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1. 23. 09:26

안녕하세요, 소설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이곳은 제가 쓴 글을 적고, 읽어드리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소개되는 글은 아직 책이 되지 못한 저의 글입니다. 굳이 장르를 분류하자면 소설이구요.

200자 원고지 천 장이 조금 넘는 분량입니다.

제목은 ‘불면인’입니다.

말 그대로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도둑처럼 찾아온 무기력으로 인해 길 위의 삶을 시작한, 거리를 집삼아 사는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주인공이 길 위에서 잠들 때마다 꾸는 꿈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의 글을 시작해보겠습니다.





[불면인]


사람들은.

사람을 안아주려 하지 않고.

노래하려 하지 않으며.

길가에 뒹구는 돌멩이 하나조차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시작

당시의 내 주변은 기분 나쁜 공기로 가득했다. 습했고, 뜨거웠고, 녹슬어 있었다. 반 지하로의 이사가 그랬고(불행인지 다행인지 쥐가 있었다), 이사 이전의 벌레 먹은 쪽방에서의 생활과 원치 않는 이별로 인한 감정의 결핍이 그랬고, 이사 이후의 갇힌 듯 폐쇄적인 생활이 그랬다. 나는 오랫동안 취직하지 않았다. 돈의 결핍은 하루하루 나를 무덤 속으로 밀어 넣었지만 나는 곧 즐기는 기분으로 그 무덤에 적응해 갔다. 짐은 점점 가벼워졌다. 잦은 이사에 이골이 날 무렵 나는 짐을 줄이며 살기로 결심했다. 책들은 헌책방에 팔려나갔고, 가구들은 재활용센터에서 친절하게 수거해갔다. 짐이 줄어들수록 방은 커졌다. 덜 가질수록 더 넓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당연히, 넓어진 방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작은 것을 원하더라도 나는 구걸하듯 그것을 손에 쥐어야만 했다. 손톱깎이처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는 공기는 호흡하기 어려웠다. 폐가 망가졌다. 하루가 다르게 기침이 늘었고, 폐포 구석구석마다 대롱대롱 걸려있는 가래 덩어리 같은 농들이 곰팡이 낀 공기를 만나 더욱 진득해지며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나는 살아있었지만 생명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때의 나를 보았다면 악전고투하는 내 영혼의 썩은 냄새에 가여움을 느끼기도 전에 구토를 일으켰을 것이다. 생명의 흔적으로 남은 마른 껍데기를 뒤집어 쓴 것 말고는 내게 사람의 자취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삶이란 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몇 년 전, 또는 그 몇 년 전, 또는 그 몇 년 전에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나를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매일 보는 거울 속의 내 얼굴마저도 생소했다. 누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사람. 거울 속에 비친 얼굴 위에 누군가 느리게 타이핑하고 있었다. ‘너는 죽어가고 있다.’ 라고. 살아 숨 쉬는 것. 가치 있는 어떤 것. 생명. 이런 것들보다는 술과 담배와 금식과 수면으로의 도피와 가끔 가슴에 와 닿는 팔고 남은 책에서 읽은 몇 줄의 문장만이 나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영혼의 밥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아직은 아니었다. 슬프게도 아니었다. 그곳까지는 여전히 너무 멀었다. 걸어야 할 길은 멀었고 나를 나락까지 인도해줄 내 두 다리는 이미 기력을 소진한 채 탈진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그저 주저앉아 마시고 취하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었다. 더 걸어야 했지만 걸을 수 없었고, 쓰러진 자리에 잠시 몇 평 땅을 빌어 신문지를 깔고 눕는 것이 최선이었다. 낙하하다가 정지해 버린 것이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내게 닥친 모든 상황이 그랬다.

‘정지’

그렇다. 멈춰버린 것이다.



눈물

나는 내가 나에게서 발현되기를 바라지 않는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슬픔에 빠지고야 말았다. 내가 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으나 무엇이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거나 빼앗기지 않는 세상의 습성에 따라 본의 아니게 나에게 주어진 것. 그러나 전에도 그랬듯 이 빌어먹을 자아 역시 곧 나에게 익숙해지고 나 역시 그것에 익숙해져서 끝내는 내 인생의 반려가 되어버리고 마는 고질적인 흡수력에 굴복하고야 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 없는 절망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절망 앞에서만큼은 힘없이 무릎을 꿇게 되고, 머리가 깨지고, 가슴이 조각나고, 결국은 몸과 마음이 아무도 주워 쓰지 않을 만큼 낡은 걸레처럼 피폐해져 끝내는 거리로 나앉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에 둘러싸인다. 어떤 행복한 시작도 결국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마는 것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는 생각 따위 역시 자위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침내 또 한 번의 눈물을 쏟게 한다. 여전히 뜨거운 눈물을 닦아낼 수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 아직은 그래도 뜨거운 눈물 흘리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뭔가를 바꿀 수 있을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으니 그래도 언젠가 한번쯤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헤진 가슴을 기워내고 무릎에 힘을 주고 다시 걸어볼까?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아무도 해주지 않은 약속을 믿거나, 또는 믿는 척하며 걸어야 하는 것이니까? 오, 하나님…

