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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42 . 완벽한 암흑 속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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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사람들은 빛을 얻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체온과 동굴 안의 온기를 유지할 목적으로만 불을 피웠다. 그들의 옷은 다른 사막 사람들의 옷보다 두꺼웠다. 겨울이 긴 탓이었다. 동굴은 초록의 산 계곡 반대편에 뚫려있던 깊고 높은 동굴이었다. 동굴은 망각의 강 상류를 넘어 머나먼 북쪽을 향해 날아가 떨어졌다. 풍요의 대지였을 때부터 동굴 안에 살던 사람들이 그대로 동굴 속에 살아남았다. 사선으로 땅에 박히듯 떨어진 탓에 동굴로 들어갈 때는 기어 내려가야 했고, 올라올 때는 기어 올라와야 했다. 그들은 일 년의 반 이상을 불을 때며 살았다. 차가운 계절이 오고 땅에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눈을 모아 동굴 끝의 웅덩이에 쌓아두었다. 쌓아둔 눈은 느리게 녹았고, 녹은 눈은 그들의 식수가 되어주었다. 동굴은 깊고 어두웠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오려면 빛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했다. 보통 동굴의 끝에서 밖으로 나오는 데는 하루가 걸렸고, 들어가는 데는 한 나절이 걸렸다. 들어갈 때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빛에 의지하지 않고 걸어야했기 때문에 동굴 바닥으로 이어진 길을 외우는 나이 많은 노인들 중 하나가 대열의 선두에 섰다. 대지에 해가 비추는 동안만 볼 수 있는 미명은 별처럼 작고 아름다웠다. 동굴 안은 매일이 밤이었으나 그들은 밤을 둘로 나누어 하나는 별이 뜨는 밤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별이 뜨지 않는 밤이라고 불렀다. 별이 뜨는 밤에는 오직 하나의 별만이 하늘을 밝혔고, 그 별은 한 자리에 붙박여 움직일 줄을 몰랐다. 별은 희미할 때도 있었고, 밝을 때도 있었고, 뜨지 않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매일 대화를 나눴다. 대화는 그들에게 유일한 놀이였다. 잠에서 일찍 깨어난 사람들은 얼굴을 비벼 남은 잠을 씻어낸 후 삼삼오오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동화나 전설 같은 것이어서 이야기를 잘 꾸며내는 사람 옆에는 늘 아이들이 모여들곤 했다. 별이 오래 뜨는 시기가 오면 모두가 동굴 입구에서 가까운 언덕배기로 자리를 옮겼다. 하절기는 넉넉한 비 덕분에 물이 풍성했고, 사냥하기에도 좋았다. 그들은 여름에 사냥한 짐승의 고깃덩어리를 말려 겨울을 위한 식량을 비축했다. 노인들은 여름이 와도 동굴입구로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동굴 깊은 곳에 남아 부족의 평안을 기원하고 명상으로 시간을 보내며 지냈다. 그들은 일 년 내내 눈을 감고 살았다. 동굴의 사람들은 청각이 발달한 탓에 눈을 감은 채로도 사냥을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눈을 떴을 때보다 눈을 감았을 때 사냥감의 움직임을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그들의 고향이었기에 그들에게는 빛보다 어둠이 더욱 친근했다. 그들은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암흑, 즉 완벽한 암흑으로부터 얻었다. 어둠은 어머니였고, 빛은 잠시 머무는 객이었다. 가끔 다른 부족의 사람들이 오거나, 동굴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어둠에 적응하고 어둠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긴 빛은 절망이었다. 동굴 속에는 모난 돌이 없었다. 바위는 모두 둥근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짙은 녹색에 가까운 바위의 색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둥근 바위 덕분에 어둠의 길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이 부딪치거나 뒹굴어도 크게 다치는 일이 없었다. 동굴의 깊숙한 벽 위에는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중에는 거대한 물의 그림도 있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그린 거대한 물은 아마도 초원의 사막에 존재하는 큰 호수를 그린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호수는 멀리 사라졌고 이제 그들은 비와 눈을 마시고 살았다. 그들은 고요 속에서 자주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시작되면 동굴 안은 잔잔한 메아리를 닮은 소리의 울림으로 가득했다.


암흑은 빛을 감싸는 보자기

암흑은 소리를 울리는 커다란 바위

암흑은 영혼의 안식처

암흑은 우리를 어머니의 품으로 데려가는 탯줄


그들은 그들이 아는 두 계절, 즉 겨울과 여름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기도 했다.


