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석유곤로를 닮은 작은 난로와 주전자를 하나 샀다. 나의 육감이 맞는다면, 이 폭풍우는 적어도 반 년 안에는 그치지 않을 것이므로 늘어진 시간만큼의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는 살림살이가 필요했다. 몇 종류의 차와 커피도 구입했다. 난로에는 등유를 넣어야했다. 나는 발코니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개비에 잠긴 도시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아 보였다. 가시거리의 의미가 부질없는 풍경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였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로비로 내려가 호텔 직원에게 가까운 주유소를 물었다. 그는 아주 가깝다는 단서를 붙이고는 호텔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다고 했다. 나는 10분 후에야 직원이 그려준 약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아주 가까운,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주유소의 약도를 그리는데 왜 10분이나 걸린 걸까? 약도를 들여다보았다. 종이 속의 그림은 약도라기보다는 미로에 가까웠다. 과연 내가 주유소를 찾을 수는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비가 잦은 곳이다 보니 호텔로비에는 투숙객을 위한 우산이 늘 비치되어있었다. 우산은 매우 커서 어린아이 다섯이 써도 충분할 크기였다. 대로에서 첫 번째 골목을 제대로 찾아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직원은 강조했다. 하지만 중요도에 비해 첫 관문은 어처구니없이 쉬웠다. 그곳은 대로에 위치한 대형극장을 끼고 들어가는 골목이었고, 극장의 이름은 ‘비의 고향’이었다. 직원은 극장을 강조하며 극장의 위치에 몇 번에 걸쳐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실제로 보니 극장 자체가 원형건물이었다. ‘비의 고향’은 오페라와 뮤지컬만을 공연하는 극장이었다. 나는 비도 피할 겸 극장 입구로 들어가 공연 일정을 확인했다. 이번 달에는 푸치니의 쟌니 스키키가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읽어봐도 누군지 알 수 없는 출연진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읽어 내려가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몸에 익었다. 이것은 분명 내가 아는 누군가의 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그러나 의심의 시작은 자폐증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정신과의사에게 데려갔다. 그날 어머니가 의사에게 했던 첫마디를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이가, 하루 종일 엄마를 안 찾아요.”

일곱 살이었다. 내 기억이 허락하는 한, 나는 내 나이 일곱 살에 처음 병원에 갔고, 처음 정신과에 갔다. 선생님은 친절했다. 어머니의 표정은 어두웠다. 만약 내게 정말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나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친절한 의사선생님이 친절한 음성으로 물었다.

“왜 엄마를 찾지 않지?”

“엄마를 찾을 일이 없어서요.”

내 대답은 간단했다. 게다가 정직했다. 선생님은 친절한 눈동자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주사라도 맞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주사가 아니라 약이기를 속으로 기도했다. 내 왼쪽에는 어머니가 앉아있었고, 내 오른쪽에는 의사선생님의 조수임에 틀림없는 간호사가 서있었다. 간호사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따뜻했다. 선생님은 나와 어머니와 간호사의 얼굴을 한 번씩 쳐다본 후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정상입니다. 어머니께서 자꾸 말을 걸어주셔야 할 것 같네요.”

진단은 그걸로 끝이었다. 약도 주사도 없었다. 나는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음이 아팠다. 간호사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 없는 아이는 나 말고도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간호사의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선생님은 이제는 같은 증세로 두 번 다시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내 손에 낱개로 포장된 초콜릿 두 알과 사탕 한 알을 쥐어주었다. 나는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나는 손을 펴고 내 손에 든 물체들을 바라보면서 ‘이건 마치 손에 흙을 쥔 것 같아.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하루에도 열댓 번씩 나를 불러 앉혔다. 어머니는 누이에게도 단단히 가르쳤다. 하루에 나를 위해 열 가지 이상의 용건을 만들고 열 번 이상 나를 불러 용건에 관해 대화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하루에 스무 번 이상 어머니와 누이와 마주보고 앉아야 했는데, 어머니보다 누이가 나를 부를 때가 더 많았다. 다행히 자폐증은 아니었으나 덕분에 나는 우울증을 얻게 되었다. 나는 선생님이 내 손에 쥐어준 흙이 원망스러웠다. 만약 자폐증이었다면, 나는 오히려 자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ps. 자폐증 부분의 이야기는 안타깝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