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대지 / 부제 - 기억을 마시는 강


* - 주인공 ‘나’의 이야기

** - 사막과 강의 이야기



* 시작


긴 시간 동안 망각을 소원해왔다. 원인은 내가 사랑한 두 사람에게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에 있다. 사랑은 대부분 아름다우나 세상을 흐르는 모든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불행히도 나의 것 역시 그러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영혼의 흥분과 떨림으로 행복에 겨워하지만 그 많은 사랑의 불꽃들 중 대다수가 완성된 행복에 닿지 못하고 추락한다. 내 사랑은 시작부터 그랬다. 미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틀어져있었다. 행복은 잠시였고, 삶은 수렁에 빠졌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래, 세상에 영원한 고통은 없을 것이라 자위하며 해방을 기다렸다. 끝난다는 확신만 있다면 견뎌낼 희망은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때로는 불행히도 삶과 수명을 함께하는 고통을 만나기도 한다. 죽음으로서만 마감되는 고통. 그런 종류의 고통은 고통 받는 자를 고통의 영원성에 가둔 채 지옥처럼 끝나지 않는 고통의 무한함에 무력감을 느끼게 하고, 끝내는 영혼의 끄트머리에 붙은 마지막 한 뼘의 그림자마저 남김없이 그 앞에 굴복시킨다. 고통 받는 자가 소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고통 받는 자는 고열과 냉기에 달구어진 텅 빈 대지 한가운데에 벌거벗은 채 서있고, 고통은 극지의 광기어린 바람처럼 모든 곳으로부터 날카롭게 불어온다. 삶은 길고 고통스런 여정이자 고통 그 자체다. 인생이 무언가 다른 것, 무언가 좋은 것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처럼 활자로만 존재하는 언어로 사라져갈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그럴 리 없는, 선물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내 인생이 백 번쯤 다시 시작된다 해도 이런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사람들은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아마도 수억만 년 굴절되고 회전하는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내 생애에서 뿐만 아니라 암흑의 우주 속을 흐르는 영원의 시간 속에 단 한 번뿐인 사람들인 것이다.


정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내 어머니의 얼굴을 처음 본 그날 이미 어머니와 사랑에 빠져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죄는 눈을 통해 들어오고, 욕망은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마음을 숨기는데 성공했지만, 어른이 되고, 아내를 맞은 후로 더 이상 나 자신으로는 살 수 없는 가면 너머의 방에 갇히고 말았다. 사랑은 고사하고, 겨우 나 자신이라는 하찮은 존재의 무게조차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잊고 싶었다. 나는 내가 정확히 어디까지를 잊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저 잊고 싶었다. 모든 것을. 인연을, 사랑을, 어머니를, 아내를, 내가 살아온 삶과, 살게 될 삶과,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될 인생 전부와, 죽음까지를. 내 존재에 대한 책임의 부재 속에 세상에 던져진 고아로서의 운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그리하여 이 글은, 망각을 소원해온 나 자신과, 기억의 소멸을 선물하는 대지를 향한 나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이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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