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불면인2019. 1. 10. 07:27



꿈 | 담배


6층짜리 아파트의 3층.

나는 아이와 아내를 위해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공기는 습하고 기온은 차다.

비가 내린다.

한 방울 한 방울 성기게 내리는 비는

곧 눈으로 바뀌어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을 만큼 차갑다.

베란다 창을 열고 창틀에 기댄 채 담배 갑을 열고 담배 한 대를 꺼낸다.

담배 갑 안에는 두 대의 담배가 남아있다.

베란다 밖으로 내민 머리 위로 빗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빗방울의 질감은 세상에 갓 얼굴을 내민 어린 싹을 쓰다듬듯 가볍고 포근하다.

차가운 빗방울이 정수리를 톡, 톡, 때린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 순간,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담배 갑이 아래로 낙하한다.

베란다 아래 화단으로 떨어진 게 분명한 담배 갑은 일단 시야에서 사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나에게 딸이 묻는다.

“어디 가?”

“담배 갑을 떨어뜨렸어.”

내가 대답한다.

나는 부지런히 계단을 내려가 화단을 이리저리 살피며 떨어뜨린 담배 갑을 찾는다.

담배 갑은 불행히도 화단 깊은 곳에 떨어졌다.

영산홍 가지에 팔을 서너 군데 긁히고 나서야 나는 담배 갑을 손에 쥔다.

잠깐 사이에 몸이 땀과 비에 젖는다.

축축하고, 차갑고, 쓸쓸한 날이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온다.

얼굴과 몸이 온통 젖어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손에서 딸이 담배 갑을 낚아채더니 속을 들여다본다.

“겨우 담배 두 대 때문에 그 지경이 되도록 화단을 뒤진 거야?”

딸이 꾸짖듯 묻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문다.

그러나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내게는 아파트도,

담배도,

딸도 없다.

심지어는 딸을 낳아줄 아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람 부는 날을 좋아하는 아버지다.

왼쪽에서 오른쪽이거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바람을 특히 좋아한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늘 베란다에 몸을 걸쳐둔 채 창밖을 향해 서있으니까.

바람이 부는 날에는 베란다 안으로 담배 연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가장 난감한 날은 정면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다.

그런 날에는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서서 얼굴을 내밀고 불어오는 바람을 들이마신다.

나도 모르는 새에 딸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있다.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맑은 얼굴이다.

딸은 베란다 세탁기 위에 올려둔 담배 갑을 집어 들고,

담배 갑의 뚜껑을 열고, 담배 한 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딸의 모습이 괜스레 어른스러워 보인다.

“엄마한테 들키면 혼난다.”

내가 말한다.

딸은 여유 있는 포즈로 담배를 입에 문다.

“아빠, 어른이 된다는 게 겨우 이런 기분인 거야?”

딸이 묻는다.

“글쎄. 어른이 된다는 건 기분의 문제만은 아니지.”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기분만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하는 데는 오류가 있다.

특히, 아이들은 오류의 모서리를 정확히 짚어주지 않으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적어도 내 딸은 오류의 올가미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되므로,

무엇을 가르치든 선명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무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이어야 할까.

어른이라는 게 결국,

반성할 줄 모르는 덩치 큰 포식자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이야기해주어야 하나?

하지만 모든 어른들이 힘세고 눈치 빠른 고양이처럼 교활하고,

배고프고 게으른 돼지처럼 게걸스러운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아니면 어른이라는 존재가 겨우,

그런 금수들과 몇 블록 안에서 함께 사는 이웃에 불과하다고 가르쳐야 할까?

우리는 결국 다함께 이 땅의 모든 것을 영위하는 존재이므로,

그 정도의 정신적 타협은 죄가 아니라고?

하지만 생각은 정리되지 않고,

난데없이 속이 쓰려오기 시작한다.

‘또 끼니때가 되었나?’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딸과 나를 위해 오후 간식을 준비한다.



Posted by 소설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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