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그는 가끔 현기증을 느꼈다. 다급히 해결해야 할 무거운 골칫거리를 앞에 두고 느끼는 빠른 맥박 속의 어지럼증. 그는 현기증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심각한 곤경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었다. 현기증은 그에게 불안한 자극이었다. 무정형의 혼돈과 예리한 고통의 흔적을 가진 자극. 그는 그 자극 속에서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고독의 그림자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음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고독은 스스로를 친구라고 정의했지만, 고독은 자라고 있었고, 정작 자신의 주인인 그는 작아져가고 있었다. 고독은 매일 깨어났고, 그는 매일 외로움에 절어 잠들었다. 고독은 육신을 가지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초인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성장의 정점에 닿고 나면 가파른 세월의 흐름에 밀려 죽음의 바다로 떠내려가는 나약하고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그의 죽음은 반복적 절망을 통해 그와의 거리를 좁혀왔고, 절망의 중심에는 그의 친구인 고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의 골이 늘어갔지만 그의 고독은 늘 청춘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늙어버렸다. 어차피 인생은 짧은 것이었고, 언제 끝나더라도 불평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의 죽음은 영원히 기억되지 못할, 잠시 날아올랐다가 가라앉는 의미 없는 먼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벌레들은 그의 육신을 뜯어먹고, 고독은 그의 영혼을 파먹고, 그의 삶은 마지막 종을 울린 후 가루 몇 줌만 남긴 채 덩그러니 사라지고….


그는 식욕이 잠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원인불명이었다. 그냥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돌보거나 그의 식욕을 살려낼 만큼 그에게 관심 있는 사람이 없었다. 고독은 여전히 그와 가깝게 지냈지만 그의 끼니에는 역시 관심이 없었다. 고독은 자신과 함께해줄 친구만 있다면 굶주림을 느낄 필요가 없는 존재였다. 식욕감퇴는 그의 행동반경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의 동선은 공원과 동네와 평소의 산책길로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침내는 집 안으로 좁혀졌고, 나중에는 침대와 화장실을 오가는 것이 움직임의 전부가 되었다. 동선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어느새 말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의 육신 역시 조금씩 쓸모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볼은 야위었고, 마른 살 아래의 힘줄은 푸르스름한 흔적만 남은 채 더 이상 피가 흐를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몸이 마르자 원래 컸던 머리가 더 커진 듯했다. 머리와 상체를 지탱하는 앙상한 두 다리가 신비해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그의 절식은 거의 단식의 단계로까지 내려갔다. 목적 따위는 없었다. 욕구도 없고 이유도 없는 단식이었다. 아무리 고독을 양식으로 삼더라도 육신에 힘을 주는 것은 밥뿐이고 밥을 대신할 육신의 양식은 없는 법인데 메마른 육신의 우물을 고독의 흙으로 채워 살찌우려들다니. 그의 단식은 급기야 타락으로 치달아서 하루 한 컵 분량의 물을 마시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마침내 그의 혀는 언어를 완전히 잃었다. 단지 고개를 움직이는 것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 즉 ‘그렇다’ 와 ‘아니다’, ‘예’ 와 ‘아니요’ 정도만을 이야기했다. 고독의 심연에 잠긴 그의 세계에 대화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 역시 고독처럼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조차 귀찮아하는 얼굴이었다. 장을 봐다주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책을 사다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목마른 사람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에게는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았다. 그가 찾는 것은 빛과 어둠을 초월한 먼 땅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의 손도 닿지 않고, 세상 누구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곳에.

그가 마른 입술 속에 넣은 마지막 음식은 몇 방울의 물이 전부였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의 말로는 물 몇 방울을 받아 마신 그의 눈동자에 고마움의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고독이 이루어낸 짙고 밀도 높은 포말의 가스실 안에 갇혀 질식사했다. 고독이 늪이 되어 그를 삼켰고, 고독이 불이 되어 그를 살랐다. 고독의 껍질을 벗은 순간, 그는 나비가 아니라 주검이 되었다.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고독에 의해 도살당한 것이다. 몇 방울의 물로 목구멍을 축이고, 몇 방울의 눈물로 감사를 표시하고, 마침내 마르고 비어버린 육신과 이별한 것이다. 그 이별이 고독과의 이별이기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저 너머의 세상에서는 고독하지 않고 잘 먹기를 바라는 것이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가 죽던 날 밤, 하늘에는 커다란 달무리가 졌다. 달무리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달은 마치 달무리에 갇힌 듯 답답해보였다. 아름다웠지만 외로워보였다.


