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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3 . 비 내리는 항구

*

벌써 보름이 지났다. 폭풍우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배는 승객들을 오래 기다리게 했다. 긴 기다림은 때로는 독이 된다. 사람들은 술과 커피와 침묵을 친구 삼아 더딘 시간 속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들은 종일 좁은 카페에 모여 침묵을 연습했다. 비바람의 비명 소리가 거리를 감아쥐고 있었다. 시간은 고인 강물처럼 느리게 흘렀다. 사람들의 몸에서 피어오른 땀과 입김으로 유리마다 김이 서렸다. 스무 개 남짓의 테이블이 놓인 카페테리아에 백여 명이 넘는 인간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연인들은 의자 하나를 반으로 갈라 앉거나 연인의 무릎 위에 앉기도 했고,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에고치처럼 벽마다 들러붙어 서있었다. 사람들은 산소 호흡기에 매달린 식물인간처럼 호흡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일행이 있는 사람들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마도 얘깃거리가 바닥난 탓일 것이다. 기다림과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후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은 사람들을 지치게 했고, 입술과 혀에서 말을 빼앗아갔다. 카페주인은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피사체는 기다림에 지친 고갈된 영혼들이 한 칸의 방 안에 고여 있는 카페풍경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집에서 갓 옷을 차려입고 나온 전쟁난민을 연상시켰다. 사람들의 표정은 기기묘묘했다. 사진을 프린트해놓고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의 얼굴이 몇이나 될까를 맞춰보는 게임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주인이 사진을 찍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은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배를 타는 쪽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은 거대한 벌떼처럼 윙윙 소리를 내며 거리를 배회했고, 비는 창을 부술 듯 거세게 몰아쳤다. 거리에서는 줄 풀린 개나 도둑고양이 따위의 기생동물들이 자취를 감췄다. 아마도 물이 끊긴 하수구나 처마가 넓은 여염집 한구석에서 장기 피신 중일 것이다. 길 여기저기에 도랑 크기의 물길이 생겼다. 콸콸콸콸 육중한 소리를 내며 흐르던 빗물은 곧 개울만해지고, 작은 강 너비로 늘어났다가 비가 잦아들면 다시 작은 도랑으로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무얼 먹고 지내는 걸까. 자살모임을 연상시키는 이 군중은 마치 굶어죽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끼니를 등한시했다. 그저께 아침에 카페에서 본 얼굴이 오늘 오후에는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비적비적 말라갔다. 현관 유리문에 기대서서 독주를 홀짝거리던 한 노인의 입술에서 독백이 흘러나왔다. “홍수…. 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넘치지 않아.” 노인은 비라도 맞고 들어온 듯 축축한 얼굴이었고, 카페 안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축축했지만 비를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든 불길한 습기가 사람들의 호흡과 살갗에서 흘러나왔다. 카페 안은 난로 위에 놓인 물주전자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이 도시는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강수량을 자랑하는 도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작은 호텔 카페가 발 묶인 여행객들로 홍수를 이룰 거라는 정보는 여행안내책자 어디에도 없었다. 저녁이 되면 화장실은 몇 달은 치우지 않은 마구간처럼 더러워졌다. 카페주인은 열심히 새 필름을 갈아 끼우고 셔터를 눌렀다. 필름 커버에서 언뜻 일포드(Ilford)를 읽은 것 같았다. 흑백을 찍는구나 짐작했다. 살인적인 무료함에 점령당한 얼굴들은 아마도 낯설고 그럴듯한 작품이 될 것이다. ‘염세주의’라는 타이틀로 사진전을 열어도 좋을 것이다. 제빙기는 종일 돌아갔고 30분마다 얼음을 쏟아냈다. 사람들은 커피 두어 잔과 얼음, 또는 싸구려 데낄라 한 병과 얼음의 조합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냄새는 고약하게 변해갔다. 서너 명이 흘리는 샤넬 향 정도로는 아흔여섯 명이 뿜어내는 쉰내와 고린내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카페는 인간들의 거름냄새로 진동했다. 그것은 흡사 채소시장의 배추 썩는 냄새나 생선시장의 내장 썩는 냄새와 닮아있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주머니와 지갑에서 배표를 꺼내보곤 했다. 목적지에 다녀와서 여행의 여운을 되새기고 있어야 할 시간에 지나버린 날짜마저 벗겨질 지경이 된 배표를 사람들은 쉬지 않고 주무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뇌는 지난 며칠 동안 자리잡아버린 마른 이마의 주름살처럼 쪼글쪼글해졌을 것이다. 세상은 온통 흑백이었는데도 사람들의 눈동자는 선명한 충혈로 붉게 빛났다. 항구를 덮치는 파도는 일렬로 세워놓은 높이뛰기 선수들처럼 연달아 뛰어오르며 산사태처럼 방파제 위로 부서져 내렸다. 이곳에 온 이후로 수평선을 보았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삼층 건물 높이만큼의 파도가 솟아오를 때는 거리 위에 물고기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닐 때도 있었다. 방파제 아래에 생선두릅처럼 한 줄로 나란히 엮인 고기잡이배들은 자기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치열하게 좌우의 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긴 불면에 잠자는 법마저 잊은 사람들은 어둠과 빛이 만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봇물처럼 카페로 흘러내려왔다. 객실을 등지고 굳이 카페로 내려오는 이유는 객실의 냉기 때문이었다. 호텔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스팀을 틀지 않았다. 주인은 종일 가뇽의 모놀로그를 틀었다. 가뇽의 선율은 사람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나는 비가 잦아드는 날마다 부둣가에 나가 고기잡이배를 물색해보았지만 선장들은 배가 뒤집힐 거라며 그런 식의 자살은 바다에 쓰레기를 뿌리는 짓과 다를 바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 후로도 또 세기 귀찮을 만큼의 날들이 지나간 후의 어느 날이었다. 비바람이 멈춘 이른 아침에 나는 부두로 산책을 나섰다. 물안개인지 이슬비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무거운 솜이불처럼 대기를 뒤덮고 있었다. 모처럼의 산책에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부둣가에는 나 말고도 두어 명이 더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굳어서 기둥이라도 된 듯 미동 없이 바다만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무얼 보고 계십니까?”

