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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주어진 동력이 없음에도 멈추지 않고 잘도 흐릅니다.
찰나의 멈춤도 없습니다.
멈추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한없이 흐릅니다.
인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사실 시간이라는 차원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시간을 제어하는 일은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사라집니다.
이미 지나간 인류도 그랬고, 현재의 생존 인류도 그럴 것이고,
앞으로 태어날 인류도 그렇게 잠시 시간 속을 머무르다 사라지겠지요.
시간은 그 자체로 세상의 어떤 힘과 존재로부터 자유롭지만,
이 세상 속의 생명체들은 모두 시간의 울타리 안에 매여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시간 바깥의 세상으로 나가거나,
시간 바깥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시간은 불가항력적인 힘이고,
우리는 그 힘 안에서만 짧은 생명의 세월을 보낼 뿐입니다.
생명의 시작과 함께 각각의 생명에게 주어지는 시간.
그렇게 한 인간이 살아가게 되는 시간.
이렇게 흐르는 시간을 저는 세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무언가가 채워지는 시간, 혹은 쌓이는 시간입니다.
채워지고 쌓이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 벽돌을 쌓는다면, 벽돌이 쌓여가는 높이와 부피를 눈으로 볼 수 있겠죠.
시간을 들여 책을 읽었다면, 그 책들이 사람 속에 쌓인 모습을 볼 수는 없겠지만, 읽은 책만큼의 소양이 분명 쌓였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무언가가 채워진다. 혹은 쌓인다.’라는 표현은 다시 표현하자면, 나에게, 나의 기억에, 내 존재의 표면이나 내면에 무언가를 새기고 지나간 시간입니다.
그것이 경험이든, 지식이든, 잊지 못할 감정이든, 그와 비슷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흘러간 시간이지요.
시간의 온도를 잴 수 있다면, 시간의 밀도를 가늠할 수 있다면, 뜨겁고, 응축된, 그래서 우리의 삶에 진한 심미적 각인을 남기는 시간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쌓여 덩어리진 시간은 인류에게 다양한 모양을 가진 유산으로 남습니다.
이 유산 역시 눈에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앞선 세대의 기초지식이 다음 세대의 문명이 되는 경우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쌓인 시간의 결과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만, 인류 역사에 흔적을 남기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고도의 잔혹성이나 지능적 범죄 역시 쌓인 시간의 한 예가 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좋은 예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쌓인 시간의 공통점은 변화와 성장입니다.
쌓인 시간은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하고, 성장해갑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좋은 방향, 선한 성격으로의 변화입니다.
이렇게 쌓이고 채워진 시간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일정한 형태를 지닌 결과를 가지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이 흔히 간과하는 것은 시간의 부메랑 효과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 사람이 쌓아올린 어떤 시간의 형상은 그 모습이 드러낼 수 있는 일종의 가시적인 형태로 그 사람 자신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이런 성격의 시간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쌓여버린 시간이 있습니다.
쌓여버린 시간이라는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개인이 억지로 쌓아간 시간이 아닙니다.
아무런 목적도, 의도도 없이 보낸 시간이지만, 같은 행동이나 같은 주제와 소재에 대한 생각을 반복하면서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쌓아가는 시간이 되어버린 시간’입니다.
시간이 지닌 속성에 따라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 밀도가 높아진 시간을 의미하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 시간을 소유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작정 읽어나간 수 천 권의 책들.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전혀 고되지 않았던 온라인 게임.
삶을 모조리 소진할 것처럼 몰두했던 드라마 시청 시간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쌓여버린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자신의 길을 찾아내곤 합니다. 다른 이들이 볼 땐 쓰레기더미 위에 앉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쓰레기더미 위에서 보낸 기나긴 시간 덕분에 쓰레기더미 아래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에너지를 발견해내는 일이 가능해지는 현상 같은 것.
자, 이제 두 번째 종류의 시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간의 다른 한 종류는, ‘효율’이라는, 과거의 인류에게는 한때 신조어였던 한 개념을 기준으로 관찰했을 때 ‘새어나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격의 시간은 사실 시간이라는 속성 자체에 충실한 시간일 뿐, 무의미하다거나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단순히 폄하할 수 없는, 이것 역시 나름의 무게를 지닌 ‘시간 그 자체로 존재하고 흐르는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의 특징은,
개인에게 특정 지을 수 있는 어떤 것을 남기지 않습니다.
흐릿한 꿈처럼 기억에 무언가를 남기지 않습니다.
삶에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안개처럼, 포말처럼, 사라져버립니다.
하지만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습니다.
자, 이렇게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고 가정하면,
보통은 쌓이는 시간은 좋은 시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쌓아가는 시간, 즉 효율성만을 위한 시간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인간은 태양이 아니기에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불타오르는 시간만을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그 휴식의 시간, 혹은 시간의 흐름만을 느끼는 그 관조의 시간은 어찌 보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고, 핵심적인 순간이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저 두 종류의 시간의 경계를 흐르는 시간 속에는 영감이 흐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쌓아가는 시간과 흘러가는 시간 사이에서 깊은 영감을 만납니다.
퀴리부인의 라듐도,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의 법칙도, 모두 그들이 실험실에서 결과를 기대하며 애쓸 때가 아니라, 이 무료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무감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주어진 결과들입니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체리듬인 것처럼, 노력과 열정으로 무언가를 쌓아가는 시간과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두는 시간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리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두 종류의 시간 사이의 경계를 흐르는 시간을 저는 ‘영감의 시간’ 또는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결국 제가 생각하는 시간의 종류는 모두 세 가지입니다.
1. 인간의 노력을 담아 무언가를 쌓아가는 시간.
2. 우리가 흔히 시간이라고 부르는, 흘러가는 시간 그 자체인 시간.
3.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영감의 시간.
우리가 통칭 시간이라고 이름 붙인,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거대한 차원 속에서, 우리는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볼품없고 미미한 것들을 차곡차곡 쌓고, 발견해가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빛만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존재에 불과한 우리지만, 무언가를, 그 무언가를 이루어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인류의 종말 후에 살아남는 인류는 다시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할지도 모르지만, 시간 속에서 다시 무언가를 쌓아올리는 일을 반복할 거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쌓이는 시간과, 시간이라는 강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잉크처럼 시간 속에 번져 시간과 함께 그저 흘러가는 시간.
그렇게 큰 두 줄기의 시간이,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깨달음의 시간’이 우리들의 인생 속을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시간이 이 세상에서 빛의 시간과 어둠의 시간, 그리고 여명의 시간이라는 세 가지 얼굴로 존재하는 것과 닮아있습니다.
저는 사실 어느 쪽이 낫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세 가지 종류의 시간 모두가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제가 이 세 가지 성질을 지닌 시간을 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1. 빛의 시간에 해야 할 일과, 어둠의 시간에 해야 할 일이 각기 다르고, 그것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2. 그리고 우리가 보낸 시간, 내가 보낸 시간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
3. 마지막으로, 결국은 그 모든 시간이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보내는 시간은 몇 종류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의 시간은 어떤 색을? 어떤 질감을? 어떤 온도를 품고 흐르고 있습니까? 어느 정도의 밀도로 흐르고 있습니까?
이것으로 ‘시간 3부작’ 두 번째, 시간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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