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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한 거라고는 사막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와 꽃을 돌보고 사막의 이야기를 쓴 것뿐이야. 나는 왜 사막을 떠나야 했을까…?”

참새는 화분 위를 뛰어 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다. 많이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날지는 못한다. 날개가 부러졌으니 아마 이번 생에서는 날기 힘들 것이다. 다행히 이 집과 마당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보인다. 바람이 분다. 나란히 놓인 화초 두 그루가 서로의 이파리를 부비고 있다. 노파의 눈동자가 식어간다. 어깨가 쓸쓸해 보인다. 세상에는 이유 없이 결정되는 일도 많고, 원인 없는 결과도 더러 있고, 최선을 다한 잘못된 판단도 있는 법이니까, 노파의 도시행도 그와 비슷한 오류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나는 아무래도 노파의 편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 역시 이유도 원인도 모르니 뭐라고 이야기해야할지 몰라 답답하다. 노파의 일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자의 삶으로서도 큰 의미는 없다. 사랑에 빠진 적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적도 없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다. 글로 옮긴 사막의 이야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큰 이슈가 된 것도 아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설마… 그녀에게 꽃을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폭풍우는 끝나지 않는다. 마치 하늘 너머에 수만 개의 폭풍우를 준비해두고 하루에 하나씩 세상에 내려 보내는 것 같다. 관객들은 지루해하고 공연은 계속된다. 멈추지 않는다. 가끔 숨을 거둘 것처럼 호흡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생명이 끝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이제 폭풍우가 태양만큼이나 친근하다. 오랜 비는 사람들의 얼굴을 밝게 만들었다. 표정이 아니라 피부를.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해 얼굴이 눈처럼 하얗고, 유니폼인 듯 검은 외투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검은 바둑돌 위에 흰 바둑돌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양새다. 하지만 그 정도 색의 조합이면 그리 위태롭지는 않다. 선장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는 요즘 거실 식탁에서 책을 보지 않고 주로 노파의 화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당연히 식사시간에만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그는 나를 쳐다보며 입을 오물거리다가 멈춘다.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다.


나는 노파에게 도시 안이나 근교에 산책할만한 숲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노파는 내게 주택가 뒤편에 있는 넓은 숲을 가르쳐주었다. 숲에 가려면 주택가를 완전히 벗어나야했다. 나는 비가 잦아든 깊은 새벽을 선택했다. 주택가를 벗어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안개비에 잠긴 숲은 동화 속의 그림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 그루도 빠짐없이 모두 소나무였다. 소나무 숲…. 숲에 닿기도 전에 나는 솔잎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숲 속은 송진과 솔잎 냄새로 가득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짙은 소나무향을 맡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숲 속을 걸었다. 바닥은 솔잎으로 덮여 흙을 밟을 수 없었다. 숲 안으로 들어갈수록 향이 진해졌다. 나는 어머니의 숲을 생각했다. 내 삶에서 가장 편안한 숲. 우리 가족 모두가 사랑했던 곳이었지만 어머니는 누이와 나를 위해 가장 먼저 숲 속의 집을 정리해야 했다. 집이 팔리고 난 후에도 누이와 나는 가끔 어머니의 숲을 찾았고, 숲 속의 오두막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숲을 바라보고, 담요를 뒤집어쓴 채 별을 보거나 빗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곳 소나무 숲에는 정해진 산책로가 없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숲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각각의 소나무들이 내쉬는 다른 숨소리들이 들렸다. 잠든 소나무들이 새근거리는 소리. 그들의 숨소리는 공기의 파장을 이용하지 않고 향기를 통해 고막을 울렸다. 그들의 호흡은 숲의 모든 공간에 존재했다. 나는 잠든 소나무들의 요람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다. 시간은 늦은 새벽에서 이른 아침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한두 그루의 나무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은 잠이 덜 깬 눈으로 낯선 시간에 나타난 낯선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아침은 더디 밝았다. 소나무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나 역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며칠 후 선장과 함께 다시 숲을 찾았다. 이번에는 새벽이 아니라 늦은 오후였다. 숲 안으로 들어가니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져 내렸다. 숲의 소나무들은 그 가느다란 이파리를 활짝 펼치고 자신들의 뿌리가 뻗어가고 있는 땅을 긴 비로부터 지켜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선장과 나는 느리게 숲 속을 걸었다. 나는 오늘 선장이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도시의 호텔들을 가득 메웠던 여행객들은 이제 거의 다 빠져나갔다. 누구도 언제쯤 폭풍우가 그칠지 확답을 주지 못했다. 선장이 메마른 음성으로 물었다.

“자네도 떠나야하지 않나?”

글쎄… 그렇다. 떠나야 한다. 나도 떠나야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처럼 집을 향해 떠나서는 안 된다.

“떠나기는 해야 합니다.”

나는 모호하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내가 밟아야할 땅 위에 설 것이다. 나는 나의 오감과 육감을 모두 끄집어내어 그 땅을 느낄 것이다. 그 땅을 밟고, 그 땅 위에 눕고, 그 땅을 덮고 잠들 것이다. 나는 그 땅을, 흙을, 모래를, 손에 한가득 움켜쥐고 얼굴을 파묻은 채 숨 쉴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직은 방법이 없다. 선장은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깔린 솔잎을 보며 걸었다. 비에 젖은 솔잎은 짙고 선명한 녹색 빛을 뿜고 있었다. 선장은 아직도 할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에게서 고뇌의 냄새가 풍겼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오후의 솔잎 향은 새벽의 향과 다른 무게를 품고 있었다. 조금 더 얕고 가벼웠다. 우리는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돈 후 숲의 중심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 숲은 아마도 도시 안에서 가장 훌륭한 명상의 장소일 것이다. 낮에는 나무들의 숨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비 내리는 낮의 애매한 빛의 두께와 잠에서 깨어 움직이는 도시의 무분별한 소음이 숲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자신들에게도 우리들에게도 집중하지 못했다. 지난번의 거대한 폭풍 이후로 비는 며칠째 졸음에 빠져있었다.

“내 배를 타보겠나?”

뜻밖의 제안이었다.

“어떤 뜻으로 그런 말씀을…”

“선원으로서 말일세.”

선원으로서…. 그는 어쩌면 내가 떠나는 것이 싫은지도 모른다. 그 역시 노파와 나처럼 고아이고, 외로웠을 것이다. 외로울 것이다. 선원으로서 배를 타야한다는 것은 나를 사막에 데려다주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떠나지 말라는 의미이다. 나는 그제야 선장의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장에게는 며칠 시간을 달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이미 선장의 배에 올라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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