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장은 이른 아침부터 나를 깨웠다. 갈 곳이 있다고 했다. 먼 산책을 다녀온 후라 별로 외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가 너무나도 고독해보였던 탓에 나는 잠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따뜻한 빵과 스프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빵은 겉은 살짝 타고, 속은 덜 익어서 조금 실패작이었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스프는 양파와 버섯이 들어간 크림 스프였다. 노파는 식사 내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노파가 건네는 미소의 의미를 알고 싶었지만 파악하기 어려웠다. 나 역시 답례로 노파에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선장의 식사는 몹시 느렸다. 그는 평소에도 아주 느리게 식사를 했는데 배를 타면 여유 있게 먹기가 어렵기 때문에 육지에서는 무얼 먹든 일부러 천천히 먹는다고 했다. 지난밤에는 광풍과 굵은 빗줄기가 몰아쳤다. 빗소리를 들으며 책읽기에 좋은 밤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어디선가 깨어있어서 책을 읽으며 밤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부러웠다. 거친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주 짧은 꿈을 꾸었다. 도시에 해일이 덮쳤다. 해면은 솟아오른 채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사람들은 대피했고, 도시는 텅 비어버렸다. 바다는 도시의 모든 것을 부식시켰고, 인간의 흔적들을 부숴놓았다. 해면이 가라앉고 도시가 있던 자리가 드러났을 때, 사람들은 보았다. 아주 거대한 사막을. 바다가 도시를 사막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도시를 고향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사막에 남아 삶을 꾸려나갔다. 나도 그중의 하나였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노크 소리를 들었다. 선장이 내 방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시는 여전히 건재했고, 노파는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선장에게 어디에 볼일이 있는지 물었지만 선장은 입을 꾹 다문 채 대답해주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집을 나섰다. 비가 많이 내렸지만 바람은 다행히 잠잠했다. 골목의 아침은 온갖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했다. 밥 냄새, 스프 냄새, 그 사이로 가끔 고기 굽는 냄새도 풍겨왔다. 아침을 먹고나왔는데도 배가 고팠다. 우리는 침을 삼키고, 입맛을 다시며 골목을 걸었다. 골목을 걷는 동안 우리는 노파의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너무 싱겁다는 둥, 국물에 비해 건더기가 너무 많다는 둥, 고기를 너무 바짝 익힌다는 둥… 고기나 생선 굽는 냄새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배를 쥐어짜며 괴로워했다. 골목 곳곳마다 빗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우리는 용암 위를 걷는 곰처럼 물웅덩이를 피해 펄쩍펄쩍 뛰며 지그재그로 걸었다. 바람은 매의 비행처럼 느리고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산책하듯 항구를 향해 걸었다. 선장은 일부러 돌아가는 길을 고르기도 했다. 바람이 잠들었음에도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선장은 내게 호텔 카페를 들러보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호텔과 카페 안에 갇혀있을 것이고, 카페 주인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을 것이다. 그곳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감옥이었고,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한 곳이었다. 선창가에 닿은 우리는 선장의 배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다. 선장은 내게 배에 오르라는 눈짓을 했다. 선장은 배의 이곳저곳을 꼼꼼히 둘러보았다. 그는 고기창고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뜰채로 몇 마리의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저녁거리였다. 창고 안에는 꽤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선장은 양수기 모터에 시동을 걸고 바닷물을 끌어올려 창고 안에 물을 채웠다. 선장의 배는 작았다. 그의 배는 참치처럼 큰 물고기들이 아니라, 명태나 고등어처럼 작은 고기를 낚는 배였다. 선장은 이 배가 열 명 남짓의 선원들이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넉넉한 고기를 잡아오는 배라며 자랑했다. 통조림 공장은 어부들에게 고기값을 잘 쳐주는 편이었다. 대신 그들의 뱃일은 그들이 죽음에 닿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노동이었다. 숨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선장에게 뱃일이 지겹지 않느냐고 물었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선장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일일수록 숭고하다’고 대답했다. 예를 들면, 숨을 쉬는 일이나, 육체의 보존을 위해 밥을 먹는 일 같은 것. 그 모든 것이 영혼을 담고 있는 육신을 단단히 만드는 일이며, 그 외에도 영혼을 보호하는 것과 이어진 모든 일들이 숭고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선장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장의 말대로라면 밥을 벌기 위한 모든 수고가 영혼을 가꾸기 위한 모든 수고만큼 숭고한 일이었다. 선장은 조만간 시작될지도 모를 조업을 위해 엔진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선장은 내게 생선 꾸러미를 들려주며 먼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생선을 들고 선창 위로 올라섰다. 잠시 후 선장의 배가 우렁찬 엔진소리를 울리며 연기를 내뿜었다. 서서히 바다 쪽으로 후진한 배는 기수를 돌려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배의 이름은 도리스(Doris)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Oceanus)의 딸, 도리스. 바다의 딸….