“바다.”

그가 마른 음성으로 대답했다.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보이지 않아도 저기에 무엇이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남자에게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향의 독기로 보아 분명히 사십 도가 넘는 독주일 것이다. 방파제 위에는 갈매기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안개샤워를 즐기고 있었다. 이 남자는 아마도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거리에 물고기를 쏟아놓을 때를 기다리는 모양이지만 오늘은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을 모양입니다.”

“그래 보이는군.”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은 여전히 바다에 꽂혀있었다.

“배를 기다리십니까?”

“배가 나갈 때를 기다리네.”

남자는 긴 숨을 몇 번에 나누어 내뱉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부두 안의 배들이 정박해있는 자리를 가리켰다. 말을 기다렸으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갈매기들을 쳐다보았다. 지난 며칠 넉넉히 배를 채운 탓인지 모두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다. 가끔 돌풍 같은 바람이 방파제를 때릴 때면 우르르 자리에서 떠올랐다가 바람이 지날 때를 기다려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후,

“배들이 보이는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줄의 첫 번째 배가 바로 내 배일세.”

남자는 최후로 부두에 들어와 정박한 마지막 배의 주인이자 선장이었다.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지. 나는 바다가 고요해지기 전에 누구보다 먼저 바다로 나갈 생각이네.”

나는 그제야 남자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말랐지만 건장한 체구였다. 그의 얼굴과 몸이 그가 오랜 세월 바다와 싸워온 베테랑 선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굵고 짧은 손가락과 두툼한 손바닥은 마치 사자의 앞발처럼 강인해보였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사막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데려다주면 된다. 저 바다 건너의 사막. 내가 꼭 밟아야할 충만한 모래의 땅.

“저도 바다에 나가야합니다.”

“바다를 건널 생각인가?”

그가 물었다.

“사막에 가야합니다.”

남자의 입술 근육이 씰룩거렸다.

“괜한 짓일세. 그곳은 사람이 살 곳이 아니야.”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곳의 사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특이한 젊은이로군.”

남자는 긴 호흡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혹시 저를 데려다주실 수 있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선원들 외에 다른 사람은 내 배에 태우지 않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뱃사람이 아닌 존재는 우리 모두를 위험하게 하지.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야.”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고기를 잡아야하네. 나는 선원 외에는 아무도 내 배에 태우지 않아.”

누구에게나 각자의 징크스가 있다. 사람은 여간해서는 자진해서 무덤으로 들어가지는 않는 법이다. 감각과 경험의 법칙을 묵묵히 인정하고 안전과 평화와 만선의 기쁨을 기다리는 것이 삶의 지혜일 것이다. 시체를 건져 올리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이 고기잡이배와 선원의 본업인 것이다. 그리고 여객선에 익숙한 여행객이 널뛰듯 흔들리는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도 무리일 뿐만 아니라,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 역시 선원들의 몫일 테니 사람을 싣는다는 것이 단지 사람만을 싣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배 타는 일에 자신이 있다고 우겨도 선장은 듣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요즘 같은 날씨라면 뱃일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위험한 바다임에 틀림없다. 여행객은 가장 적절하지 못한 손님인 것이다. 바다에서는 야수의 본성을 가진 자가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가장 거친 자, 짐승의 아가리처럼 덤벼드는 파도에 더 거칠게 대들 수 있는 자만이 선창을 가득 채워 부두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써야하고, 주방장은 요리를 해야 하고, 도축업자는 짐승을 잡아야 하고, 흙에서 난 인간은 육지를 밟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화는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찾아오는 법이다. 정해진 질서를 지켜야 한다. 자신의 운을 과신해선 안 된다. 뿌리내린 곳을 떠나면 어디에 머물든 이방인일 뿐이다. 안개가 외투를 뚫고 들어와 살과 옷감의 틈에 자리를 잡자마자 곧 몸이 얼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에 부둣가에 가만히 서서 망부석인양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이른 출항을 기다리는 성질 급한 뱃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일이다. 나는 카페로 돌아가기로 했다. 외투 깃을 여미고 등을 돌리는데 선장이 특유의 마른 음성으로 말했다.

“사막에는 가지 않는 게 좋아. 그곳은 산 것을 위한 땅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