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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묵상

[삶] 나는 경비원이다. - 인공지능 시대 vs 경비원이라는 직업


사람의 몸은 늙고, 병들고, 죽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은 데이터 기반 자가 학습 인공지능에 있다. 거의 반영구적인(영생을 누리는) 자가 학습 로봇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건강(병), 컨디션(감정, 몸), 개인사정(사생활) 따위의 방해 요소가 전혀 없는 완벽한 일꾼의 시대. 그 결과 단순 육체 노동에 해당하는 모든 직업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가진 자들에게는 더 편한 시대가 열리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지옥문이 열리는 셈이다. 단순 노동직... 복지 기반이나 고용 대책을 내놓을 수 없는 나라의 서민들은 도탄에 빠질 것이고, 쉽게 구제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 문명 이래 최대의 기술 도약이 최대 다수 서민들의 피눈물을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차단기와 동작감지기, 카메라 몇 대 만으로도 위협 받는 직업이 경비직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사고 처리나 관리는 사람의 몫으로 남으니 경비 관련직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아주 조금 더 시간이 남은 것 같아 보인다. 다행히도 아직은 '기계보다는 사람이 해주는 게 속시원하고 마음 편한 일'로 인식되는 분야들이 있고, 경비직도 조금은 그렇다.


경비직은 일반 시설경비, 신변보호, 호송경비(현금, 귀금속), 기계경비(세콤), 특수경비(공항, 발전소 등) 등의 분야로 나뉜다. 분야는 다양하지만 현직 경비원 중 다수가 시설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고, 나 역시 그렇다.


인간인지라 교대로 일해야 한다. 쉬는 날도 필요하고, 밤샘 근무 후의 비번은 필수다.

24시간 맞교대인 경우, 한 달 기준 15일을 쉰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15일을 일하고 15일을 잔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ㅜㅜ


일반적인 교대 스케줄은 주간, 주간, 야간, 야간, 비번, 휴무로 구성된다.

주간 근무 이틀, 야간 근무 하루, 야간 근무 이틀째 (밤샘 후 오전에 퇴근) 당일 비번, 그 다음 날이 휴무다.

24시간 시설 경비는 주야 12시간 교대이거나, 주간 10시간/ 야간 14시간 교대다.

나의 경우는 주간 10시간, 야간 14시간을 근무한다.

감사한 것은 우리의 스케줄은 주주야야비휴가 아니라 주야야비휴라는 점이다.

3박 4일 일하고, 1박 2일을 쉰다. 이런 스케줄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가장 쉬워 보이는? 경비원이라는 직업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1. 이틀 연속 이어지는 야간 근무 사이에는 수면 균형이 완전히 깨져버린다.

수명 단축의 원인이 될 정도로 심각한 고충이다.


2. 경우에 따라 많은 서류 작업이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50대로 진입하는 말단 경비원이지만 지극히 기본에 속하는 매일의 다양한 서류 작업에 투입된다. 업체에 따라 전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워드와 엑셀은 기본이고, 근무 중 발생하는 모든 항목들이 서류화 되기 때문에 이런 예상 없이 몸으로 떼우는 직업으로 알고 오는 경우에는 멘붕에 빠질 수도 있다. 모두 종이에 출력하고, 항목별로 정리해서 일정 기간 보관한다.


3. 경비원은 편하지 않다.

경비직은 산만하고, 잡일이 많은 직업이다. 하지만 세상에 잡타이틀대로 자기 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4. 박봉이다.

최저시급에 해당하는 모든 노동직이 그렇지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많이 벌 수 없다.


5. 여전히 육체 노동이다.

밤샘 근무 후에 밀려드는 피로감에서 과로사의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빼미족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도 경비직으로 들어오면 밤샘이 두려워진다.


6. 흐르지 않는 시간과의 사투.

지루하고 산만한 시간과의 전쟁이다. 일거리 없는 시설일수록 지루함의 고통이 심할 것이다. 뭔가에 온전히 몰두하기에는 지나치게 산만하고, 지루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는 경우도 많다. 정자세로 서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 즉 이어폰을 꽂거나, 책을 읽거나, 폰을 만지작거릴 수 없는 상태로 시간을 채워야 하는 경우를 상상해보면 되겠다. 인내심도 공상할 능력도 없다면 며칠?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나는 경비원이다.

곧 50대에 접어들 것이고, 여생을 맡길 마지막 일로 경비원을 선택했다.

세상은 누구의 뜻이나 사정과도 상관없이 도도히 변해가고, 이 시대의 여울에 걸려있는 변화의 물살은 여타 시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거세고 빠르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 일로서의 경비원이라는 직업은 이제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후 직업이라는 타이틀도 이미 절반은 빼앗긴 상태다. 기계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이 이 직업의 쇠락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경비원이고, 심지어는 경비지도사 공부도 하고 있다. 경비지도사라도 되면 적어도 10년은, 아니 제발 20년은 더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핵심은, 변화의 물살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을 읽으면, 적어도 따라갈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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