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묵상2019. 6. 12. 18:24



<바퀴달린 철학자 유튜브 채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53g3bhwGin2RAcHCKHAzEA>



아마도 2009년의 가을이었거나 어쩌면 몇 달 더 이른 시기였을 수도 있을 즈음에, 등과 머리 몇 군데에 새끼 손톱만한 각질이 발생했다. 모든 질병 관리의 척도가 그렇지만, 발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이다. 하지만 나는 실력 있는 동네 피부과의 오진으로 몇 달 동안 엉뚱한 연고를 바르고, 아무 관련 없는 약을 먹으며 병을 키웠다. 피부과 질환은 일단 조직 검사가 필수다.

 

초기 건선은 보통 스테로이드 연고로 잡는다. 생활 리듬을 찾고,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스트레스를 멀리 두고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면 이 정도 치료로도 충분히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만,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면 당연히 악화될 것이고,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를 쓰더라도 호전과 악화를 반복할 것이다.

 

이미 건선이 자리 잡은 시점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피폭(?) 당하게 되면 삽시간에 전신으로 퍼진다. 이때부터 중증 건선환자가 되고, 이미 기본적인 치료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시점부터는 가급적이면 용하다는 동네 피부과보다는 대학병원 급의 피부과 전문의를 찾는 것이 좋다. 용한 피부과의 비밀은 최고 등급의 스테로이드 연고와 구강 면역억제제 처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몸도 망치고 병도 깊어진다.

 

연구소나 제약회사에서 나오는 약물은 대부분 부작용을 동반한다. 알면서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병의 고통 때문이다. 중증 건선환자들은 거의 외출을 하지 못한다. 인간의 몰골이라 보기 힘든 외상 투성이의 몸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으로 인식하는 사회 전반의 무지도 한 몫 한다. 24시간 가렵고, 쓰라리고, 화끈거리는 피부는 끝나지 않는 고문에 가깝다. 구강 면역억제제는 함암제에 버금가는 부작용 물질이지만 잠시나마 건선에서 해방되게 해주기에 대부분의 환자들이 아끼지 않고, 끊지 않고 먹으려고 하지만 의약법조차 이 약물의 장기간 사용을 금하고 있을 정도로 흉악무도한 약물이다.

 

건선의 발현을 담당하는 피부 속 특정물질에 대한 억제 효과를 가진 주사제들이 많이 나왔다. 흔히 회자되는 인터류킨 억제물시리즈다. 이 역시 면역억제제의 범주에 들지만 무작정 몸 전체의 면역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구강 면역억제제보다는 한결 나은 선택이다. 대신 가격이 비싸다. 약물에 따라 1회 주사비용이 10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다양하다. 하루 빨리 보험 적용이 되기를 기도할 뿐...

 

[관련 기사 한 꼭지 링크]

구셀쿠맙 최장 72주 장기간 효과 입증 :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358

 

자살을 생각했었다.

많은 건선환자들이 자살을 생각한다는(실천도 한다는) 보고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숨만 붙은 채 지옥을 살아가는 삶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중증 건선환자들에게 극심한 우울증과 자살 충동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건선은 원인불명의 병이다.

유전과 스트레스, 면역력 약화를 주요 기전으로 보지만 바로 이것 때문이다라는 답은 아직 아무도 내지 못했다. 인간이 제대로 아는 병이 몇 가지나 될까...


건선은 정신질환을 동반할 수 있다.

우울증을 시작으로 폐소공포증, 광장공포증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창이 열리지 않는 대중 교통을 이용하지 못했다. 관광버스, 창이 열리지 않는 지하철, 노래방, 극장 등등. 답답하고 좁은 공간, 어두운 공간, 지하에 있는 시설물들을 이용하지 못했다. '내가 내 몸 안에, 이 작은 육신 안에 갇혀있다'는 걸 건선을 앓으며 깨달았다. 사실이지만 끔찍하고, 끔찍하고 답답하지만 극복해야 하는 과정이다.

 

건선은 도움이 필요한 병이다.

가족과 친구... 어떤 관계에 있든 도울 수 있는 경우라면 돕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이 한 끼 식사가 됐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됐든, 운동이 됐든, 전화 한 통 걸어주는 소소한 관심이든 간에 건선 환자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 함께 외출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냉소 어린 시선을 막아줄 방패가 필요하다.

 

몸이 거의 만신창이가 되었을 무렵에 아주대학교병원 피부과의 이은소 교수님을 만났다. 처음에 투약했던 면역억제 주사는 별 효과가 없었다. 인터류킨 억제 주사는 각각의 제품마다 타겟이 다르다. 최종적으로 투약을 결정하고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된 약물이 구셀쿠맙이었고, 내 상태에 딱 알맞은 약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맙시다... 이를 악물고, 포기하지 맙시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차가와도, 최선을 다하는 삶에는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매일,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눈물겹게 감사하다.

매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눈물겹게 고맙다.

삶이 이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 삶다운 하루하루가 이어져가고 있다는 것이 그저 눈물겹게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1. 조직 검사를 통한 정확한 진단.

2. 올바른 생활 균형 유지를 기반으로 한 적절한 약물 치료.

3. 자연식 식이요법, 바른 수면리듬, 적당한 운동, 햇빛 쬐기(광합성, 썬텐), 스트레스 극복.

4. 고강도 스테로이드 연고와 구강 면역억제제는 피하는 것이 좋다.

5. 자연 치유가 최선이지만 자신의 상태에 맞는 건선 주사제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판상 건선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어두운 빛깔의 얼룩이 남는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 상처의 흔적이 남는 것과 같은 원리다.

멜라닌 색소 침착으로 인한 얼룩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지면서 제 색을 찾는다.



고통스러웠던 건선 투병의 흔적들...

 


















youtube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bdgLjkg7QQxFqAglMiJ0Q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