나는 더욱 자주 누이와 만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이는 자신의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누이의 고독은 고독과 친했던 남자의 것과는 그림이 달랐다. 누이는 고독의 집을 방문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이는 고독의 문을 열고 들어가 텅 빈 고독의 집 안 거실 바닥에 갓난아기처럼 웅크리고 누워 있곤 했다. 고독은 그 거처까지도 쓸쓸했다. 고독의 집은 고독에만 집중하라는 듯 아무런 가구도 가재도구도 없었다. 심지어는 들이마실 산소마저 부족해서 자연스레 심호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독이 머무는 집에는 집 말고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고독마저 자리를 비운 고독의 집….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당연히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누이의 고독은 따뜻한 자신의 집을 비워두고, 추운 남의 집, 그것도 빈집에서 기식하는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러나 남의집살이는 그 행위의 추함과 비루함을 지적하기 이전에 지독하리만큼 깊은 중독성이 있었다. 주인 없는 빈집에서 누리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자유가 특히 그랬다. 그 위험하고 매혹적인 고독의 자유는 죽음을 대면하고서도 떨지 않고 인사를 건넬 수 있을 만큼의 용기마저 샘솟게 했다. 두려움에 떨며 죽음의 강을 건너는 수고가 필요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고독의 집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은, 차가운 마룻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서 도무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일이나,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집의 유일한 인테리어인 창틀은 집보다 더 오래된 듯 낡아보였다. 누이는 살갗과 호흡으로 고독의 흔적과 체취를 흡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무한대로 이어지는 실처럼 길고 지루했다. 누이가 창을 발견한 것은 그 집을 드나들고 난 후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다. 창이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움직이지 않고 지냈기에 벽마다 자연스럽게 뚫려있는 창틀을 발견한 순간, 익숙하던 모든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고, 신기해보였다. 마른 거실바닥은 누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곧 부서져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신음을 내며 삐걱거렸다. 창으로 새어드는 무기력한 빛은 구멍 난 어둠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식은 공허를 닮아있었다. 그 빈 시간과 공간이 누이에게 자기를 보아달라고 손짓했다. 누이는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누이는 고독의 집 안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끝날 기약이 없는 고독은 쉬지 않고 영혼을 괴롭히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한 걸음씩 움직이던 몸은 결국 창가 앞에 섰고, 누이는 마침내 창밖을 내다보게 되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기에… 누이의 눈동자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어두워졌다. 창을 통해 눈에 들어온 첫 풍경은 숲이었다. 숲은 텅 비어있었지만 어두웠다. 나무들은 거대했지만 앙상했다. 시선의 끝에는 암흑이 있었다. 숲의 뒤에는 크고 진한 검은 빛의 세상이 어둡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빼곡했지만 빈 공간밖에 보이지 않았다. 납득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누이는 고독의 집을 나와 숲 속을 향해 걸었다. 여백뿐인 숲인데도 길은 어두웠다. 누이는 길이라고 느껴지는 길 위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숲길은 호수를 만나면서 끊어졌다. 호수는 맑았다. 수정처럼 맑은 물속은 아무것도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호수 앞에 서서, 누이는 폐가 찌그러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거대하게 열린 공간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답답함. 트인 공간이었지만 무엇 하나 먼지만큼의 두께로도 진동하지 않는 적막한 곳. 그곳은, 그곳의 일부가 되지 않고서는 찰나도 견뎌낼 수 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누이는 어린 시절 집을 둘러싼 숲 속에서처럼 고독의 숲에도 잘 적응했다. 숲의 희박한 공기를 느리게 호흡하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고통의 파동을 가라앉혔다. 고독의 숲은 숨 쉬지 않았지만 살아있었다. 누이는 숨소리조차 가라앉아있는 숲의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고요한 호숫가에 드러누워 하늘을 가리고 있는 잿빛구름의 결을 바라보았다. 잘게 갈라진 구름의 결들은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수를 세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누이 이전에 이미 이 별을 떠난 인류만큼의 수가 다녀갔고, 누이 이후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정적이 가라앉은 호수 위로 바람 한 점이 영혼처럼 흘러들어왔다. 