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묵상2019. 9. 16. 19:14

https://youtu.be/ba1_Sg5kNAc

[사랑하지 말아야 할 나이라는 게 있을까?]

현대문학의 지형을 뒤흔들었다고 평가 받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 중 하나인 윌리엄 포크너는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최고의 직업은 ‘사창가 관리인’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등장하는 포크너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면,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고, 아주 간단한 장부 정리밖에는 별로 할 것도 없으며, 한 달에 한 번 경찰에게 돈을 바치러 가면 된다. 이 장소는 일하기에 최적의 시간인 아침에는 조용하다. 또한 밤에는 예술가가 지겹지 않도록 왕성한 사교 활동이 벌어진다. 게다가 모든 종업원들은 여자이고, 사창가 관리인을 존경을 가지고 대한다.”

결국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가장 완벽한 작업실이 곧 사창가라는 이야기가 되는데요. 글쎄요...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90세가 된 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는 열두 살 때 처음 사창가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 남자는 90세가 된 지금까지 아직 싱글입니다.
이 남자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은 모두 창녀였습니다.
아마도, 단 한 번도, 깊은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기에 생의 끝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후회하며 사는 삶보다 나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결국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랑하게 된 여자 역시 바로 얼마 전부터 창녀가 되기로 결심한 여자입니다. 그녀는 이제 열네 살이 되었습니다. 이 소녀에게는 어린 동생들과 류머티즘으로 손발을 쓰지 못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이기도 합니다.

저는 소설을 개연성의 경계를 다루는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생사를 가른다고 생각하는데요. 평범한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께는 무척 낯선 것일 수도 있을 이 남자의 상황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현실적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고, 결혼했더라도 다시 혼자가 되는 사람들 역시 많아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외로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9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은 이 남자가 결혼에 굳이 애쓰지 않았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머니는 숨을 거두면서 나에게 젊을 때 백인 여자와 결혼해 적어도 아이 셋을 두라고 당부하셨다. 또한 딸아이에게는 증조할머니 때부터 물려내려 온 자신의 이름을 붙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나는 어머니의 간청을 마음에 새기고는 있었지만, 젊음에 대해 너무나 여유만만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혼은 언제 해도 절대로 늦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이 소설은 ‘백년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그의 나이 77세에 쓴 작품입니다. 삶이 인간을 삶의 깊은 곳, 즉 우리가 연륜이라고 부르는 어떤 깨달음의 경지로 끌고 가면, 그들은 늘 비슷한 주제를 떠안고 삶을 다시 숙고하기 시작합니다. 그 주제들 중 하나가 바로 ‘사랑의 한계’, 다르게 표현하자면, ’사랑과 시간의 한계’인데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 그랬고, 이 책의 모티프가 되었다고 작가 스스로 고백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랑에 경계가, 특히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시간과 나이의 경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 질문의 핵심을 주인공들의 나이에서 찾아선 안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들의 시선은 나이 그 자체보다는 ‘인간은 나이에 관계없이 언제든 사랑을 만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두 사람의 첫 만남을 묘사하는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나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수중에 남은 돈 전부, 그러니까 그녀에게 줄 돈과 내 돈을 모두 베개에 놓은 다음, 소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다른 모든 새벽녘의 사창가와 마찬가지로 그곳은 천국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이었다. 나는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도록 채소밭을 향해 나 있는 문으로 해서 밖으로 나갔다. 거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나는 아흔 살이란 나이의 무게를 느끼며 죽기 전까지 나에게 남은 밤의 시간을 하나하나 헤아리기 시작했다.’

‘서글픈 언덕’이라는 별명을 지닌 이 노인은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처음 사창가에 발을 들여놓습니다. 언제나 ‘좋아요.’라고만 대답하는 창녀들의 세상. 돈만 있다면 언제나 사랑을 줄 수 있는, 하지만 실제로는 돈이 없는 자에게도 자비를 베풀 듯 몸을 줄 수 있는 동정심을 지닌 여자들의 세상. 그곳은 어찌 보면 인간이 이루어낸 세상 중에서 가장 사랑으로 충만한 곳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랑의 그림자만 흉내 낼 뿐 진정한 사랑은 한 방울도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쾌락과 배설만 존재하는 공간일 뿐입니다.

왜 작가는 그녀들과의 추억을 슬프다고 했을까...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책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올렸던 생각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사랑 없는 욕망에 붙일 수 있는 수식어가 겨우 ‘슬프다’는 표현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픈 추억 속에는 결핍이 있고, 아쉬움이 있고, 쓴 맛 나는 고통이 있고, 그렇게 텅 비어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여백의 미와는 전혀 다른 결핍의 공허가 자리 잡고 있을 뿐입니다.

작가가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은 후에 거리의 창녀들을 인터뷰했다는 내용을 접했을 때 문득 송기원 시인이 떠올랐습니다. 송기원 씨의 작품 중에 ‘마음속 붉은 꽃잎’이라는 시집이 있지요. ‘삼학도 옐로우 하우스’라는 한 시의 제목도 떠오르구요.
송기원 시인은 창녀들의 삶에 다가가기 위해 수 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바닷가의 사창가를 찾아 그녀들과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마음속 붉은 꽃잎’과는 조금 다른 정서가 담긴 책이겠지만, 비슷한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좋은 소설 속에는 언제나 질문이 존재합니다.
이 소설 역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뒤죽박죽으로 꼬여있는 인생에서 우리는 언제 사랑을 만나는가?
언제든. 이라고 이 책은 대답합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인생의 기나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언제쯤 사랑을 만나는 것이 좋은가?
언제든. 이라고 이 책은 대답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만났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의 양에 관계없이 축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90세의 나이.
죽음이 목전에 있는데도 사랑이 전부일까요?
네. 아마도... 사람의 인생에서는 사랑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송병선 옮김. 민음사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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