀가 다시 내 품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울음을 그쳤지만 여전히 떨고 있었다.

나는 우리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그녀의 손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내가 서있는 바로 그 사이의 땅이 갈라지고,

둘 중 하나가 떨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손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죽음의 순간에 그녀를 외롭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적어도 한 사람만은 외롭게 죽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

나는 코트를 열고 내 몸에 파묻기라도 하듯 깊숙이 그녀를 껴안았다.

나는 내 코에 닿아있는 그녀의 머리 결에서 어떤 향기를 맡았다.

무슨 향일까?

어머니를 그립게 만드는 향기.

무엇일까…?

아, 모과 향.

어릴 적 어머니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던 것이 모과 향기였다.

깊고 은은한.

그녀는 숨죽이듯 여린 호흡을 이어가다가 가끔 깜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를 더욱 깊이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곧 나 역시 잠이 들었다.

“꼭 애기처럼 자던걸요.”

무릎을 모으고 앉아있던 그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녀의 미소. 참 오랜만이다.

긴 산책 중에도,

깨져버린 편의점을 뒤져 찌그러진 캔을 찾아 마주보고 식사를 하면서도,

그녀는 잘 웃지 않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이 인간에게서 가장 먼저 거둬가 버린 것이 바로 미소였다.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그 사람만의 유일한 웃음.

재앙은 미소를 검은 낯빛으로 바꾸어놓고 스스로 미소 짓는다.

재앙은 잔인하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잔 덕분인지 몸이 개운했다.

“언제 일어났어요?”

“한 시간쯤 전에요.”

나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잠시 머릿속에서 잔인한 지진의 진동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나는 웃었고, 그녀도 웃었다.

먼지 위로 흘러내린 눈물 자국으로 온통 얼룩진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미소는 눈이 부셨다.

우리는 곧 반쯤 부서진 집을 빠져나와 오전의 지진이 새로 만들어놓은 언덕을 넘어

다른 생존자들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연장된 수명의 길이만큼 더욱 깊은 공포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살을 찢고 나올 듯 쿵쾅거리던 심장이 안정을 찾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다른 남은 사람들을 찾았고 포옹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땅은 전쟁하듯 갈라지고 서로를 들이받았지만,

재앙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그 이전의 어떤 삶보다도 따뜻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황폐한 땅 위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반가움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사람뿐이었다.

그녀와 나는 평소처럼 긴 산책을 하며 새로운 언덕을 만났고,

언덕을 넘어 걸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평소보다 긴 대화를 나눴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자주 웃었다.

이렇게 무지경하게 공포스러운 세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결혼을 고민하고 미래를 약속하고,

집을 얻고,

아이를 낳고,

함께 늙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과 사랑 말고는 모든 것이 부질없는 세상이다.

우리는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는 때가 아니면 가능한 한 큰 건물들을 최대한 멀리 두고 걸었다.

꼭 갈라진 땅에 먹히지 않더라도 쓰러지는 건물에 깔려 죽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우리는 때에 맞춰 식량을 구할 수 있었고,

예고 없이 수시로 덮치는 잦은 지진을 함께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험은 여전히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생활 자체가 위생적이지 못했던 탓에 우리는 자주 감기에 걸렸고 고열과 기침에 시달렸다.

약을 구하는 것은 식료품을 구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식품점 주인들은 대부분의 무거운 인스턴트식품들을 버리고 떠났지만 약국은 달랐다.

생존자들은 주리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영양결핍이었고,

감기나 폐렴처럼 가벼운 병으로 생명을 잃기도 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빛이 많이 드는 단층집을 골라가며 보금자리를 옮겼지만,

빛을 가로막은 두꺼운 구름 아래에서 날이 갈수록 쇠약해져 갔다.

어느 날 아침,

무거운 하늘이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장마였다.

우리는 툇마루에 앉아 마당 위로 떨어지는 비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오래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비.

대화를 줄였다.

행복했다.

