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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묵상

결정 장애의 고단함에 대하여

https://youtu.be/-JFfH1rD4wU

우리는 살면서 매일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놓입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쌓여가는 선택과 결정들은 우리의 삶을 조금씩, 혹은 크게 바꾸어 놓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두 갈래 길’이라는 시가 있지요.
정현종 시인의 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 정현종 시인 번역


우리는 선택과 결정이라는 말을 혼동하거나 혼용합니다.
굳이 꼬집어보고 간다면,
선택은 이거냐 저거냐 라는 의미에 가깝고,
결정은 하느냐 마느냐 라는 의미에 가깝겠지요.

우리는 결정이나 선택에 앞서 ‘다음에’라는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합니다. ‘다음 기회’라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다양한 시간적 기준을 자신에게 제시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일 년 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나에게 한 달 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나에게 일주일 후가,
나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 지금의 고민거리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뚫어지게 바라봅니다.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을 고민하고 있는지. 이것이 정말 고민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결정인지. 정말 중요한 결정이라면, 어떤 결정이 현명한 결정인지 다시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고작 오늘을 겨우 살아가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시간적 거리에 따라 달라집니다.
나의 수명을 최소화 했을 때와, 나의 수명을 최대화 했을 때의 결정은 흔히 전혀 다른 모습일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책임의 무게에 있습니다.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내 결정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뿐만 아니라 나를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돌아간다는 것. 

결정과 선택의 핵심적 조언은 인생 선배들로부터 나옵니다.
많은 노인들이, 아니 대부분의 노인들이, ‘당장 하고 싶은 걸 하고, 지금의 행복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조언은 ‘인간의 삶에서 다음 기회라는 것은 상상 속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당장 하고 싶은 것’과 ‘지금의 행복’이라는 표현 속에는 당연히 올바른 도덕적 기준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당장 짓고 싶은 죄를 짓고, 너를 행복하게 하는 악을 선택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이죠.

이렇게 결정의 판도를 가르는 두 가지 핵심적 기준은,
첫 번째로, 시간 또는 수명.
두 번째로, 책임, 즉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책임입니다.

인생에서의 잘못된 결정은 우리를 바로 현실의 지옥불로 던져버리기도 하지만, 바른 결정은 우리에게 두 번째, 세 번째가 될 수도 있는 새로운 삶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어떤 결정은 그만큼 우리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삶을 담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 이야기들의 주인공들 역시 우리처럼 선택과 결정을 거듭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 많은 주인공들 중에서 그야말로 막강한 결정의 천재들을 가끔 만납니다. 저는 이런 주인공들을 ‘결정적 인간’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요. 대표적인 인물로 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조르바를 꼽습니다. 이 사람의 결정이나 선택에는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의 시간적 기준은 언제나 ‘오늘’이고 ‘지금’입니다. 그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늘 ‘자신 또는 그 자신을 포함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선택합니다. 독자들은 위태로운 돛단배처럼 거칠게 흔들리는 그의 삶을 따라가며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그의 삶은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하루하루가 행복의 추구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에는 실존의 행복보다 더 중요한 가치였던 ‘체면’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것은 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체면을 실존의 행복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체면과 품위를 지키느라 실존의 행복에 잘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르바의 일상은 꿈같은 것이고, 이상적인 것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체 게바라의 삶에 대한 유명한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내일을 꿈꾸어라.’

그리고 선택에 대한 또 다른 명언이 있습니다.
‘선택이 끝난 후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밖에 없었다. 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결정 장애의 고단한 삶을 벗어날 수 있기를.
조금 더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