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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사고였다. 가벼운 사고였으나 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망각의 강에 빠진 것이다. 의사는 두부외상에 의해 드물게 나타나는 가벼운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고 진단했다. 나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서의 사고였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누이는 마치 잊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처럼 조금 전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행히 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알아보는 것으로부터 기억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공교롭게도 내 체취 때문이었다. 여행 중에 나는 거의 씻지 못했고, 쉰내와 고린내에 절어있었다. 옷을 빨고, 몸을 씻어도 여행에서 묻은 냄새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여행이 남긴 체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대로 몸에 배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냄새는 오래 가시지 않았다. 나는 누이 곁을 지켰다. 어머니와 나와 누이는 자주 산책을 나갔다. 우리는 병동 안에서만 반복되던 산책의 영역을 병원의 정원과 병원 바깥으로 넓혀나갔다. 병원의 밤은 고즈넉했다. 나는 밤이 올 때마다 집에서 보냈던 조용한 밤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우리는 각자의 방에 머물며 고요를 음미했지만, 이곳에서는 다 함께 모여 조용한 밤을 보냈다. 나는 잠든 누이의 손을 보며 멍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길고 가느다란 손, 손가락, 손톱… 누이의 몸은 어느 곳 한군데 연약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내 어깨를 두드리던 손 역시 그랬다. 그것은 마치 작은 새의 날갯짓 같아서 현실에서조차 꿈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몹시 가벼웠다. 누이는 현실 속에 살아있지만 가끔 상상이나 꿈속의 여자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었다. 너무 가벼워서 걷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사람이 아닌 존재로 혼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누이의 그런 가벼움이 좋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놀라거나 불쾌해했고, 누이는 늘 사과하느라 진땀을 뺐다.


누이의 아침은 이슬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누이는 맨발로 정원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맨발로 풀밭을 걷는 누이를 보며 잠에서 깨었다. 나도 누이를 따라 풀밭을 걷곤 했다. 이른 아침의 풀밭은 차갑고 포근했다. 흙과, 풀과, 이슬…. 자연은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발을 감싸주었고, 그 느낌은 온몸을 타고 올라와 결국 대지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황홀한 기분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로 나는 아스팔트와 모래밭, 자갈길 등을 가리지 않고 맨발로 걷는 버릇이 생겼다. 한번은 대리석 위를 맨발로 걸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백화점을 구경하던 날이었고, 나는 백화점 안에 들어서서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을 보자마자 화려하게 진열된 상품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바로 신발을 벗고 맨발로 대리석 바닥을 뛰어다녔다. 어머니는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발이 너무 시려서 일 분도 채 못돼 도로 신발을 신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끈 달린 운동화만 신었다. 언제든 맨발로 걷고 싶을 때 운동화를 벗고 끈을 묶어서 목이나 어깨에 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디에서든 맨발로 걸었다. 특히 아스팔트는 비에 젖었을 때 가장 착용감이 좋은 땅이었다. 나는 젖은 땅에 발이 닿을 때마다 야수적 본능에 휩싸였다. 나는 비를 맞으며 네 발로 달리고, 땅에 누워 가쁜 숨을 고른 후, 비를 맞으며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비가 쏟아지는 날마다 숲을 향해 달리고, 심연처럼 깊은 숲 속에 누워 비에 젖은 숲의 적막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발가벗고 뛰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발가벗고 숲을 달린 것은 내가 아니라 누이였다. 아직 누이의 가슴이 부풀어 오르지 않았을 무렵, 비가 철철 내리는 어느 여름날 오후에 누이는 거실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가 느닷없이 옷을 벗고 장화를 신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이의 장화는 팜므파탈의 입술처럼 짙은 빨강색이었는데, 나는 누이의 하얀 몸과 붉은 장화와 검은 머리카락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누이는 어두워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몰골이 흉했다. 몸의 여기저기에 나뭇가지에 긁힌 자국이 있었고, 머리카락은 나뭇잎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장화 속은 빗물에 잠겨서 걸을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를 냈다. 어머니는 누이의 말썽을 기념하는 의미로 누이와 내가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을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어주었다. 훗날 누이에게 왜 그런 미친 행각을 벌였느냐고 묻자, 누이는 비가 자기를 불러냈다고 대답했다. 왜 벌거벗고 나갔느냐고 묻자, 비가 맨몸이었으니 자신도 맨몸이어야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미친… 이라고들 보통 생각할 테지만 나는 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단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을 뿐, 나 역시 누이처럼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성실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누이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지만, 자아가 강한 만큼 자아를 망각하는 힘도 강한 사람이었다. 나약한 육신에 정직한 영혼을 가진 여자. 잠든 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온화하고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들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내게는 어머니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악독, 탐욕, 질투, 비방, 시기, 미움, 증오, 전쟁, 폭력 따위의 내적, 외적으로 파괴적인 의미를 가진 낱말은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나는 누이처럼 ‘선(善)’에 가까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가끔 누이가 소유한 아름다움과 선에도 어떤 목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지닌다는 존재의 목적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처럼 아주 가벼운 목적으로라도 말이다. 세상이 혼돈과 광란으로 물든 시대에 어쩌면 누이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탁한 인간 세계가 질식하지 않도록 호흡할 산소를 공급하는 숲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선과 악이 존재하고, 선이 어느 정도 악과 균형을 맞추고 있거나, 선이 조금 더 무게가 나간다면, 나는 그건 분명 누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누이는 몸을 틀어 창 쪽으로 돌아누웠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나는 원형 레일 위에 놓인 순환열차처럼 같은 층을 빙빙 돌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와 병동 바깥으로 나왔다. 도시의 밤공기에는 여전히 낮의 분주함이 묻어있었다. 사람들의 옷 냄새와, 땀 냄새, 아스팔트 위의 먼지 냄새, 인간들이 내다버리는 온갖 쓰레기들이 섞인 냄새와 자동차들의 배기가스 냄새, 그리고 병원에서 풍겨 나오는 다양한 약품냄새… 사람들의 바쁜 걸음걸이의 흔적, 억지로 둥글게 깎아놓은 작은 조경수들의 조악한 자연미, 펄럭이는 옷자락들이 내뱉은 먼지들, 담배 연기, 노인들의 지팡이 자국, 환자들의 슬리퍼 끄는 소리 등이 메아리로 남아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나는 느리게 걸으며 세상에 남은 소리와 냄새와 먼지 묻고 낡은 흔적들을 호흡했다. 도시는 내일의 또 다른 소란을 기약하며 깊이 잠들어있었다. 잠든 도시를 지키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얼굴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고개를 들었다. 텅 빈 검은 하늘뿐이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비였다. 나는 횡단보도를 가로질러 차도의 중앙선 위에 선 채 신발을 벗고 끈을 묶어 어깨에 둘러멨다. 흙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나는 검은 구름 아래에서 비를 맞으며 맨발로 중앙선 위를 걸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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