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묵상2019. 1. 4. 22:30


하루라는 시간조차 모자란 것처럼 유튜브와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과 청소년들.

무언가 유익한 것을 보고 있을 수도 있지만, 쓸모없어 보이는 먹방이나 예능 프로그램들, 게임 해설 따위?를 보며 한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청춘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언젠가 이 아이들에게 닥칠 시간 고갈 현상을 걱정하는 것이다. 지구가 무한히 자원을 내어주지 않듯, 인생 역시 무한한 시간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고, 언젠가 정작 긴 시간을 들여왔어야 했을 결과를 얻지 못해 망연자실할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외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주는 말들 중에 부러운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가 즐겨라!’ 라는 말이다.

Enjoy, enjoy your life!

 

우리나라의 부모 세대는 자녀들이 무언가를 즐기는 모습, 특히 그것에만 몰두해서 하루의 반을 허비? 해버리는 꼴을 보고 있지 못한다. 그런 것? 말고도 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들이는 시간만큼 책도 읽어주기를 바라고, 공부도 해주기를 바라고, 그밖에 뭔가 생산적인 일들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아이들의 시간은 그런 식으로 소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주는 말들 중에 두 번째 부러운 것은,

너 자신에게 도전해!’ 라는 말이다.

Challenge yourself!


자신에게 도전하라는 말은 깊은 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표현은 도전의 대상을 낯선 맛이나, 새로운 경험이나, 풀지 못한 난제나 어려운 상황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이 표현에서 도전의 모든 대상은 상황에 관계없이 무조건 자기 자신이다. 자신의 인내심, 자신의 나약함, 자신의 모자란 능력, 자신의 짧은 경험치, 자신의 어리숙한 똑똑함, 자신의 편협한 사고방식, 자신의 찌질한 용기, 자신의 저질스런 체력 등, 도전의 모든 대상을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 진실한 팩트이고, 도전의 대상에 대한 바른 시각일 것이다.

 

인간은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것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되고 안 되고의 상황적 정의를 떠나서 자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문제도 덩달아 해결해왔다. 그것이 인간이 이룬 문명의 한 단면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나를 이겨내는 정신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다양한 죽음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다.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고, 간판이 떨어질 수도 있고, 교통사고, , 심지어 독감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을 즐기고, 지금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오늘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내일이 온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신은, 만약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오늘 심은 사과나무가 맺은 열매를 먹을 날이 올 거라는 긍정과 준비의 철학인 셈이다.


어쩌면 다가올지도 모를, 살아있다면 반드시 맞이하게 될 내일을 준비하며 사는 것은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지속성을 가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철학거리다. 그래서 오늘 나를 즐겁게 하는 유투브와 게임을 조금 줄이고, 내일을 위한 준비에도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내일도 이어지고, 4차 산업혁명이 폭풍처럼 다가와 온 세상을 바꿔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나의 두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꼭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부족한 아빠는 이 글을 써놓고, 또 야간 경비를 하러 간다.


youtube - https://www.youtube.com/channel/UCXbdgLjkg7QQxFqAglMiJ0Q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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