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글이 음악이 될 수 있다면, 음악을 듣는 듯한 문장의 힘을 구현해내는 작가가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프랑스의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입니다. 실제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들이 구하던 답을 자연으로부터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보나치 수열이 꽃잎에서 가장 완벽한 음악적 코드를 찾아냈고, 컬러리스트나 디자이너들이 자연의 색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의 조합을 찾아냈다면, 크리스티앙 보뱅은 인간의 삶과 인간의 눈을 통해 들어온 세상을 바라보며 삶 속에 녹아있는 음악을 찾아내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작가입니다.
작가의 책 중에는 오늘 소개할 ‘인간, 즐거움’ 외에도 성 프란시스의 삶을 시적으로 그려낸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와 ‘사랑은 죽음처럼 강하다’ 등의 수필이 있습니다. 이미 50권이 넘는 책을 쓴 시인이며 수필가이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인간, 즐거움’은 저 같은 사람에게는 제목부터가 다가가기 힘들고, 거리를 두게 만듭니다. 저는 어두운 면에 더 가까운 사람이어서요. 만약에 같은 구조로 제목을 지어야 한다면 저는, ‘인간, 슬픔’이라거나 ‘인간, 눈물’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어둠과 슬픔을 탐닉하는 작가들은 많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어둠과 슬픔의 심연을 더듬고, 눈에 보이는 않는 심연의 바닥에서 움켜쥔 한 움큼의 진실, 그 진실의 진흙덩어리를 손에 쥐고 올라옵니다. 그 진흙덩어리는 그걸 손에 쥔 작가의 노고만큼의 설득력을 지닙니다.
이런 세상에서 크리스티앙 보뱅은 다른 편의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마리아예요’ 라는 장의 서두를 읽어보겠습니다.
‘마리아예요.’라고 말하고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침묵이 너무도 순수해서
절대 깨뜨리고 싶지 않다.
‘마리아예요.’
임신 중인 어린 집시 소녀의 목소리가 하느님과 마주한 듯 떨린다.
검은 하늘 위로 보석처럼 빛나는 목소리.
울림조차 없다.
장미의 검은 심장 안으로 들어선 우리는
이제 세상의 어떠한 풍문에도 귀를 닫은 채
기적 한가운데 서 있다.
‘마리아예요.’
2주 후면 배 속 아기가 태어나 작디작고 영롱한 눈빛으로
이 세상을 비추겠지만,
지금은 아이를 밴 그녀의 놀란 목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우리에게 빛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홀로 수화기 너머에 서 있다.
삶이 즐거워도 되고, 삶이 아름다워도 되는 이유를 깨달은 자가 지닌 설득력이랄까요? 그렇습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눈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향해 있고, 슬픔과 추악함이 담고 있는 삶의 진실이 있다면, 그만큼의 또 다른 진실이 인생 속에 있다는 것을 선명한 활자로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또 다른 문장을 읽어보겠습니다.
‘마리아예요.’
이 한마디 말 속에 그녀의 인생 전체가 들어 있다.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이 내뱉는 말.
고조된 침묵 속에 불쑥 드러나는 인간 삶 자체에 대한 질문.
살면서 생각해야 할 것.
이것이 전부다.
작가는 하나의 문장, 한 마디의 말, 그것을 담은 한 사람의 목소리에 모든 것이 담겨있음을 느끼고 깨닫습니다.
마치 편광필터를 통해서 보는 세상이 맨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더 선명해 보이는 것처럼, 이 작가의 영혼에는 세상을 맑게 보는 필터 한 장이 더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가항력의 선율’이라는 글의 한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기계가 차례로 고장이 난다.
맨 처음에는 부엌에 놓인 소형라디오,
다음에는 거실에 있는 녹음기 순이다.
알람 라디오는 아직 버티고 있지만 언제 멈출지 알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둔다.
인생의 여정과 함께하듯 그렇게 오디오 기계들을 바라본다.
딱히 고치려 들거나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려 하거나
처음의 완벽한 상태로 되돌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몇 안 되는 원칙 중의 하나.
아니 어쩌면 유일한 원칙일지도 모른다.
절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것.
실패에 대항하지 않는 것이다.
듣고 쓰거나 사랑할 수 없는 처지일 때,
숨 쉬는 일이 힘겨울 때,
언제나 그 처지에 여지를 남겨두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저는 이 대목이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 이 작가만이 가진 마음의 필터를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로 두는 것’
어찌 보면,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이런 모습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자신을 방해하거나,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길을 막는 걸림돌들을 ‘그대로 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이지요. 절대로 그대로 두지 않는 것.
하지만 작가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둠으로써, 말 그대로 ‘모든 것이 그대로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어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의 순리를 작가는 있는 그대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글로 옮기겠죠.
책의 마지막 장인 ‘열쇠 꾸러미’ 에 담긴 문장들을 읽어드리고,
이 책의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문은 애초에 없었다.
그러니 그 열쇠 꾸러미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중략...)
나는 하늘의 푸르름을 바라본다.
문은 없다.
아니면 문은 오래전부터 열려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따금 이 푸르름 안에서 꽃의 웃음과 같은 소리를 듣는다.
그 푸르름을 함께 나누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소박한 웃음소리를.
당신을 위해 그 푸르름을
여기 이 책 속에 담았다.
가을이지요?
이 작가의 푸르름을 담은 글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크리스티앙 보뱅. ‘인간, 즐거움’, 이선민 옮김. 문학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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