비는 우리에게 풍요였고,

서로를 끌어안고 잠드는 시간을 더욱 따뜻하고 행복하게 했다.

오랜만의 긴 비.

기온은 곧 떨어졌고 서늘하다 못해 쌀쌀한 날들이 이어졌다.

이 시간들은 무엇일까.

거부할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이 시간들.

무엇일까. 이 시간들은.

우리는 궁금해 하면서도 답을 찾지 않았고,

서로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질문하지 않았다.

우리는 가끔 서점을 찾아 책을 읽곤 했다.

육신의 끼니를 때우듯 영혼의 굶주림도 채워야 했다.

나는 그녀가 책장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독서보다 즐거웠다.

이름 없는 한 영혼이 글쓴이의 영혼과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

내게 독서의 풍경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책을 읽는 동안 가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가 그녀에게 닿을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지나치게 오래 전에 집과 주소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고,

나는 결국 닿지 못할 편지를 하염없이 써내려가곤 했다.

그녀는 가끔 바다를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죽음보다 앞서서 꼭 한 번 바다를 보고 싶다고 했다.

지진이 사위를 갈라놓은 땅에서 우리는 동서남북의 방향을 잃었고,

어느 쪽으로 얼마나 걸어야 바다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가끔 피로에 젖은 몸으로 잠이 들었고, 그녀가 해변을 달리는 꿈을 꾸곤 했다.

맨발로 개펄을 달리는 그녀의 발에는 진흙으로 덮인 고무신이 신겨져 있었고,

그녀는 벌새처럼 가볍게 소금물에 젖은 진흙 위를 달렸다.

나는 신을 신지 않은 그녀의 발 위에 신겨진 진흙 구두를 보며 한참을 미소 짓다가 깨어나곤 했다.

우리는 걸었고,

바람이 우리를 에워쌌다.

그것은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바람이었다.

왼쪽 뺨을 스치던 바람이 오른쪽에서 불어오고,

위에서 아래로 부는 바람은 동시에 턱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진정 신비로웠던 것은,

그 모든 바람이 세상의 모든 방향에서 불어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새가 대열을 이탈하듯 내게서 한 걸음씩 멀어져갔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입술을 열어 내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곧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지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땅은 느리게 갈라졌다.

나는 그녀가 서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느린 균열이었지만 그녀에게 닿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순간, 그녀의 눈망울에 물 덩어리가 맺혔다.

얼어붙은 듯 선 채로 울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아주 작아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낀 순간 몸이 낙하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눈동자는 외로움과 무기력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갈라진 절벽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는 믿음으로 양손을 포개어 꼭 쥐었다.

검은 절벽 아래로 나보다 빠르게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보였다.

미소 짓는 표정으로 빠르게 낙하하는 빗방울들.

나는 어쩌면 혼자 남게 될지도 모를 그녀의 외로움은 헤아리지도 않은 채,

그녀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

그녀가 무사하기를.

그녀가 무사하기를.

외롭더라도 조금 더 오래 살아남기를…

문득 바보 같은 소원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

마치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어둠의 골짜기로 떨어지지 않고

날아오를 수 있을 거라는 광인의 믿음이었거나,

아니면 암흑에 대항하는 마지막 저항처럼.

그 순간 귓전에서 쿠웅~하는 굉음이 들렸다.

그렇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발목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통증은 곧 종아리를 타고 올라왔고, 나는 무릎이 깨지는 듯 무겁고 예리한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고 이를 악물었다. 꽁꽁 언 사지가 마치 관 속에 누워 굳어버린 시체처럼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눈을 떴다. 마주잡은 양손은 서로 너무 세게 쥔 나머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꿈결에 뻗은 두 다리는 공중전화박스 모서리에 사이좋게 나란히 처박혀 있었다. 다행히도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행인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몇 시쯤 되었을까… 알 수 없다. 나는 축축한 외투 안에 든 노트와 펜을 꺼냈다. 나는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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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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