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8. 12. 16. 07:29


꿈 | 민박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사이에 딱 한번만 정차하는 버스다.

그가 내릴 곳은 차고지와 종점 사이의 정류장이다.

버스는 육지와 큰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넌다.

다리 아래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직각을 이루며 놓여있고,

그 중 조금 큰 섬이 다리와 계단으로 연결되어있다.

즉, 다리 아래의 두 섬 중 하나의 섬이 다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버스는 섬과 연결된 교각 바로 위에 정차한다.

섬에는 스무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적은 인구가 거주한다.

섬의 중앙에는 섬을 동서로 횡단하는 대로가 있고,

동쪽 끝에는 꽤 큰 규모의 식당이 있다.

섬에서 묵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식당 현관 위에는 인도를 가리고도 남을 만큼의 큰 차양이 걸려있고,

차양 아래에는 대여섯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식당의 메뉴는 대부분의 한식을 아우른다.

간단한 차와 커피를 팔기도 하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거리의 테이블이 인기 만점이다.

여행객을 위한 민박집은 대로의 서쪽에 위치한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려면 3킬로미터 가량을 걸어야 한다.

대로는 흙길이고, 주변의 풍경은 조금 지루하다.

약간의 논과, 밭과, 간간히 단층집들이 있고,

그 외에는 모두 소나무 숲이다.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업을 업으로 하고,

그중 절반은 민박을 부업으로 한다.

여행자들은 늦은 새벽에 민박집을 나와서,

긴 대로를 지나 섬의 동쪽에서 여명을 보고,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하루를 보낸 여행객들은 민박집의 창을 통해서,

또는 민박집 마당에 나와서 해거름을 감상한다.

섬의 하루는 대로의 이쪽과 저쪽, 즉 동쪽에서 시작되어 서쪽에서 끝난다.


버스는 노선표대로 다리 위 정류장에서 차를 세우고,

그는 예정대로 섬 위의 교각에서 내린다.

짐이 많지 않다.

그는 교각을 휘감은 계단을 따라 둥글게 걸어 내려간다.

계단 바로 아래에서는 아침과 저녁 두 번 장이 선다.

품목은 생선을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들이다.

가끔은 이웃끼리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배마다 잡은 물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야시장을 돌며 광주리에 든 물고기들을 감상한다.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독백한다.

“비가 오겠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다.

‘그럴 리가.’

아주머니가 그를 바라본다.

아주머니의 얼굴이 ‘맞대니까요.’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민박촌은 어느 방향입니까?”

아주머니가 조용히 손가락을 들어 길의 한쪽을 가리킨다.

그는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응시한다.

길뿐이다.

아무것도 없다.

길뿐이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아주머니를 쳐다본다.

아주머니의 표정이 ‘맞대니까요.’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아주머니와 흥정해서 잡어 몇 마리를 골라 회를 친다.


한참을 걸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주위 풍경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소나무 밭이다.

소나무뿐이다.

그 흔한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없다.

길과 소나무뿐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대기가 서서히 식는다.

다행히 횟감은 싱싱할 것이다.

멀리 한 줄로 늘어서있는 민박촌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예약한 대로 5호 민박집의 대문을 연다.

앙증맞은 백열등 하나가 마당을 밝히고 있다.

기역자 모양으로 지어진 옛집이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마당으로 난 안방 문이 열리고,

안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민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안주인이 손가락으로 기역자의 아래쪽 끝을 가리킨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말보다는 손가락으로 대화를 즐기는 모양이다.

그는 기역자 끝 방에 짐을 풀고,

주방 냉장고에 횟감을 넣어두고 잠을 청한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등 뒤로 부뚜막을 본 것 같은데…’


귓전에 파도소리가 울렸다.

바람소리도 울렸다.

둘의 하모니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이부자리를 걷고 마당으로 난 여닫이문을 열었다.

바람이 거칠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처마 밑을 따라 조심스레 걸어 부뚜막이 있는 주방으로 갔다.

방으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밝았다.

날이 밝았음에도 어두웠다.

민박집의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5센티미터 간격의 빗방울이 쉼 없이 낙하했다.

집은 아주 작았다.

기역자의 모서리에 자리 잡은 마루는 한 평이 겨우 넘을 듯해 보였다.

아침을 늦게 드시는지 안방에서는 아직 기척이 없었다.

그는 잡어 회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비는 종일 내렸다.

바닷가에 나가보고 싶었으나 거센 비바람이 산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하루를 온전히 비와 함께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비가 잦아들었다.

그는 바닷가로 나갔다.

해변 입구는 어른 허리쯤 오는 낮은 담으로 둘러쳐져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담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있었다.

모래를 밟으려면 일곱 개의 계단을 올라간 후 다시 일곱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모래톱의 폭은 10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여린 파도가 더 여린 비를 삼키고 있었다.


그가 민박집을 떠난 후 사나흘쯤 지나서 나 역시 5호 민박집에 짐을 풀었다.

모든 일이 그가 있었던 때와 똑같이 반복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튿날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나는 내 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내 꿈 역시 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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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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