떠나라, 배여.

끝나지 않을 바다를 영원히 달릴 것처럼,

멀리 떠나라.

이 드넓은 대양이 너에게만은 좁디좁구나.


떠나라, 배여.

마지막 항해를 떠나는 이처럼 비장하게,

돌아오지 못할 바다를 향해 돌진하듯 엄숙하게,

떠나라, 배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약속한 자처럼,

멀리 떠나라, 배여.


바람이 잠에서 깨어났고, 빗방울이 사선을 긋기 시작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바람의 방향을 살폈다. 서풍… 나는 발길을 돌려 항구를 향해 걸었다. 도리스 호가 멀리까지 나간다면 풍랑을 만날 수도 있었다. 바람이 바람 위로, 그 바람이 또 그 바람 위로 조금씩 무게를 더해갔다. 깡통 몇 개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리 위를 굴렀다. 상점들의 차양이 펄럭였다. 선창가 앞에 다다랐으나 선장의 배는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 방향으로는 시선을 돌리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대기는 이미 비와 바람의 세상이었다. 나는 관제소를 떠올렸다. 어쩌면 선장과 무선통신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을 돌리기도 전에 익숙한 울림이 해무를 뚫었다. 나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도리스 호였다. 배는 아주 느리게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휴우…… 선장은 능숙하게 배를 제자리에 세우고 닻을 내렸다. 선장은 조종실에서 나와 배로 오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선장을 따라 조종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마주보고 앉았다. 선장은 버너에 불을 켜고 물주전자를 올려놓았다.

“멀리 나가신 줄 알고 걱정했습니다.”

“나는 갓난아기가 아닐세.”

선장의 얼굴은 바짝 굳어있었다. 선장이 내게 머그를 내밀었다. 익숙한 향이었다.

“이렇게 냄비 끓듯 하는 날씨라면 조업을 나가는 건 위험해.”

“괜찮은 것 같으면 나가려고 하신 겁니까?”

“물론이지. 나는 그물을 끌어올리는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배가 흔들렸다. 뱃사람이라면 아마 이 불규칙한 흔들림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선장의 말을 듣고, 나는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생각해보았다. 글쎄…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 사람인가. 선장과 노파를 만나고 나서, 나는 참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봐야 할 것도, 느껴야 할 것도, 들어야 할 것도 많았다. 세상을 알기에는 세월이 부족했노라고 변명할 수 있을 만큼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세상은 고사하고 나 자신도 잘 모른다니. 선장은 조종실 서랍을 열고 담배를 꺼냈다. 배의 키를 놓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한 대씩 태운다고 했다.

“거대한 파도와 마주 섰을 때 어떤 기분인지 아나?”

짐작할 수 없었다. 나라면 그대로 얼어버릴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지.”

아무것도….

“나는 담배를 한 대 물고, 눈을 감고, 키를 손에서 놓아버리네.”

그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바다의 딸을 바다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