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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미증유의 대지

미증유의 대지 #53 . 암흑의 세상에는 메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에 나온 지 20일이 넘었지만 조황은 시원치 않았다. 우리는 낚시와 그물을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바다는 인간의 손에 의해 통제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바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높고 두꺼운 벽 너머에서 무표정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다는 고작 물에 불과했지만 바위절벽처럼 가파르고, 차갑고, 단단하고, 거대한 물이었다. 바다는… 인간보다 강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물을 내리거나 낚싯줄을 드리우고, 바다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를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언제든 나는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기다리는 일에 지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부가 가져야할 덕목 중에서 절반은 가진 셈이라고. 또는, 대가없는 노동에 대한 감정의 맛, 즉 씁쓸함, 상실감, 허무함, 버려진 듯 고독한 기분, 그물이 찢어져 마음도 함께 찢어지는 것 같은 슬픔, 내가 잡아야 할 물고기를 모두 삼켜버리는 포식자들에 대한 분노, 추위나 더위나 불면 같은 육체적 고통, 만물의 영장을 바다 위의 비렁뱅이로 대우하는 자연의 무례함과 무질서에 대한 좌절로부터 자신을 건져낼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부가 될 수 있다고. 바다는 자신의 거대함으로 바다가 자신의 영토라는 것을 매순간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바다가 의도한 대로 그의 드넓은 영토를 헤매며 방황을 거듭했다. 우리는 하루하루 먼 바다로 나아갔다. 고기를 잡기는 했으나 잡은 고기들은 선원들의 식사거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고기떼는 모두 심연 속에 은거 중이었거나 깊은 바다 아래에 고요히 무리지어 긴 회합을 나누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폭풍우가 멈추고 수면이 잔잔해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면을 떠돌며 사냥감을 찾는 자는 오직 인간들뿐이었다. 우리들은 바다 위에 헛된 노고를 뿌리고 다니느라 매일 분주했다. 선장이나 선원들은 실망하는 기색조차 없었다. 지치지도 않았다. 이렇게 형편없는 조과라면 배를 돌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선원들의 눈동자는 오히려 총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나에게만 숨기고 있는 희망이라도 있는 것일까. 선원들은 더욱 맹렬히 먹고, 부지런히 그물을 내리고, 힘차게 빈 그물을 끌어올렸다. 바다의 딸, 도리스 호는 고기잡이 어선이 아니라 사람만 싣고 다니는 여객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의 선상생활은 다행히도 순탄했다. 멀미도 하지 않았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의 식사에도 익숙해졌다. 나는 밤마다 갑판에 나가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선장은 이제 배 위의 조명등을 켜지 않았다. 바다는 밤마다 어김없이 검은 입을 벌리고 비를 들이마셨다. 선장은 거의 매일 잠들지 못했다. 조타실에 우두커니 앉아 검은 밤바다를 노려보는 것이 선장의 야간 일과였다. 갑판에서 비 구경을 하기에는 파도가 너무 높았다. 선원들은 모두 잠들어있었다. 나는 조타실 문을 두드렸다. 선장은 내게 술을 섞은 뜨거운 코코아 한 잔을 권했다. 술의 독기와 코코아의 열기가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불에 덴 건 속인데 정작 불이 붙은 것은 살가죽이었다. 코코아 한 모금에 살갗이 쓰라렸다.

“잠을 자두게.” 선장이 말했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데도 선원들이 실망하지 않는 게 신기합니다.”

“바다를 떠나지 않고 기다리다보면, 언젠가 한 번은 풍어의 때가 오게 마련이지. 제풀에 지쳐 먼저 떠나는 자만이 늘 빈손일 뿐이야. 우리는 배가 가라앉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기 전에는 절대로 떠나지 않아. 모두가 그걸 알고 있네.”

