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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48 . 절벽, 여인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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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강 하구는 바다와 만난다.


그곳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일 뿐 아니라 모래와 바위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강은 잔잔하고 바다는 늘 파도로 넘실댄다. 그곳은 바위와 모래로 가득하다. 거대한 새의 부리처럼 넓게 벌어진 기수지역의 아래쪽은 바위해변이다. 기수지역을 벗어나 해변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바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낮은 절벽으로 변한다. 절벽은 절벽으로 이어진다. 한없는 절벽의 해안이다. 절벽은 계속 높아진다. 절벽 아래의 파도는 큰 덩치만큼이나 웅장하게 부서진다. 그것은 육지를 집어삼킬 듯 빠르고 강하게 달려오다가 절벽에 부딪치고 나서야 고개를 숙이고 작은 물방울로 쪼개진다. 절벽은 지구 위를 한 바퀴 돌기라도 할 듯 끝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성벽처럼 높고 단단한 이 절벽에도 빈틈이 있다. 강 하구에서 통통배로 사흘쯤 가면 가늘게 깨진 절벽의 틈을 만날 수 있다. 틈의 좌우는 높고 가파르다. 절벽의 꼭대기에는 날카로운 균열이 있다. 균열 사이로 물이 떨어진다. 폭포다. 일 년 내내 낙하를 멈추지 않는, 이 대륙에서 가장 높은 폭포다. 폭포를 중심으로 멀리서 바라본 절벽의 모습은 여인의 자태를 닮아있다. 여인은 바다로부터 등을 돌린 채 대지를 바라보며 누워있다. 여인의 눈가쯤 되는 곳, 바로 그 자리에 폭포가 있다. 사람들은 폭포를 ‘여인의 눈물’이라고 부른다.


넓고 느리게 흐르는 강과 풍성한 바다는 강 하구의 사람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풍요를 안겨주었다. 그들은 논과 밭을 일구고 바다와 강의 물고기들을 잡았다. 그들의 소산은 배에 실려가 다른 여러 도시 사람들의 식량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농업과 어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도시의 부자들 중 몇몇은 이 마을의 해변에 땅을 사고 별장을 지었다. 마을 전체가 농사일과 어업을 함께 했다. 모두가 성실했고, 건강했다.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가난도 결핍도 알지 못했다. 겨울은 춥지 않았고, 여름은 뜨겁지 않았다. 마을의 상징은 고래와 곡식이삭이었다. 그들이 잡아 올린 고래는 고기와 고래 기름으로 분류되어 팔려나갔다. 마을은 평화로웠다. 지난 역사에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일처럼 멈추지 않았다. 삶과 일이 계속되는 한 그들의 풍요는 보장받은 것이었고, 그 외의 것은 딱히 신경 쓰거나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항상 여유로웠고,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을은 관광지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고즈넉한 강과 절벽으로 이어진 바다가 만나 이루는 풍광은 여유와 힘의 조화를 완벽하게 보여주었고, 온화한 기후에 풍족한 먹을거리와 친절한 마을사람들의 모습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바다와 강은 마를 줄을 몰랐고 마을을 비추는 행운의 태양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을 바깥세상의 이야기는 관광객들과 상인들을 통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강의 상류에 사막이 있다는 것도, 거대한 호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