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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2 .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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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태양과 바람이었다.


풍화. 단 한줌의 여과도 없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태양은 바위가 바스러질 정도로 대지를 바짝 건조시키고, 거친 바람은 태양이 말려놓은 바위 껍질을 긁어내어 모래로 바꾸어놓는다. 바람에 쓸리는 모래알은 거대한 바위의 발목 이곳저곳에 구멍을 뚫고 구멍과 구멍 사이에 기둥을 남긴다. 바람은 해일처럼 모래를 휩쓸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바위기둥 뒤에 숨어 바람이 잠들기를 기다린다. 대기의 주인은 불같은 태양과, 칼날 같은 바람과, 차가운 비의 순서로 바뀐다. 태양과 바람과 비가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은 밤뿐이나 밤은 고작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의 사람들은 육신을 입은 인간이지만 짐승보다는 영혼에 가깝다. 태양과 바람은 돌만 깎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육신 또한 풍화시키고 살 껍질에 눌어붙은 가증스러움마저 녹여버린다. 대부분의 인간의 삶에서는 영혼이 육체의 욕심을 이겨내지 못하지만, 이곳, 태양과 바람과 비의 땅에서는 육신과 영혼이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영혼이 승리를 거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바위 지붕 바깥에 그릇들을 내놓는다. 그릇들이 빗물로 가득 차면 바위 지붕 아래로 도로 들여놓는다. 그들은 그렇게 얻은 물로 삶을 이어간다. 만약 이 땅에 비가 영원히 그친다면 이들은 아마도 비가 내리는 땅을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할 것이다. 이곳에 닿기 위해 그들의 조상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든지, 혹은 그들이 개척한 새 길을 따라 끝 모를 여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청명한 하늘과 우윳빛 대지가 서로 만난다. 그 이상하리만치 오묘한 두 색의 조화는 마치 고독한 두 영혼이 만나 서로의 고독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처럼 고요하고 슬프다. 여자들은 거친 보라색 입술과 창백하지만 빛나는 피부를 가졌다. 그들의 얼굴은 붉고 얼룩져있다. 이슬처럼 투명한 눈 위에 먹으로 찍어놓은 듯 맑은 눈동자는 보는 이의 마음마저도 정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태양과 바람이 지배하는 모래사막을 지나고 나면 새로운 사막이 나온다. 그 사막은 모래로 뒤덮인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녹색으로 가득 찬 초원의 사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