그러나 나는 때때로 내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독한 냄새 풍기는 구더기 떼를 알고 있다. 부드러운 속살로 가득 차있던 가슴에 손톱만한 구멍이 뚫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자기 집 대문 넘듯 가볍게 기어들어온 한 마리의 구더기로 시작된 흉부의 부패가 이제는 속살을 다 파먹고 내가 몰아내려고 하지 않아도 더 이상 들어찰 자리가 모자라 뚫린 구멍 밖으로 차갑고 습한 피부를 가진, 온몸으로 땅을 걷는 모양새가 가엽기보다는 오히려 구역질나는, 주름진 몸뚱어리의 벌레들을 내뱉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아는 사람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모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척 외면해 버리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 속에 어떤 더러움과 분노와 연민과 쓰레기들이 들어차 있는지를. 적어도 나만큼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행복이 불쑥불쑥 달콤한 그림자를 내비칠 때마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닐 텐데…'라고 생각했었으나 간사한 나는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이것은 내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 내 것이었던 행복은 꺼진 불 위에서는 놀지 않는 아지랑이처럼 펑 하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런 현상을 보며 우울한 신기루 같은 이런 모든 결말이 나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의 기도 때문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은 행복해선 안 된다는 기도, 행복을 맛보고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라는 기도, 늪에 빠진 채 고통 속에서 삶을 이어가라는 기도. 그리고 그들의 기도는 그들의 바람 이상으로 늘 넉넉하게 응답 받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살아서 걷고 있지만 실은 시체와 다름없을 뿐이다. 영혼이 빠져나간 육체는 신의 법칙에 따라 육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죽지 않고 걷는다. 영혼을 잃은 채로도 얼마든지. 나는 가끔 사람들을 만났고,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할 얘기가 있었고, 내 귀는 가끔 내가 만난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었으나, 나는 귀머거리처럼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였다. 누군가 나에게 던지는 '사랑한다.'는 말은 그것이 '너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한다.' 라는 말이어도 스스로는 어떤 의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외계의 소리에 다를 바 없었다. 그것은 밧줄에 목을 매단 채 몽둥이로 살이 연해지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거대한 도사견의 울부짖음처럼 구분할 수 없는 낯선 소리, 낯선 울림일 뿐이었다. 분명 나의 이런 상태는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모두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나는 내색할 기력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슬펐다. 그들도 나도 남을 믿기는커녕 자신조차 믿지 못할 상황에서 상대를 믿고, 몸을 섞지 않으면서 몸을 바치는 기분으로 서로에게 서로를 맡기고, 과정과, 과정과, 과정을 예민하게 지켜보면서도, 결과에 대해 무감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나름대로 이것은 내 인생 최초의 신뢰라고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관계의 시작 무렵에는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가 싶고, 의심하고 싶을 때도 더러 있었으나 나는 내가 아는 그 누군가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어떤 강한 짐승보다도, 사람을 만들고 짐승을 만들었을 신보다도 더 무리하게 신뢰하였다. 그들과 내가 나눈 것이 심지어 그램(g) 단위 초고가의 마약이었더라도 우리는 아마 서로를 믿지 못할 만큼 믿었을 것이다. 사람은 믿지 못할 존재이지만, 사람, 또는 사람이라는 짐승은 키워서는 안 되는 검은 머리 가진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믿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시작된 관계가 그들과 나의 인연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짧은 시간이나마 나의 온 영혼과 육신을 바쳐 믿음을 던졌던 이 무거운 신뢰는 곧 박살이 나고 말았다. 누가 이 깊은 신뢰를 벽에 내던진 것일까? 누가 이 소중한 신뢰를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일까? 누가 이 벅찬 포근함 위에 도끼질을 한 것일까? 그러나 결국은 그들도 나도 대답할 수 없었다. 우리는 가끔 서로가 답을 가졌다고 의심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오해였을 뿐만 아니라 답은 고사하고 오히려 양쪽 모두 말끔히 비어있기 일쑤였다. 우리는 버려진 깡통 같은 존재였다. 그들과 나는 비어 있었고, 더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건 이미 우리의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난 뒤였다. 나는 늘 이렇게 결과에 연연하였고, 눈물로 마감할 때가 많았다.

그때의 내 신뢰의 주인공이었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었기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라는 것처럼 쉬운 게 없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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