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묵상2020. 2. 28. 22:40

https://youtu.be/NaglTB4h5RU

 

저는 소설 쓰는 작업을 사람들의 인생에 들어가 보는 일로 정의하는데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상상 속에서 살아보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악스럽기도 하고, 가끔은 경이롭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노숙인의 삶을 소설로 옮기던 시절에는 우울증이 오래 지속됐던 경험이 있구요.

하지만 오늘은 소설이 아니라 시와 시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한페이지독서의 제목은 죽음 너머를 향해 울리는 노래입니다.

 

저에게는 두 사람의 좋은 스승이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외국인이시고,

두 분 모두 어린 시절에 책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한 분은 그리스의 크레타 출신이시고, 다른 한 분은 이탈리아 출신이신데요.

알베르 카뮈와 노벨문학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남긴 책 한 권 없이 그 분의 자취를 좇는 글을 숱하게 쓰게 만드신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가 바로 그 두 분입니다.

저는 이 두 분을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으로서 죽음 너머에 있는 초월자의 세상에 닿으려고 애썼던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발목이 잡힌 채로 살면서 죽음 너머의 세상을 그리워했던 사람들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 뿐이기에 초월의 세상에 쉽게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투쟁이었고, 절규였습니다.

 

저는 오늘 이 두 분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초월의 세계에 접근했던 한 인물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입니다.

카잔차키스가 신을 만나는 방법이 투쟁이었다면, 성 프란시스가 신을 만나는 방법이 절규였다면, 특이하게도 타고르가 신을 만나는 방법은 노래였습니다.

 

그는 그의 지인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삶을 받았을 때,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한 줄기의 갈대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갈대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재주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고, 일도 불완전하게 했지만, 나의 갈대를 갖고 세상의 조용한 한 구석에서 그 피리를 불었습니다.’

 

타고르가 카잔차키스나 성 프란시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이미 신을 알고 있는 자 같아 보인다는 점입니다.

카잔차키스와 성 프란시스가 신을 만나기 위한 목마름에 젖어 있다면, 타고르는 이미 신을 알고 있는 자로서의 여유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타고르 자신이 신을 향해 노래할 수 있는 영적인 여유를 주는 것 같아 보입니다. 이것은 참 신기한 현상입니다.

 

그럼 이제, 타고르의 첫 노래를 들어보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끝없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기쁨입니다.

이 부서지기 쉬운 그릇을 당신은 비우고 또 비워,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채웁니다.

이 작은 갈대 피리를 언덕과 골짜기로 가지고 다니며

당신은 그것에 끝없이 새로운 곡조를 불어넣습니다.

당신의 불멸의 손길이 닿으면 내 작은 가슴은 기쁨에 넘쳐 한계를 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들을 외칩니다.

당신이 주는 무한한 선물을 나는 이 작은 두 손으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영원의 시간이 흘러도 당신은 여전히 채워주고 있으며,

내게는 아직 채울 자리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하는 영혼을 지녔던 타고르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여정은 길고

고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신에게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타고르는 절대자를 향한 여정의 고단함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 길을 돌아가야 하며,

가장 단순한 곡조에 이르기 위해 가장 복잡한 시련을 거쳐야만 합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집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침내 가장 깊은 성소에 도달하기 위해 모든 바깥세상을 헤매 다녀야 합니다.’

 

타고르가 일생을 바쳤던 구도자로서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거렁뱅이의 삶으로 비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인간적 욕구와 욕심을 배제하기 위해 스스로를 세상의 끈에서 끊으려고 애쓰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구도자들에게는 자유가 필요하고, 자유를 통해 얻은 시간을 쏟아서 신을 향해 마음을 모읍니다. 타고르가 일생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에 읽어드릴 시가 그 대답을 들려줍니다.

 

나는 오직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침내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기기 위해.

내가 언제나 늦는 것은 이 때문이며,

게으르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법과 규칙을 가지고 와서 나를 단단히 묶으려 합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들을 피해 달아납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직 사랑을 기다리고 있기에.

마침내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기기 위해.‘

 

저는 자주, 먼지처럼 흩어지는 마음을 모으기 위해 애씁니다. 그 애쓰는 과정 중에 기도가 있습니다. 저는 자주, 많이 기도하며 삽니다.

저의 젊은 날의 기도는 대부분 넋두리였습니다, 세상과 나, 사람들과 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죽음 너머를 향한 저의 마음은 체념이었습니다. 모르는 세상에 대한 마음이 체념을 뛰어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백 년 인생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은 감사의 기도가 많습니다. 제가 매일 누리며 사는 평화와 일상적인 노동의 고단함과 매일매일 아주 예민해야만 느낄 수 있는 작지만 고마운 일들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의 노래는 어떻습니까?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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