나는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살갗의 쓰라림을 즐겼다. 배가 가라앉을 만큼이라…. 어쩌면 배가 가라앉기 전에 기름이 먼저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선장은 잘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는 배를 움직이지 않았고, 시동을 켜두는 일도 거의 없었다. 선원들은 모두 빛없이 생활하는 데에 익숙해있었다. 해는 매일 떠오르고 매일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구름 아래의 세상은 빛의 세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당연히 우리의 하루는 매일 어두웠다. 나는 밝을 때만 책을 읽었다. 글을 읽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조타실에서 선장의 사진집을 몇 권 빌려왔다. 선장은 주로 건축과 인테리어, 자연, 혹은 도시와 도시사람을 피사체로 하는 스냅 사진들을 좋아했다. 배를 타는 사람이기 때문에 육지의 집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을 구경하는 일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내가 돌아갈 집이 아니기에 더욱 무신경하게 꿈꿀 수 있는지도 모른다. 넓은 호숫가에 커다란 통나무집이 한 채 떠있다. 맑은 날의 사진도, 흐린 날의 사진도, 비 내리는 날의 사진도 하나같이 그림 같다. 매일 낚시를 해도 좋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잡을 수 있는 호수라면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매 끼니마다 먹는 생선구이에 질릴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지구가 한 바퀴 돌고 대기가 회색빛으로 밝아오면, 우리는 부표를 찾아다니며 내려놓은 그물을 확인했다. 바다에 나온 지 거의 한 달이 지나서야 우리는 조금 무거운 그물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걱정했던 만큼의 심한 풍랑은 다행히 만난 적이 없었다. 바다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 선창을 가득 채우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했다. 그 이틀을 위해 물 위에 뜬 채 한 달을 기다린 것이다. 도리스호가 입항하던 날,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환영인파의 맨 앞에는 당연히 노파가 서있었다. 선장은 선원들을 모아놓고 긴 회의를 했다. 우리는 열흘 쯤 육지에 머무른 후 날을 보아 다시 바다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배의 선장들은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출항준비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약간의 돈을 벌었다. 나 역시 돈을 벌었다. 나는 내 의사에 따라 기약 없이 배를 타기로 하였으므로 도리스호가 침몰하지 않는 한 언제든 돈은 또 벌 수 있었다. 나는 내 몫으로 주어진 삯을 모두 노파에게 주었다. 노파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나무라며 내 돈을 받았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성대한 식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살며 사람들과 보내는 삶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목적을 이룰지는 장담할 수 없었지만 배를 탄 것은 일단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육지로 돌아온 후로 내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나는 시간에 상관없이 자주 지붕 위에 올라갔다. 낮에도 올라갔고, 밤에도 올라갔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붉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흐린 회색하늘 아래에 펼쳐진 붉은 지붕의 파노라마는 흑백으로 변해버린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컬러인 듯 비장해보였다. 밤풍경은 낮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평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애써 노려보았지만 검은 하늘과 붉은 지붕의 경계를 찾을 수도, 그을 수도 없었다. 밤의 대기에 가장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밤뿐이었다. 선이 사라져버린 밤은 약간 지루했고 조금은 허무했지만 드넓게 펼쳐진 암흑이 주는 무거운 느낌의 평화가 있었다. 암흑은 물과 닮아있어서 그 안에 잠길 수 있었다. 잠긴 채 세상을 향해 뜨여있던 눈을 잠시 감을 수 있었다. 암흑 속은 고요했고, 고요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암흑의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암흑에 익숙하지 않은 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 두려움은 물로 지은 얇은 벽 같아서 조금만 헤엄치면 금방 건널 수 있었다. 나는 밤마다 소리 없는 암흑의 고요 속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둠 속을 걸었다. 허방을 디딜까 겁내며 검은 허공을 향해 손을 내밀어보기도 하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암흑의 세상에는 메아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세상에는 암흑과 나, 둘만 살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숨소리도 나의 숨소리도 듣지 못했다. 처음 며칠은 여전히 배에 머무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책을 손에 잡기가 어려웠다. 나는 배에서처럼 계속 그림책만 뒤적거렸다. 방 안에 누워있어도 몸은 계속 흔들렸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갑판을 두드리는 빗소리보다 가볍고 단조로웠다. 육지의 비는 내게 낯설고 새삼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이른 봄의 돌풍에 떨고 있는 여린 나무 이파리의 소곤거림 같았다. 비는 머뭇거리고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비의 몸집을 나약하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지난번처럼 은밀하게 육중하고 거친 두 번째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비의 모습이 어떠하든 나는 이제 그들이 결국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창백한 비도, 기름진 비도, 흐르지 못할 곳에 닿기 전까지는 흐르기를 멈추지 않았고, 지상과 지하의 모든 길 없는 길 사이를 흘러 마침내는 모두 한곳에서 재회했다. “이제 헤어집시다.” 하고는 각자의 구름으로 흩어진 후에도 기나긴 굴곡과 가파른 회유의 골짜기를 지나 당연히 다시 만날 것을 알고 헤어지는, 아쉬움도 슬픔도 없는 느슨한 이별일 뿐이었다. 육지의 비는 조금씩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폭풍우의 마감을 기대했다. 하지만 딛고 사는 땅의 일을 수습하며 살기에도 버거운 인간이 구름 너머의 일까지 가늠하고 간섭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것은 애초에 사람 손 밖의 일이었으므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겨우 소원뿐이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을 계산하는 일 말고 사람이 자연에게 떼를 써서 빗물 한 방울이라도 더 얻는 일이 가능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잦아든 빗소리를 들으며 아침저녁으로 짧은 졸음에 빠졌다. 우리는 밝아진 구름과 가늘어진 비 아래에서 밥을 먹었다. 노파는 아침저녁으로 장작불을 피웠다. 우리는 차양 아래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고, 식사를 했다. 우리는 일부러 비를 맞으며 밥을 먹기도 했다. 누군가 함께 있었다면 우리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몹시 즐거웠다. 장작불 앞에 앉아 비에 젖어가며 먹는 밥은 꽤 맛있었다. 나는 집에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노파는 우리가 배를 타는 동안 외롭지 않았을까. 나는 밥알을 씹으며 노파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글쎄… 우리의 부재가 노파를 더 외롭게 하지는 않은 것 같아보였다. 노파의 살가죽과 주름 속에 외로움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노파가 사막을 떠나올 무렵에 영혼의 살에 파인 깊은 생채기, 아마도 그 상흔이 남긴 외로움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마음에는 굳은살이 박이지 않으므로 상처가 상처 그대로 남는 법. 우리 모두는 폭풍우만 아니라면 이대로 비가 영원히 멈추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배를 띄워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배를 타는 일이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만 아니라면, 우리는 괜찮았다. 비는 졸음에서 쉽게 깨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두 번째 출항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