만물은 여름의 절정에서 푸르게 생동하고,

영혼은 겨울의 어둠 속에 짙게 익어가네.

여름은 대기와 대지를 풍요로 끌어안고,

겨울은 가난한 영혼을 깊이 살찌우네.


그들의 노래는 매우 느리고 구슬펐다. 누군가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한 곡조의 멜로디를 모두가 같은 소리로 이어 불렀다. 소리는 둥근 바위를 매만지며 끊임없이 이어졌고, 가늘게 이어진 소리는 바위에서 바위를 건너며 잔잔한 울림이 되었다. 동굴 천장에 머물던 여음이, 따라오는 음을 만나 화음을 이루고, 동굴 안을 맴돌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도로 돌아왔다. 그들의 소리는 겸손하고 평화로웠다. 어두운 동굴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성난 맹수의 화도 가라앉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노래에 감동한 태양은 자신의 빛을 모으고 또 모아 작은 별을 만들고 그 별을 동굴 속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노래가 끝나고 난 후에도 소리의 여운은 오래 남아 동굴 안을 떠돌았다. 그리고 곧 절정의 순간이 다가왔다. 날 때부터 예민하게 청각을 다듬어온 그들의 귀에는 보통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아주 작고 미세한 울림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동굴 안에 숨 쉬고 있었고, 사람들은 소리의 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마지막 한 조각의 울림마저 동굴의 벽 속으로 스며들고 나면 궁극의 고요가 다가왔다. 깊고 깊은 고요. 짙은 어둠 속의 고요는 곧 명상으로 이어졌다. 모두가 각자의 명상에 잠겼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깊은 고요의 바닥에서 그들은 고요의 저편으로 여정을 이어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소리 없는 침묵의 천국을 만났다. 깊은 평화 속에 잠겼다. 고요의 탐험은 하루 이상 이어질 때가 많았다. 그들은 잠자듯 고요 속에 빠지고 잠에서 깨어나듯 천천히 동굴 속의 자신 안으로 돌아왔다. 동굴 속은 깊고 추워서 온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늘 불을 지펴두곤 했지만 긴 명상 중에는 불을 꺼둘 때도 있었다. 불이 일렁이는 소리조차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동굴 속 사람들은 빛을 통해 사물이나 사람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물의 색과 사람의 생김새에 몹시 둔했다. 그들이 느끼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오직 소리였다. 그들은 사물과 생물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아주 느린 움직임조차도 소리로 알아낼 수 있었다. 만약 그들 앞에 세상의 모든 꽃을 가져다 놓고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다운지를 묻는다면 그들은 꽃의 모양이나 색이 아니라, 꽃잎이 떨리는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선택할 것이다.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도 생김새를 짐작할 수 있었고,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소리만 듣고도 머리카락의 두께를 맞출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사람의 음성은, 그 사람의 타고난 성격과, 후천적으로 변한 성격, 영혼의 상태, 정직함, 순수함, 감성, 지성, 교활함, 교만함, 자신감 등 인간이 가진 모든 지적이며 감성적인 부분과, 영혼과 육체의 현재까지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로 명상을 대신할 만큼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당연히 노랫소리가 고운 사람을 좋아했다. 그들은 노래와 노래 후의 명상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이었다. 계절에 관한 노래뿐 아니라 사냥을 위해 동굴을 떠나는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노래, 동굴의 평안을 위한 기원, 겨울 내내 부르는 따뜻한 여름을 기다리는 노래, 병자의 회복을 기원하는 노래까지 그들은 모든 소원을 노래로 기도했다. 동굴 속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피부가 검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 년 중 햇볕을 쬐는 시간이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 모두 검은 빛깔의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태동을 이야기할 때, 풍요의 대지에 자리 잡았던 사람들 중 피부가 까만 사람들이 스스로를 창피하게 여겨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가 살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들은 어둠을 지나치게 사랑하여 살까지 검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둠은 사랑했을지라도 자신들의 피부색까지 사랑하지는 않았다. 하절기가 시작되면 그들 모두가 간절히 비를 기다렸다. 우박처럼 거칠고, 태풍처럼 거센 비를 기다리며 노래로 기도했다. 여름 동안에는 적어도 두세 번 정도의 큰 비가 내렸고, 큰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모두 동굴 밖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몸을 닦았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비고 몸을 비비며 살이 손바닥처럼 하얘지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하얘지는 것은 손바닥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