메마른 나뭇가지와 퀴퀴한 이파리의 냄새를 밀어내며 젖은 호수의 투명하고 밍밍한 향기가 누이를 향해 불어왔다. 바람이 피부에 닿는 것을 느끼는 순간, 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독의 숲을 떠나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누이는 그것을 일종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으로 여겼다. 어쩌면 고독은 누이와 자신이 잘 어울리기 힘들다는 결정을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누이가 운 좋게 오염을 면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마터면 아사한 남자의 마지막처럼 고독의 열병에 잠식당해 비참하게 죽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누이가 떠나고 난 후 고독의 숲은 다시 자신의 음침하고 메마른 계절로 돌아갔다.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았다. 고독의 집은 늘 비어있었지만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빈집이, 집을 더욱 쓸쓸히 채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숙명처럼 함께하는 것이 꼭 죽음 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죽음의 옆자리에는 항상 고독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있고, 죽음 이전에 그랬듯, 죽음 이후에도 고독은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누이는 고독의 집으로부터 발을 끊었다. 하지만 누이의 방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고독 역시 누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서너 번쯤 가벼운 사랑을 했지만 정착할 수 없었다. 누이는 몇 번에 걸쳐 직장을 바꾸며 조금씩 도심의 외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마지막으로 이사한 동네에는 누이가 좋아하는 재래시장과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누이와 자주 장을 보러갔다. 우리는 꼭 필요한 것을 최대한 적은 양으로 구입했다. 심지어는 마늘도 한 주먹 이상은 사지 않았다. 잦은 외출이 필요했다. 주말이면 우리는 도서관에서 함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권태를 밀어내고, 고독이 누울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일상적인 일과에 충실하기, 비밀을 갖지 않는 것,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우리는 먹고사는 일을 위한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독서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위해 필요한 물과 밥이었고, 갑옷이었고, 무기였다. 의미를 지닌 활자가 주는 힘은 고독이 휘두르는 무력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칼이자 방패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갈 때는 가방 안에 스테인리스 컵 두 개와 일회용 커피 몇 봉을 챙겨 넣었다. 도서관은 활자의 숲이었고, 우리는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숲으로의 산책을 떠올리며 도서관에서의 소풍을 즐겼다. 소풍은 즐거웠고, 독서 또한 유익했으나, 실제로 우리 각자의 고독을 막아준 요새는 서로였다. 우리는 각각의 개체였지만 서로의 마음속에도 존재했다. 그렇게 한 몸 안에 존재하는 둘로서 더욱 견고한 성채가 된 것이다. 나누어지지 않는 나를 나 아닌 내 바깥의 존재와 공유하는 법을 깨우친 우리는 완벽한 감정적 균형의 경지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은 지나간다.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 사실만큼은 불변이기에 나는 모든 고통을 견뎌냈고, 새로운 고통을 견뎌낼 준비도 되어있었지만, 고독의 문제는 달랐다. 외로움도 고통처럼 흘러간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다. 한없이 흘러간다. 외로움은 마치 더 넓은 물길을 향해 빠르게 떠내려가는 시냇물처럼 하염없이 흘러내려 더 큰 외로움의 덩어리를 만나서 강을 이룬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시 나의 외적인 사정은 별로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메말라버린 불모의 시기였다. 낯선 세상과 그 안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위해 눈을 뜨고, 나를 위해 눈을 감아주는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혼자였다. 어디에서나 변함없이 그랬다. 어머니가 없고, 누이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자갈밭에 던져진 모래알처럼 작고 외로운 존재였다. 어머니 없이 흘러갈 세월을 누이가 아닌 다른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누이와 결혼했다. 어머니는 반대하지 않았다. 우리의 결혼에는, 주례도, 축가도, 하객도, 신혼여행도 없었다. 우리의 행복을 비는 어머니의 여린 미소와, 혼인서약이 결혼식의 전부였다. 신고하지 않은 혼인신고서는 액자에 담아 신혼 방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벽 모퉁이에 걸었다. 많은 축복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우리의 고독은 그것으로 종결되리라 믿었다. 그 믿음이, 우리에게는 필요했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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