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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장에게 나를 바다 건너로 데려다줄 생각이 없는지 여러 차례 물었다. 그러나 선장의 뜻은 확고했다. 자신의 선원이 아니면 배에 태울 수 없다는 것. 게다가 선원이 된다면 더욱더 바다 건너로는 데려다줄 수 없다는 것. 사막에 버려두기 위해 선원을 뽑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막은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올 수는 없는 구조였다. 일단 해안선 근처에서 내려 헤엄을 치거나 구명보트를 이용해 사막의 해변에 닿을 수는 있지만 돌아올 때는 방법이 없었다. 선장의 말은, 사막에 들어가게 되면 사막에서 살거나 죽어야한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것처럼, 아니 사막에서 태어나 인생을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사막의 사람으로 여생을 마감해야한다는 것이다. 사막에 간다는 것은 그의 말처럼 세상과의 결별을 의미했다. 하지만 결별까지는… 나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언제가 되었건 가족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사막에 가는 것도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 내가 나에게 바라는 상태에 닿고자 하는 이유가 오직 가족과 나 때문이므로. 나만 변하고자 사막에 가는가. 왜… 왜 돌아오지 못할 곳까지 가는가. 이미 돌처럼 굳어버린 자아와 응고된 과거의 기억들을 고친들, 수정된 나 자신을 나는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나만 변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선물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고작 끊어진 사다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냄새 맡을 수 있다. 마른 모래 냄새. 젖은 사막의 먼지 냄새. 나는 사막이 나를 부르는 냄새를 선명하게 맡을 수 있다. 예전에는 자주 나 자신을 비워둔 채 살았다. 저녁에 나가서 새벽에 돌아오거나, 아침에 나가서 오후에 들어오거나. 어릴 때는 그런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커서는 그것이 무지에서 오는 방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결과, 나는 이제 거의 나 자신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는 꿈을 꿀 때조차도 ‘나 자신’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를 내버려두지 않고, 스물네 시간 나를 붙잡고 나 자신이려고 노력하고, 나를 비워두지 않은 채 내 안에서 나와 나의 기억들을 붙들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까지 괴롭히는 짓임을 알게 되었다. 놓을 것은 놓아주어야 했고, 잊을 것은 잊어주어야 했고, 어떤 빈자리는 비어있는 채로 내버려두어야 했다. 내 안에는 내 광기를 위한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내 안에는 더 이상 여분의 공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나는 내 속을 나로 채우는 일보다 비우고 여백을 확보하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맙소사. 나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내 기억을 내버리는 일이 어느새 불가능해져버렸다는 것을 깨닫고야 만 것이다. 선장은 내게 세상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해주었다.

“세상에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절대로!”

그것은 아마도 내 기대를 꺾으려는 의도였거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를 보호하려는 의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선장은 진심으로 내가 사막에 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미 때 묻고 시들어버린 영혼 따위가 어디에 간들 구원받을 길이 있겠느냐고. 황폐한 영혼이 사막을 굴러다녀봐야 마른 모래알밖에 더 되겠느냐고. 선장은 내게 골목을 벗어나서 도시 바깥쪽을 산책하기를 권했다. 선장은 내게 도시에서의 삶이 사막보다 한결 낫고, 도시에서 구원받지 못할 영혼은 사막에서도 구원을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려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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